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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Apr 16. 2023

가마쿠라 신사에서 신주쿠 전망대까지

(2023년 3월 24일 여행)


 하세데라 구경을 하고 하세역으로 돌아와 에노덴을 타고 가마쿠라역으로 향했다. 코마치도리를 지나 쓰루가오카하치만궁에 갈 생각으로.




구경거리, 먹을거리가 많은 상점가 '코마치도리'


 가마쿠라 역에 내려서 곧 발견한 도리이. 빨갛고 거대한 도리이를 기점으로 코마치도리가 시작된다. 식당이며 기념품가게, 간식가게들이 주욱 늘어선 코마치도리는 언뜻 아사쿠사의 상점가를 떠올리게 했다. 코마치도리가 더 규모가 컸지만. 가마쿠라의 명물이라는 시라스동(멸치덮밥) 집이 눈에 띄었는데 날생선에 서툰 나로서는 도전 불가. 슬슬 배가 고파지던 시점이라 뭐라도 하나 사 먹을까 고민하다가 부처모양 빵과 당고를 파는 가게를 발견해서 미타라시 당고가 들어간 소프트아이스크림을 먹기로 했다.


코마치도리 입구의 화려한 도리이


 사람이 꽤 있었던 터라 줄을 조금 서서 주문했다.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해서 가게 안 작은 벤치에 앉아 있었는데, 아이스크림 치고는 나오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 그래서 가게 직원분한테 제 아이스크림은 언제 나오나요~ 여쭤봤더니 깜짝 놀라면서 주문이 누락된 것 같다고 하셨다. 확인 안 하면 계속 기다릴 뻔했네. 당고 아이스크림은 곧 받을 수 있었는데, 가게 주인분이 너무 미안해하시면서 사과하시고 당고하나를 서비스로 주셨다. 사실 그리 큰 일도 아니었는데, 이렇게까지 사과하시니 도리어 내가 뻘쭘해진다.


맛있었던 미타라시 당고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이스크림 늦게 줘서 미안하다고 받은 미타라시 당고, 맛있었다


 이런 작은 해프닝이 있은 후 받은 당고 아이스크림은 너무도 맛있었다. 당고는 편의점 당고만 먹어봤는데 가게의 당고는 쫄깃쫄깃 말랑말랑했고, 달콤 짭짜름한 간장소스도 우유 소프트 아이스크림과 잘 어울렸다. 아이스크림을 냠냠 먹으면서 코마치도리를 빠져나가 조금 더 걸으니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는 도리이 너머로 쓰루가오카하치만궁이 보였다.





벚꽃이 어우러진 가마쿠라 대표 신사, '쓰루가오카하치만궁'


하치만궁 앞에 거대한 도리이


 이곳은 간토 지방을 다스리는 무예의 신인 ‘하치만’을 기리는 신사라고 한다. 가마쿠라의 대표 관광지로 유명하다. 내가 방문했을 때는 신사 앞에 벚꽃이 만개해 있어서, 신사 자체보다 벚꽃에 더 눈이 갔다.


신사 앞의 벚꽃이 너무 이뻤다
아름다운 풍경, 물만 좀 깨끗했다면 좋았을걸


 확실히 절이었던 하세데라보다 건물의 위용이 있어 보였다. 입구의 도리이에서부터 그랬지만, 이곳은 노골적인 붉은색 투성이다. 구름이 많았던 오전과 달리 하늘이 파랗게 개어서 이곳의 이미지는 더 선명해졌다. 무엇보다 신사 내 벚꽃이 분위기를 더 돋우는 듯. 동전을 시주하고 소원을 비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나는 아사쿠사에서 빌고 왔기 때문에 이 신사는 패스. 대신 여유롭게 걸으며 구경하는데, 좀 큰 규모의 신사다 보니 산책하는 재미가 있었다. 신사 밖에는 호수가 있고 그 위에 오리들이 둥실둥실 떠있었다. 물이 좀 깨끗하지 않은 듯 해, 그 점이 조금 아쉬웠을 뿐. 가만히 오리를 구경하다 가마쿠라 역 근처에서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느릿한 걸음으로 나섰다.


