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들 Apr 09. 2023

낭만 넘치는 가마쿠라 여행

에노덴, 카마쿠라코코마에역, 하세데라

(2023년 3월 24일 여행)


신주쿠에서 가마쿠라로 이동


 슬램덩크 팬으로서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가마쿠라. 슬램덩크뿐만 아니라 소설책 ‘츠바키 문구점’, 영화 ‘운명: 가마쿠라 이야기’를 좋아하는 나로서 가마쿠라는 로망의 장소였달까. 오늘은 가마쿠라를 둘러볼 생각으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숙소를 나섰다. 여기저기 검색해서 찾은 최적의 루트는 신주쿠역에서 오다큐선 급행을 타고 후지사와 역까지 간 후, 후지사와 역에서 에노덴으로 갈아타는 것. (일부러 숙소를 신주쿠 쪽에 잡은 이유기도 하다)


 이 루트로 이용할 수 있는 ‘에노시마-가마쿠라 프리 패스’라는 원 데이 프리 패스가 있는데, 가마쿠라-에노시마를 구경하는 경우 에노덴을 타고 여기저기 내렸다 탔다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걸 구매하는 게 합리적이다. 가격은 1640엔. 이 표 하나로 신주쿠-가마쿠라 왕복 다 쓸 수 있다.


 커다란 (혼돈의)JR 신주쿠역에서는 오다큐선 승강장을 손쉽게 찾을 수 있는데, 나는 신주쿠 프린스 호텔에서 간 거라 오다큐선 타는 곳을 찾느라 좀 헤맸다. (일본은 사철 종류가 워낙 많고 입구도 다 다름) 대충 신주쿠역쪽으로 향해서 두리번거리다 보니 오다큐선이라고 적힌 입구가 보여서 진입했다.


 에노덴 패스는 신주쿠역 티켓 발매기의 영어 메뉴로 들어가면 손쉽게 구매할 수 있다고 하는데, 나는 승강장 플랫폼 번호도 물어보고 이걸로 후지사와까지 갈 수 있는 게 맞는지 확인도 해볼 겸 인포메이션 쪽에서 구매했다. 역에서 헷갈리는 경우에는 웬만하면 인포메이션으로 가면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 종종 물어보러 가는 편.


 내 기억이 맞다면 5번 플랫폼에서 기다렸고, 전광판에 후지사와행(후지사와가 종점이었다) 급행이 몇 시에 오는지 확인하고 시간 맞춰서 온 전철을 탔다. 이 플랫폼으로 오는 다른 곳 종착인 전철들도 많기 때문에 반드시 전광판에서 후지사와 급행인지 확인하고 탈 것! 전광판 안내는 일본어와 영어 번갈아가며 뜨기 때문에 일본어를 못해도 괜찮다.


에노시마-가마쿠라 프리 패스 1640엔
승강장에 안내 전광판이 있다
급행이라 그런지 모든 정거장에 다 서지 않는다
나와 함께한 한교동과 아라시


 오다큐선을 50분가량 탄 것 같다. 출발 지점에서 타서 그런지 앉아왔는데, 평일 오전이라 그런지 전철이 여유 있었다. 대충 음악을 들으며 지나가는 풍경을 구경하다 보니 금방 후지사와 역에 도착했다.


 내리면 눈에 불을 켜고 ‘에노덴(江ノ電、Enoden line)’이라고 표기된 안내판만 찾아 쫓아간다. 계단을 오르고 밖으로 나가고 하는, 환승 치고는 꽤나 먼 거리라 ‘이 방향이 맞아?’ 싶었지만, 안내 표시만 잘 따라가면 된다. 안내 표시는 벽에 붙어있기도 하고, 바닥에 화살표 방향으로 붙어 있기도 하니 잘 살펴 이동할 것.


