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들 Dec 11. 2022

기모노를 입고 떠난 아라시야마 단풍놀이

아라시야마, 기모노 체험

 (2022년 11월 25일 여행)


이번 여행의 본 목적이었던 단풍놀이. 교토에는 아라시야마, 청수사, 에이칸도 등 여러 단풍 명소들이 있는데, 이 관광지들은 서로 다소 거리가 있다. 11월 말의 교토는 관광객이 너무 많아 버스 기다리기도, 타기도 힘들고, 택시비는 비싼 데다 길이 막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나는 한국에서 아예 일일 가이드 투어를 예약해서 갔다. 그날 날씨나 도로 사정에 따라서 가이드 분과 의논해서 어딜 갈지를 정했다. 아침에 숙소로 데리러 오셨고 마지막 코스는 원하는 곳에서 내려주셨다. 차가 있으니 바로바로 이동할 수 있어서 편했고, 차가 없이는 가기 힘든 교토 근교를 구경한 데다 Dslr로 사진도 많이 찍어주셨다. 나는 1인 여행이라 비용이 많이 들었지만(24만 원, 도로 통행료 및 기름값 등으로 쓰이는 1만 8천엔 별도), 가족 여행이라면 비용이 분산되니 교토 초행길이라면 해 볼만한 경험인 듯싶다.


화려한 머리장식과 오비




기모노 체험


 역시 단풍이라면 아라시야마. 아라시야마는 옛 교토 귀족들의 별장지가 있던 곳이라고 한다. 단풍 지는 풍경과 함께, 도게츠교(渡月, 달을 건너다라는 뜻? 너무 로맨틱하다!), 대나무 숲 치쿠린이 유명하다. 기왕 단풍 구경하는 김에 기분 좀 내고 싶어서 기모노도 입어보기로 했다.


 그동안 료칸 등에 숙박하면서 유카타는 몇 번 입어본 적이 있는데, 본격적인 기모노는 처음이었다. 다른 분들 체험기를 보니 배를 꽉 조이기 때문에 숨쉬기도 불편하다고. 그리고 신발(게다)이 너무 불편하다고 했다. 그럼에도 한 번 입어보고 싶어서, 가이드분 통해 기모노 샵을 예약했고 한국에서 미리 타비 양말과 타비(버선)를 준비해 갔다.


타비 양말을 신고 그 위에 타비를 신으면 발가락이 덜 아플 것 같아서 준비


 기모노 샵에 가면 온갖 종류의 기모노들이 걸려있다. 가격대 따라 나뉘어 있는데, 나는 단풍놀이에 어울릴 법한 단풍 무늬의 붉은 톤 기모노에 오비는 보라색으로 골랐다. 엄청 화려한 패턴부터 수수한 색감까지 종류가 다양한데, 의외로 좀 화려한데 싶은 기모노가 단풍과 잘 어울린다고 직원분이 추천하셔서 그 의견을 참고 삼아서(나는 결정장애 와서 너무 힘들었음). 허리에 두르는 오비는 기모노 색깔과 확 다른 것이 이쁘다고 점원분이 추천해주셨다. 초록과 보라중에 고민하다 보라색으로 골랐다. 기모노를 고르면 별실로 가서 갈아입는데 속옷만 입고 나머지는 다 탈의한다.


 기모노는 혼자 입기 어렵다더니, 과연 그랬다. 나 자신을 막 선물포장(?)하는 느낌 ㅋㅋㅋㅋㅋ 직원분이 와서 옷을 입혀주는데 몇 겹을 껴입는 데다 허리에 오비 같은 것도 동여맨다. 너무 꽉 끼지 않게 해달라고 했지만, 기모노 자체의 모양을 흐트러뜨리지 않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꽉꽉 조여매야 한다고 한다. 그래야 입고 난 모습이 태가 난다. 특히 허리 부분을 조여 매면서 나도 모르게 흐읍! 했는데, 나중에 숨쉬기 편하려고 배를 최대한 내밀고 버텼다 ㅋㅋㅋ 가게에서 타비도 주셨는데(타비는 대여가 아니라 주는 것인 듯) 나는 준비해온 게 있다고 하고 사간 걸 신었다. 발 아플까 봐 일부러 타비 양말+타비 조합으로 신음.


단풍놀이라 화려한 색감의 기모노를 고르길 잘한 것 같다
전체적으로 꽉 조여가며 입기 때문에 오래 입고 있어도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옷을 입고 나오면 머리도 만져준다. 기왕 기모노 입는 김에 머리도 어울리게 꾸미면 좋을 것 같아서 헤어도 해달라고 했다. 오후에는 기모노를 반납하고 시내 돌아다닐 거니까 헤어가 너무 기모노풍(?)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더니 올림머리로 해주셨다. 머리칼이 어깨에 닿을락 말락 짧은 편이라 이게 되려나 했는데, 직원분의 숙달된 솜씨로 몇십 개의 헤어핀과 헤어스프레이로 그럴싸한 헤어가 완성! 머리장식과 들고 다닐 가방도 기모노에 어울리는 것 중 고를 수 있다. 그리고 추가금을 내면 일본식 우산도 빌릴 수 있는데, 햇빛을 가릴 수도 있고 우산이 있으면 소품으로 쓰면서 사진이 더 잘 나오기 때문에 추천. 그리고 게다까지 골라서 신으면 완성! 기모노 고르고 헤어까지 완료하는데 3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입을 기모노를 빨리 고른다면 더 빨리 완성될 듯.