일본 신사나 절에 가면 소원을 빌고 있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간절한 소원이 이루어지길
거닐만한 곳이 많았다
역시 벚꽃이 더해지니 더 이뻤음




정갈하고 건강한 가마쿠라 가정식, ‘sahan’


오가와 이토 작가의 ‘츠바키 문구점’이라는 소설을 좋아한다. 이 소설의 배경은 가마쿠라로, 소설에서 언급된 식당 중 제철 식재를 사용한 가정식을 선보이는 ‘sahan’이라는 곳을 가기로 했다. 자세한 후기는 기 작성 포스팅 참고.


https://m.blog.naver.com/saddysb/223069294228





강렬한 기억으로 남을, 에노시마 신사


 오늘 오후 5시 정도부터 비예보가 있었다. 가마쿠라까지 온 김에 에노시마도 들르자 생각했었는데, 비 오기 전에 에노시마를 가려면 나는 사실 오늘 좀 서둘러야 했다. (에노시마는 말 그대로 섬이라서, 여기서 비바람을 맞으면 정말 살벌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계획 따윈 세우기만 할 뿐인 자유로운 여행자로 자란 나는, 머리로는 몇 시까지는 에노시마에 가야지 했지만, 꽃구경하고 느긋하게 식사하고 주변 풍경 둘러보느라 그 시간을 지킬 수 있을 리가.. 곧 비가 올 것 같았지만 그래도 이까지 온 김에 에노시마 신사는 가보자 하는 생각으로 에노덴을 타서 에노시마 역에 내렸다.


에노덴이 지나는 것 만으로 운치 있는 풍경이 된다


 에노시마 역에서는 에노덴을 예쁘게 볼 수 있어서 여기서 또 넋 놓고 있었다. 저 초록 열차는 참 낭만적이구만. 몇 년 전 후쿠오카에서 유후인 가던 길에 탔던 ‘유후인노모리’ 열차가 생각났다. 유후인노모리도 초록색이었는데. 개성 있는 일본 열차는 보는 재미도, 타는 재미도 색달라서 좋았다.


에노시마 역에 내려서 쭉 걷다가 이런 지하도가 나오면 들어가면 에노시마 신사로 향하는 대교로 진입할 수 있다
솔개가 날아다니는 히가시하마 해변


 역에서 에노시마 신사까지는 직선거리를 주욱 걸으면 된다. 걷다 보면 지하도가 눈에 띄는데 이쪽으로 들어가면 에노시마로 가는 다리에 진입한다. (지상으로 가면 대로를 건너는 횡단보도를 찾아 주욱 돌아가야 한다. 어떻게 아냐고요? 저도 알고 싶지 않았습니다.. )


 에노시마를 향해 걸어가는 방향 기준으로 다리의 오른편으로 걸어야만 신사로 향할 수 있다. 왼편으로 걸으면 히가시하마 해변을 마주할 수 있지만, 중간에 길이 끊기기 때문에 신사로 가려면 다시 오른편으로 건너와야 한다. 곧 비가 쏟아질 것 같은 이 상황에서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빨리 신사로 갔겠지만, 여기서도 나는 해변을 거닐고 싶다는 생각에 왼편으로 넘어가서 노닥거렸다. 여기 해변에는 갈매기 대신에 솔개가 있다더니, 과연 꽤나 큰 덩치의 솔개들이 휘익- 소리를 내며 날고 있었다. 까마귀들도 함께. 뭔가 먹을 걸 들고 있으면 저 솔개한테 낚아 채일 것 같다는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아니, 가만히 서있어도 만만하게 보이면 공격당할 것 같았다. 거세지는 바람에 점점 커지는 파도를 넋 놓고 보다가 지하 통로를 통해 다리 오른편으로 넘어와서 신사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신사 올라가는 상점가 입구