저 초록색으로 써진 ’ 에노덴‘이라는 글씨를 따라간다
초록색 에노덴 안내 표를 따라 이동
2층으로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바닥에 크게 안내가 붙어있으니 이 방향으로 따라간다
육교를 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쪽으로 가는 게 맞다
마침내 마주한 레트로한 에노덴 승차 플랫폼
에노덴 노선도. 후지사와 역에서 시작, 종점은 가마쿠라 역




슬램덩크 대표 성지, 가마쿠라코코마에 역


 에노덴의 가장 앞 칸에서 운전수 뒤에 바짝 붙어서면 에노덴이 향하는 전망을 볼 수 있다. 그래서 경쟁도 치열한 구역. 나는 오늘 많이 걸을 것을 각오했기 때문에, 전망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앞 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에노덴은 참 오래된 듯한 전철이었다. 이날은 날씨가 많이 따뜻했는데, 전철 내 에어컨이 없는지 운전수 분이 에노덴의 창문을 수동으로 다 여셨다. 에노덴이 달릴 때마다 창으로 스며들어오는 시원한 바깥바람. 이게 로맨스고, 이게 낭만이지.


 에노덴으로 에노시마-가마쿠라를 둘러보는 루트는 취향껏 정하면 되는데 보통 효율적으로 동선을 짜면 에노시마 들렀다 가마쿠라를 가거나, 가마쿠라를 찍고 에노시마로 돌아오는 방식을 택하는 것 같다. 나는 내 맘대로 그냥 돌아다닐 생각이었고, 오늘은 오후 5시 무렵부터 비 예보가 있었기 때문에 날씨 좋을 때 가고 싶은 곳부터 방문하기로. 그래서 가마쿠라코코마에 역(슬램덩크 성지)-하세 역(하세데라)-가마쿠라 역(쓰루가오카 하치만구)-에노시마 역-후지사와 역 순으로 동선을 짰다.


 가장 먼저 가고 싶었던 곳은 가마쿠라코코마에 역. 한글로 하면 가마쿠라 고교 앞 역이다. 바로 이곳이 슬램덩크 애니메이션 오프닝에 강백호가 서 있었던 곳. 내리자마자 흥분해서 한달음에 뛰어가니, 정말 강백호가 뒷모습을 보여주던 그 풍경이 눈앞에 놓여있었다.


백호야 흑흑 ㅠㅠ
슬덩 팬들의 성지순례가 이어졌다


 엄밀히 하자면 지나가는 에노덴도 빼꼼히 같이 화면에 잡혀야 하는데, 에노덴은 거의 15분에 한 대꼴로 있는 데다 이미 앞에 팬들로 바글바글해서 애니 오프닝 화면과 똑같은 각도로 사진을 찍기는 힘들다. 정말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 다 모인 아시아 대통합의 현장이었음. 애니 화면이랑 같은 그림 잡겠다고 죽치고 있을 수는 없어서 적당히 낭만적으로 에노덴 지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강백호를 떠올렸다. 정말 작년 11월 오사카 갔을 때만 해도, 내가 뜨거운 코트를 가르며 강백호 너에게 가고 있을 줄 어떻게 알았겠어. 열병 오른 것처럼 슬램덩크만 찾고 있는 내 인생 책임져라.


 실컷 강백호 생각을 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하세데라로 가기로 했다. 근데 파도를 만끽하고 있는 서퍼들의 모습, 비린내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산뜻한 바다, 말간 날씨의 콤보 플레이에 한 정거장 정도는 풍경을 음미하며 걸어보기로 했다.(가마쿠라코코마에 역에서 시치리가하마 역까지, 걸을만한 거리다)


 원래 이 바다가 서핑 장소로 유명한 곳이라고. 불현듯 슬램덩크의 해남부속고 주장 이정환 취미가 서핑이었던 것이 생각났다. 이정환도 여기서 서핑했겠지 하고 생각하며 오타쿠는 슬며시 웃음 지었다. 여기 있으니 만화고 현실이고 분간이 안되는 지경이 되었다.


