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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Dec 03. 2017

브랜드 체험의 정수, 암스테르담 하이네켄 박물관

 이탈리아와의 눈물겨운 이별을 하고, 인천으로 돌아가는 길. 모처럼의 유럽행이었는데, 그냥 가기 아쉬워 귀국 편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11시간 정도 경유하는 표로 끊어놓았다. 암스테르담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기차로 한 시간이 채 안 걸린다고 하니, 풍차 마을까지는 못 가더라도 시내 구경은 괜찮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암스테르담 중앙 역을 나와 본 풍경
물길 위로 배가 둥둥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는 주정뱅이(?)로서, 나는 맥주는 브랜드를 막론하고 공장에서 갓 뽑은 신선한 맥주가 제일이라 생각하기에, 암스테르담에 내리자마자 갈 곳은 '하이네켄 익스피리언스'로 정했다. 공항에서 일단 암스테르담 중앙역으로 향했다. 창밖에 펼쳐지는 네덜란드의 색깔은 이탈리아의 그것과는 또 달랐다. 피곤함도 잊은 채, 중앙역에 내려 밖으로 나오니 눈 앞의 수로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고전적인 베네치아의 바닷길과는 다른 매력이 있었다. 풍경에 대한 감탄도 잠시, 대체 나는 무슨 트램을 타야 하이네켄 맥주공장으로 갈 수 있는 것일까 머리를 굴려본다. 사전 준비가 없으면 이런 게 문제이긴 한데, 나는 대부분 그냥 쉽게 해결을 내는 편이다. 오늘 나의 해결책은 저기 교통서비스 관련된 조끼를 입고 있는 아주머니에게 해맑게 물어보는 것.

암스테르담의 수로는 베네치아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

 그분은 암스테르담 관광청 관련 공무원이었는지 그 자리에서 암스테르담 홍보물 책자를 보여주며 나의 목적지로 향하는 트램 번호를 알려주셨다. 표도 그분을 통해 살 수 있다고 하여 거리에서 트램 왕복표까지 구매 완료(카드단말기를 통해 신용카드로만 결제가 가능했다). 일단 트램은 탔고, 지도를 펼쳐 들고 내릴 곳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자니, 트램 방송으로는 못 알아들을 네덜란드 말만 나온다. 억지로 정차역으로 추측되는 네덜란드 말을 머리에 구겨 넣어, 눈치껏 하이네켄 익스피리언스가 있는 곳 근처에 슬쩍 내려봤다. 다행히도 덩치 큰 하이네켄 공장 건물은 눈에 아주 잘 띄었고, 신선한 맥주를 마실수 있다는 생각에 후다닥 달려갔는데 역시 입장 줄이 길다.

반가워 하이네켄!
하이네켄 앞의 수로, 여유가 있으면 배를 타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사전 예약도 할 수 있는데, 나는 그냥 즉석에서 결정한 거라 그런 준비 따위 했을 리가 만무. 얼른 들어가고파 하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아무리 봐도 이 입장 줄에 동양인(그것도 여자 혼자)은 나밖에 없어서 너무 눈에 띈다. 어색하게 꽂히는 시선을 애써 피하고 있는데, 내 뒤에 줄을 서고 있는 중년 부부가 참지 못하고 나에게 말을 건다.

위풍당당한 하이네켄 브루어리

 얘 어디서 왔니, 혼자 왔니, 네덜란드에 대해서 어떻게 알고 왔니 등등. 호쾌한 아저씨는 자꾸 필립스 아냐고, 필립스가 네덜란드 꺼라고 적극적으로 네덜란드 홍보를 하기 시작하시는데, 이럴 줄 알았음 네덜란드 나라에 대해 조금이라도 공부하고 와볼 걸 그랬다. 네덜란드에 대해 내가 아는 거라고는 튤립과 아약스 밖에 없어서, "아.. 아약스?" 하니까 이 아저씨 너무 좋아하신다. 옆에서 아주머니가 그만 물어보라고 타박을 주지만, 아저씨는 계속 영어를 단어 단어 이어가며 힘겹게 네덜란드에 대해 설명해주고 싶어 하셨다. 나는 이렇게 선한 의지로 자국에 대한 자부심을 내비치며 안내해주려는 현지인은 언제든지 웰컴이기에 웃으면서 듣고 있는데, 투어를 마친 할머니 한 분이 또 오셔서는 내게 배지 두 개를 건네신다. (하이네켄 익스피리언스에서 입장권을 사면 조그만 배지 두 개가 달린 팔찌를 주는데, 투어 말미에 이 배지 하나 당 맥주 한 잔으로 교환해 마실 수 있다.)