 신사로 올라가는 길은 교토 청수사로 가는 니넨자카, 산넨자카를 떠올리게 했다. 규모는 그보다 작았지만. 양 옆으로 기념품 샵 등이 있었지만 꾸무리해지는 하늘색을 보고 바로 신사로 향했다. 에노시마는 섬이 평평하지 않고 산처럼 되어있다. 그래서인지 이 신사, 올라가는 계단이 장난 아니다. 신사 입구 도리이를 지나도 계속 계단이 나왔다. 쉴 틈이 없지, 슬램덩크의 정우성에 빙의해서 그가 신사 300 계단을 뛰어오르던 투지를 떠올리며 계단을 후다닥 뛰어올랐다.


신사로 이어지는 계단. 이 신사, 호락호락하지 않다
평지가 아니라 우뚝 솟은 느낌이라서 더 위엄 있었다


 헉헉거리며 도착한 신사의 커다란 벚나무가 꽃잎을 휘날리며 나를 반겨주었다. 에노시마 신사는 풍요와 예능을 관장하는 불교의 여신 ‘벤자이텐’을 모시는 신사라고 한다. 모처럼 이까지 땀 뻘뻘 흘리며 올라왔는데, 여기서는 소원을 빌어볼까 싶어서 동전을 세전함에 던지고 소원을 빌었다. 하치만궁은 무예의 신을 모시고 있다고 해서 한국인으로서 영 찜찜했는데, 여기는 예능을  관장하는 신이라니 괜찮겠다는 나의 선입견. 시원한 바닷바람에 날리는 벚꽃 잎을 보니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흐린 하늘이라, 색깔이 정제된 흑백의 느낌이 났는데 그래도 벚꽃 핀 풍경은 아름답구나
흐린 날 보니 더 분위기 있어 보인다


 여유도 잠시, 곧 굵은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산을 챙겨 오기는 했지만, 3단 접이식 우산이라 거센 바람을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서둘러 신사를 내려와 상점가를 지나쳐서 바다 위 대교를 건넌다. 역시 아까 섬 들어올 때와 확연히 다르게 거칠어진 바람, 쏟아지는 굵은 빗방울에 우산을 썼지만 어깨와 다리가 젖어들어가기 시작했다. 힘없는 우산이 뒤집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손에 힘이 들어갔고, 얼굴로 들이치는 빗방울을 막기 위해 우산이 점점 내려가서 시야도 가려졌다. 진작 서둘렀으면 이렇게 고생할 일이 없었을 걸, 생각해 보니 헛웃음이 나왔다.


 일본에 여행 와서 섬의 대교를 험한 비바람을 맞아가며 힘겹게 걸을 줄 어떻게 알았을까!(그것도 내 발로 초래한 결과다) 주변을 둘러보니 나처럼 손에 힘 꽉 주고 비틀비틀 걷는 사람들이 보였다. 내 앞에는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학생 셋이 접이식 우산 2개를 나눠 쓰고 ‘아 나 어깨에 비 맞아!’ ‘나도 맞아, 우산 좀 제대로 들어줘’ 하며 걷고 있었다. 우산을 챙겨 오지 않은 한 명을 원망하지도 않고, 이 상황에 욕도 안 하고 꾸역꾸역 붙어 걷는 애들이 어찌나 귀여운지.


 나도 비바람에 당황한 것도 잠시, ‘그래 이것까지 즐겨주마’ 하며 정신줄을 놓았다. 젖은 옷은 마르겠지 뭐. 비가 쏟아붓는 와중에 에노덴을 타러 돌아가는 길에 에노시마의 명물이라는 타코센베(문어전병)까지 사 먹었다. 문어 한 마리를 통째로 눌러서 얇은 전병으로 만든 건데, 얇아서 그런지 식감이 독특하고 짭짤하니 맛있었다. 바람이 세게 부니까 전병이 부러질 수 있으니 손으로 잘 잡고 먹으라는 가게 점원의 말에 인사를 꾸벅하고, 후지사와역으로 돌아가기 위해 에노덴을 타러 바삭바삭한 전병을 먹으며 걸었다.