우산을 들고 있으면 사진 찍을 포즈가 더 많아진다
전체적인 뒷모습, 오비를 저렇게 묶는 게 신기했음


 오후 5시 반까지 반납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아라시야마에서만 입을 생각이었기 때문에 시간은 오케이. 기모노를 5천엔 짜리로 골랐고, 이것저것 소품까지 해서 6천엔 정도 들었던 것 같다. 기모노 차림으로 아라시야마를 거닐면 나도 모르게 사진이 찍히는 경우도 있고, 특히 서양 관광객들은 인사를 하고 지나간다 ㅋㅋㅋ 합장하면서 인사하는데 묘하게 열받음.. ㅋㅋㅋㅋ 약간 관종이 된 느낌인데, 그것마저 즐기는 태도로 여행해야 함을 각오해야 한다. 기모노 차림은 어쨌든 눈길을 많이 끌기 때문에… 걷다 보면 커플이 기모노를 맞춰 입은 모습도 보이고, 결혼 촬영하는 모습도 왕왕 볼 수 있다.


 조여 맨 기모노는 생각보다 숨쉬기 괜찮았다(하지만 그걸 입고 어디 앉아 뭘 먹을 생각은 들지 않았음). 하지만 보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어서 그 점이 힘들었다. 게다를 신는데, 슬리퍼 같은 형태다 보니 오르막 내리막을 다닐 때는 벗겨질까 봐 조마조마. 평지를 다닐 때는 괜찮았지만 계단이나 내리막길은 힘들다. 게다는 엄지발가락과 검지 발가락 사이에 끈이 있는데 평소에 신지 않는 신발 스타일이라(평소 그런 조리도 안 신음) 살이 쓸릴까 봐 걱정했다. 하지만 반나절만 게다 신고 걸어 다녀서 그런지, 양말 덕분이었는지 딱히 물집 잡히지도 않고 괜찮았음. 그리고 몇 겹을 껴입어서 11월 말의 날씨에도 춥지는 않았다. 목이 휑하긴 했는데, 그렇게 목선을 드러내는 것이 기모노의 묘미라고 하니.. 여행 와서 한 번쯤 해볼 만한 체험인 듯하다.




아라시야마


 일본 내국인 여행객, 수학여행 온 학생들,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이 아라시야마의 단풍을 보러 몰려온 듯싶었다. 가이드분 말로는 이것도 코로나로 인해 줄어든 거라나. 진짜 붐빌 때는 인파에 밀려서 제대로 걷지도 못할 듯하다. 나는 조금 조용하게, 고즈넉한 풍경을 즐기고 싶었기에 아라시야마의 유명한 카페들(요지야 같은) 다 필요 없고 한산한 곳으로 다녔으면 했다. 가이드분의 안내로 대나무 숲의 뒤쪽으로 들어가서 비교적 수월하게 대나무 숲을 구경했고, 그런 식으로 뒷골목 쪽을 다니며 단풍을 즐겼다.


아라시야마의 명물, 대나무 숲
깨끗한 거리, 사람이 없어서 더 좋았다
신사 앞의 가게에서 잠깐 쉬는 중
사람들이 앉아서 차를 마시며 쉬고 있었다
진한 말차와 콩가루 잔뜩 뿌린 당고. 달달한 콩가루와 씁쓸한 말차의 합이 좋았다


 날씨가 정말 좋았고, 사람들이 많이 없는 곳이었던 데다, 기모노를 입어서 그런지 걸음이 자연스럽게 느려져서 아라시야마의 단풍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었다. 길을 따라 주욱 걷다 보니 작은 신사가 나왔고 그 앞의 가게에서 말차와 함께 당고를 먹었다. 새소리 들리고 바람에 나뭇잎 사락사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올려다본 하늘은 새파랗고. 불과 며칠 전에 잠실의 고층 사무실에서 말라가던(?) 내 모습이 오랜 과거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도게츠교 너머의 절경도 좋지만 그 많은 인파를 헤치고 다니기엔 자신이 없었는데, 아라시야마의 본류에서 빠져나와 구석진 길들을 다니면서도 충분히 단풍을 즐길 수 있었다.


어디를 둘러봐도 다 좋았음
아라시야마 단풍의 끄트머리에서
파란 하늘과 빨간 도리이의 조화
매거진의 이전글 교토 여행을 떠나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