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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Jul 30. 2017

나홀로 이탈리아 여행 계획 세우기

로마, 바티칸, 피렌체 그리고 베네치아.


프롤로그

 평소 동경해왔던 나라들이 있다. 쿠바, 스페인,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줄곧 동경해 왔지만, 그 상세한 이유는 나 자신도 모르겠다는 것이 다소 아이러니. 아무래도 스페인과 아르헨티나는 축구와 메시, 탱고 때문일 것 같고. 쿠바는 체 게바라의 투쟁 같은 삶에 대한 동경과 자본주의가 본격 침투하기 전의 세상을 보고 싶은 호기심에. 그리고 이탈리아는 내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오드리 헵번의 '로마의 휴일' 영화와, 소문으로만 들어왔던 낭만 가득한 공기에 대한 갈망, 도시 가득 역사를 품은 건축과 예술을 오롯이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로마의 휴일 오드리 헵번이 머물렀던, 관광객들로 가득한 로마 스페인 광장

 지구 상의 모든 나라들을 탐내는, 여행을 동경하는 사람 치고 나의 이탈리아 입성은 다소(?) 늦은 감이 있다. 너무 어린아이일 때보다는 조금 더 단단해진 어른이 되었을 때, 마음의 여유와 경제적 능력을 겸비하고 나서 오롯이 나의 힘으로 로마의 땅을 밟고 싶었다. 마치 냉면 한 그릇을 먹을 때 올려진 계란을 마지막에 먹는 것처럼, 나는 가장 맛있는 것을 나중에 먹으려고 남겨두는 사람이니까. 내가 제법 나다운 사람이 되어있을 때, 이탈리아를 처음 만나고 싶었다.  

밤에 바라본 웅장한 베네치아 광장
솔깃한 식당들이 많았던 로마 나보나 광장 뒤편의 골목

 이탈리아는 유럽여행의 끝판왕이므로, 이 땅을 밟는 순간 다른 유럽들이 시시해질 수 있다고 말하는 것에 귀가 솔깃했던 것도 있다. 그러나 다녀와서 느낀 것은 내가 이탈리아 땅을 더 빨리 밟았다면 나의 여행들은, 그리고 나의 취미와 삶의 자세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많이 바뀌어 있었을 것 같다는 것. 이탈리아를 다녀오면 다른 유럽은 볼 필요도 없다는 말은 짧은 시간 여러 나라를 거치는 패키지여행을 하는 일부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통하는 말일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나처럼 일 년에 한두 번 휴가를 내서 한 나라로 여행을 가는 사람에게는 그다지 큰 의미가 없는 말이다. 모든 나라는 저마다 다른 얼굴과 사람들을 가지고 있고, 감동적이며, 그곳들을 여행하는 나 자신의 모습도 매번 다를 테니까. 지금이라도 이탈리아를 다녀와서 다행이다. 지금이라도 이탈리아를 사랑하게 되어서 다행이다. 나는 벌써 다음 이탈리아 여행을 계획하고 있으니.

알록달록 아기자기했던 부라노섬


여행 준비

 첫 직장을 퇴사하고 대학원에 들어가 MBA를 하고서는, 직장인으로서의 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바빴던 학교생활이 채 끝나기도 전에 쫓기듯 입사를 했고(마지막 기말고사 바로 다음날 입사), 나와 맞지 않는 회사의 스타일에 마음은 계속 방황하고 있었다. 하는 일에 대한 의구심이 항상 있었고, 이 회사에서의 내 미래가 쉽사리 그려지지 않아 곧 마음에 탈이 났다. 하기 싫은 일을 계속하면 못 견딘다는 것을 알기에, 다시 이직을 결심. 첫 직장을 그만두며 나는 이제 하고 싶은 일들을 찾아 떠나 다니는 용병(?)과 같은 삶을 살겠구나 싶었지만, 그 순간은 생각보다 빨리 왔고, 1년 반 조금 넘게 있었던 두 번째 직장에서의 퇴사는 첫 직장보다 더 쉬웠다. 그리고 다음 회사의 가닥이 잡히자마자 여행을 떠날 준비를 했다.

대양의 신 오케아노스가 지키고 있는 트레비 분수

 회사 그룹웨어 로그인 화면은 한 달에 한번 꼴로 바뀌었는데, 어느 날 접속을 해보니 눈이 시리도록 파란 바다가 있었다. 베네치아였다. 순간 이탈리아를 간다면 지금이 적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회사 입사 전까지 10일 남짓한 기간밖에 없었지만, 나는 그동안 얽매일 곳이 없잖아? 맘껏 이탈리아를 사랑해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미 7월로 들어선 시점이었기 때문에 항공권도, 숙소도 비싸겠지. 하지만 가고 싶었다. 어차피 지난 몇 달간 삶에 별 의욕이 없어 사치스러운 쇼핑도 안 했다는 것으로 스스로 명분을 만들며 항공권부터 열심히 찾았다.

문제의(?) 회사 그룹웨어 로그인 화면

 가장 가고 싶은 곳은 당연히 로마. 여행 기간을 8일 정도로 잡았기에 한 군데 정도는 더 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 바다 좋아하니까 베네치아를 가보자 하고 단순한 결론을 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로마든 베네치아든 한 군데에서만 8일을 머물렀어도 모자랐을 것 같다. 둘 다 몇 달쯤 진득이 머물고, 살아보고 싶은 곳이었다.