에노시마 역 가는 길에 보였던 문어전병 가게
에노시마 명물이라니, 먹어줘야지!




신주쿠 아후리 라멘


 에노시마에서 비에 쫄딱 젖은 생쥐꼴을 하고 에노덴을 타서 후지사와로 이동, 후지사와에서 오다큐센을 타고 신주쿠로 돌아왔다. 저녁에 후지사와-신주쿠 라인은 사람이 꽤 바글바글했으나 일찍 줄을 서서 전철을 기다리고 있었던 덕에 앉아 올 수 있었다.


 저녁을 뭘 먹을까 고민하다 라멘을 먹으러 가기로. 마침 신주쿠 루미네에 전부터 먹어보고 싶었던 라멘집이 있어서 그곳으로 향했다. 자세한 후기는 아래 포스팅 참고.


https://m.blog.naver.com/saddysb/223074626965





화려한 신주쿠의 야경을 볼 수 있는 무료 전망대, 도쿄도청 전망대


 신주쿠에서 야경을 보고 싶어서, 도쿄도청 전망대를 가보기로 했다. 도쿄도청에 45층 높이에 무료 전망대로 개방되었다. 12년 전에 왔었는데, 오랜만에 다시 가보게 되어 감회가 남달랐다.


 저녁 먹고 소화시킬 겸 슬슬 걸어서 도쿄도청으로 가본다. 가는 길에 벚꽃이 또 흐드러지게 피어있어서 한동안 서서 벚꽃 구경을 했다. 밤이 되어도, 비가 추적추적 내려도 벚꽃은 참 이쁘다. 이번 여행에서 꽃구경은 진짜 실컷 하는구나 싶었다.


아름다웠던 벚꽃
꽃송이가 흐드러졌다


 도쿄도청에 도착하면 전망대 안내 사인이 있다. 그쪽으로 따라가다 보면, 소지품 확인을 하고 내부로 들여보내준다. 유명한 유료 전망대가 아니라서 그런지 사람이 거의 없어서 바로 안내해 주신 엘리베이터를 타고 45층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45층에 들어서서 창밖을 바라보니 12년 전의 기억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그때와 그다지 변한 게 없구나. 이곳 전망대에서는 잘 정돈된 도쿄 제일의 오피스 지구를 내려다볼 수 있다. 360도로 뱅글 걸어 다니며 야경을 보는데 질리지가 않는다. 상징적인 건물은 안내판에 설명이 나와있는데, 아 여기 보이는 저 건물이 어떤 건물이구나~ 하고 알 수 있다. 이상하게도 전망대에서 야경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그 화려함이 이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뭔가 허무한 기분이 든다. 이쯤에서 시티팝을 들어보고 싶은 기분.


번쩍이는 고층건물과 상대적으로 빛이 없는 넓은 공원


 한참 여유롭게 돌아보고 한층 아래에 있는 화장실도 다녀왔다가 전망대를 내려왔다. 무료인 데다 잘 관리되고 있는 전망대이니, 시간이 나면 방문해 보는 걸 추천한다.


 비로 습기가 더해진 신주쿠의 밤거리를 눈에 꼭꼭 담으며 숙소를 향해 걸었다. 비에 젖은 신주쿠에서는 한결 더 시티팝스러운 분위기가 피어오른다. 나는 외국인이니까 이 길도 이국적으로 보이는 거겠지, 생각하며 내일은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아쉬움이 마음속에서 피어올랐다.


비 오던 신주쿠의 밤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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