카마쿠라코코마에 역 쪽 바다는 서퍼들의 천국이기도 하다
이 곳의 하늘도 바다도 바람도, 사람 들뜨게 한다
가마쿠라코코마에 역에서 시치리가하마 역으로 가는 길. 조용한 분위기가 맘에 든다




꽃과 나무로 기억될 아름다운 절, 하세데라


 사실 하세데라에 대해서는 특별한 기대가 없었다. 그냥 온 김에 들러보자 정도? 나라에도 동명의 절이 있는데 그곳이 더 유명하기도 하고. 가마쿠라 하세데라 근처에 있는 대불, ‘고토쿠인’도 유명한데 나에게 대불은 나라의 ‘동대사’로 충분해. 그래서 고토쿠인은 쿨하게 패스, 하세데라에서만 느긋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하세역에서 내려 도보로 5분 정도 걸으면 하세데라에 닿을 수 있다.


하세역에서 내려 하세데라로 가는 길
하세데라로 향하는 조용하고 소박한 길


 하세데라 입구에서부터 멋진 소나무가 보였다. 조경에 꽤나 신경을 쓴 절이구나 싶었다. 찾아보니 하세데라의 수국이 유명하다고. 6월에 왔으면 좋았을걸 생각하며, 400엔짜리 입장권을 구매하고 들어섰다.


하세데라 입구, 근사한 소나무가 맞이해주었다
입장료는 400엔


 첫인상은, ‘수수하네’였다. 푸릇해지기 시작한 나무, 꽃망울들이 보였고. 그다지 붐비지 않아서 더 좋았다. 계단을 올라가니, 이 절의 본격적인 매력이 드러났다. 본존인 9미터가 넘는 커다란 목조 불상이 박력 있었고, 전망대 쪽으로 가니 가마쿠라의 야트막한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었다. 거기다 커다란 벚꽃나무가 만개해 연분홍 벚꽃잎을 날린다. 수수하다는 인상 취소. 이곳은 가마쿠라의 빼어난 보물이다.


물과 나무가 어우리진 풍경
벚꽃나무가 정말 이뻤다
내려다 본 풍경, 이날 구름도 예술이었네
이런 분위기가 좋았다
그 와중에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했던 스팟








정원이 잘 관리되고 있는 듯했다
이런 절제된 톤의 절이, 너무 아름답다고요
초여름이 다가오면 더 이뻐지겠지
스멀스멀 본격적인 봄의 기운이 올라오고 있었다
복숭아꽃인지, 너무 이쁜 꽃
색깔도 너무 예쁘다


 언뜻 봐도 정성을 들여 잘 가꾼 정원, 알록달록하게 피어오른 꽃들. 그리고 걷다 보니 뭔가 수상해 보이는, 지브리의 영화에 나올 법한 도리이 너머의 동굴까지. 신비로운 경험을 한 것 같다. 꽤나 흐렸던 하늘의 구름이, 하세데라를 쭉 돌다 보니 점차 파랗게 개었다. 푸른 하늘 아래에서 보니 흐렸던 때와 또 다른 이곳의 매력이 느껴졌다. 신비했다가 청순했다가. 그냥 방문해 본 절이었는데 이렇게 홀딱 반하게 될 줄이야. 사람이 별로 없었고, 그래서 조용하고 평화로웠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이 도리이 너머 동굴이 있다, 허리를 꽤나 숙이고 걸어야 하니 주의
멋졌던 일본식 정원
파란 하늘 아래 하세데라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걸음으로 하세데라를 나왔다. 오늘 나는 갈 길이 멀기에. 가마쿠라를 가야지 하며 역으로 걷는데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고. 레트로한 에노덴은 더 좋았다. 심지어 바닥이 나무로 된, 오랜 에노덴에 몸을 싣고 있자니, 저절로 내가 좋아하는 사카이 마사토 배우가 나오는 영화 ‘운명: 가마쿠라 이야기‘가 떠올랐다. 영화 음악을 들으며, 이 열차를 타고 천국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하면서, 가마쿠라 역으로 향했다.


에노덴, 낭만
전철 바닥이 나무라니
사람들이 사랑하는, 레트로한 에노덴


https://www.youtube.com/watch?v=sCf5sF0k9kU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