포로 로마노, 이 곳에서 얼마나 많은 영광과 몰락이 있었을까
호텔 캘리포니아를 열창했던 낭만적인 로마의 버스커들

 로마 in, 베네치아 out으로 루트는 단순하게 구성. 로마에서 베네치아로는 대부분 기차를 타고 가지만, 나는 로마에서 베네치아로 가는 길에 하늘에서 베네치아를 내려다보고 싶었기에 그 구간도 비행기를 타기로 결정했다. 공항 구경하는 것도 좋아하는 데다, 항공권 자체도 그 구간을 빼든 넣든 가격차이가 얼마 나지 않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숙소는 혼자 가는 여행이니까, 쾌적하고 안전하게 프랜차이즈 호텔들로 정했다. 로마에서는 테르미니 역 근처의 베스트웨스턴 로열 산티나로, 베네치아에서는 메스트레 역 근처의 더 플라자로. 숙소 가격은 내가 머무는 싱글룸 기준 10만 원 대로 생각보다 비싸지 않았다. 로마 테르미니 역 근처에는 호텔들이 많은데, 베스트웨스턴 호텔 쪽은 비교적 안전했다. 소매치기나 집시를 마주친 적도 없고, 새벽에 들어온 적도 있는데 주변이 꽤 밝아 그리 무섭지 않았다.

흔한 베네치아의 골목, 하늘과 바다와 건물의 조화
첫눈에 반했던 베네치아

 베네치아는 본섬에 숙소를 잡으면 밤늦게까지 야경을 보고 거리에서 술 한잔 하며 분위기에 취할 수 있지만. 돌바닥과 계단이 많아서 여행가방을 끌고 다니기 어렵고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에 비해 낡은 곳들이 많아 그런 부분들을 고려해 보아야 한다. 내가 잡은 두 숙소 다 역에서 5분 내 거리에 위치해 있어 공항을 오가기에는 참 편했다. (그러나 베네치아에 있으면서는, 산마르코 광장 근처에서의 밤이 너무도 좋았기에 바포레토와 버스 막차시간에 쫓긴 것이 아쉬웠다. 하루 정도는 본섬에 숙소를 잡아둘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밤의 산마르코 광장, 낭만에 취할 수 있는 곳
산마르코 광장 카페에서는 5중주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주변 지인 중에 본인은 피렌체가 너무 좋았다며 제발 피렌체도 하루 갔다 와주면 안 되냐기에, 얼마나 좋았으면 나에게 이런 부탁(?)을 할까 싶어, 막판에 로마 머무는 기간 중 피렌체 당일치기 일정도 슬쩍 넣었다. 로마에서 이딸로나 트렌 이탈리아 같은 기차 급행으로 1시간 반 정도면 피렌체에 도착할 수 있다. 역에서 (우리 모두가 사랑해 마지않는, 냉정과 열정사이의 바로 그곳) 피렌체 두오모까지 걸어서 20분 정도 걸리기에 당일치기로도 고려해 볼 만 하다.

피렌체 대성당, 이탈리아 건축 대부분이 그렇지만 디테일이 압도적

 항공권, 숙소, 도시 내 교통편, 피렌체 두오모 입장까지 예약 완료. 그런데 로마가 어떤 곳인가. 모든 건축물이, 모든 광장이, 성당들이 위대한 이야기를 간직한 곳 아닌가. 나의 짧은 지식으로는 도무지 로마를 잘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았기에, 하루는 로마 워킹투어를 신청해두었다. 주요 명소를 걸어 다니면서 관련한 설명을 듣고 적당한 곳에서는 자유시간을 갖는, 그런 무난한 프로그램이었다. 그리고 바티칸시국도 꼭 한 번 가보고 싶어서 바티칸 투어도 신청했다. 이쯤 되니, 지식적으로도 꽤나 든든한 여행이 될 것 같아 뿌듯했다. 지금 와 생각해도 참 잘한 선택들이었다.


 회사에 작별인사를 고했다. 아쉬웠고, 동시에 후련했다. 무엇보다 내일 이탈리아로 떠난다고 생각하니, 두근거려 잠이 오지 않았다. 오드리 헵번이 거닐었던 스페인 광장,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가 있을 바티칸, 도시 안 일렁이는 물결을 가로지르는 곤돌라의 베네치아. 모든 것이 너무나 환상적일 것 같았다.

로마의 포폴로 광장, 한적하고 아름다웠다

 로마, 바티칸, 피렌체, 베네치아에 대한 추억들을 잊지 않기 위해 글을 남겨 보려고 한다. 예술에 압도당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느낄 수 있었고, 내가 좋아하는 향신료들을 저렴하게 맘껏 살 수 있어 행복했고, 시민들을 위해 내놓은 광장들에 털썩 앉아있던 순간들이 멋졌고, 눈 앞에 펼쳐진 풍경에 감동해 눈물을 흘렸다. 너무나 멋진 우연한 만남들도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틈틈이 글을 쓰려고 키보드를 챙겨갔지만, 아무런 글도 쓸 수 없었다. 눈에 풍경들을 담기에도 시간이 모자랐다. 순간의 감정을 기록해 두기 위해, 눈에 보이는 곳들의 스케치만 몇 점 즉흥적으로 했을 뿐, 마음이 진정되고 나서야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글의 힘을 맹신하는 나조차, 그 아름다웠던 이탈리아에서 내가 느낀 감정들을 오롯이 표현해 낼 수 있을지 의심스럽지만.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 돌이켜 보았을 때 여행을 추억할 수 있도록 글을 쓰는 것도 정말 행복한 것 같다.

2천 년을 살아온 콜로세움, 경외심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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