이 배지 하나당 하이네켄 한 잔이다 유후

 그 할머니는 할아버지랑 거의 매 주말마다 이 하이네켄 익스피리언스에 오는데, 본인은 맥주를 많이 마시지 않는다며, 배지가 남으니 너 이거 가져가서 먹으렴! 하시는 것. 내 주변에 맥주를 오크 통째 들이부을 것 같은 건장한 청년들이 이리도 많은데, 굳이 나에게 배지를 건넨 것은 내가 동양인이라 그런 것인지, 아니면 주정뱅이일 것 같아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나는 맥주를 좋아하니 땡큐 베리 머취 하면서 받아 든다. 그 모습에 사교성 좋은 네덜란드 아저씨 부부도 웃음이 팡 터졌다. 새로운 사람들과 몇 마디 대화 나누고 보니 어느새 내 입장 차례. 현장 구매 입장권은 18유로 정도 했던 것 같은데, 홈페이지 사전예약하면 16유로다. 입장권을 사고, 가방은 맡겨놓고. 한결 가벼워진 걸음으로 투어를 시작했다.

입장하면서 받게 되는 팔찌
이 건강하고 열린 태도 정말 너무 좋다

 입장하면서 보이는 것은 하이네켄 익스피리언스의 Dear, guest. 인종, 종교, 성적 취향에 구애받지 않고 모두에게 친절한 이 안내문을 보면서, 하이네켄에 대한 호감도가 더 상승한다. (역시, drink resposibly 캠페인도 그렇고, 축구 스폰에 적극적인 것도 그렇고 하이네켄은 사랑받는 법을 아는 브랜드다.)

크루의 열정적인 설명
하이네켄 로고의 변천사

 하이네켄의 로고 변천사를 쭉 훑으며 들어가니, 하이네켄 맥주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그 재료에 대해서 설명해주는 크루가 보인다. 수 없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설명을 해와서 그렇겠지만, 이 사람 말솜씨가 개그맨 저리 가라다. 덕분에 투어에 참여한 사람들은 다 하하호호 분위기 업. 심플한 재료들로 그런 상쾌한 맛이 나온단 말이지? 하며 이동하면 하이네켄 브루 룸이 나온다. 맥주를 브루잉 시키는 기계에는 스크린이 달려 있어서, 단계별로 귀여운 그림과 함께 설명이 나온다. 이렇게 비주얼적으로 귀엽게 설명하니 누구나 이해하기 쉽겠다 싶다.

하이네켄 브루 룸
브루잉하는 과정이 이 스크린에 나온다
진지한 꼬마
옛날에는 실제로 여기 말들이 있었다고 한다

 잘 꾸며진 통로를 이동하면 투어의 하이라이트! 갓 뽑은 맥주를 작은 잔에 따르고 다 함께 치어스- 할 수 있는 단계에 입성하게 된다. 크루가 간단히 설명을 해주면서 맥주를 나눠주고, 그 아름다운 황금빛과 살아 올라오는 기포를 눈으로 즐기게 하며, 다 함께 건배를 하도록 제안한다. 입안 가득 시원함과 상쾌함이 퍼지며 목 넘김이 정말 짜릿했다. 신선한 상태의 맥주를 단숨에 입에 털어 넣으니, 피곤함도 날아가고 바로 리프레쉬되는 기분이다. 만면에 떠오르는 미소를 감출 길이 없었다.

저 찬란한 황금빛의 축복을 보라!

 그다음 코스는 '내가 보리알이 되어보기' 체험. 엥 이게 뭐야? 싶지만 놀이기구 입장처럼 줄을 서서 방에 들어가면 앞에는 큰 스크린이 있고, 말 그대로 내가 한 알의 보리로서 맥주가 되기 위해 겪는 과정을 체험할 수 있다. 보리를 볶을 때는 바닥이 흔들리고, 물을 부을 때는 수증기가 나오며, 열기를 쐴 때는 어디선가 뜨거운 기운이 나온다. 다 큰 어른들이 애들처럼 우와 하며 해맑고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맥주 데뷔를 앞둔 보리알은 이런 과정을 겪는 걸까, 이토록 귀여운 발상을 하는 하이네켄에 감탄.


 이 체험을 하고 나오면 브랜드 광고 영상을 틀어주는 공간에 입장하게 된다. 하이네켄의 역대 광고들이 나오는데, 어두운 조명에 거대한 스크린을 설치해서 영화관처럼 몰입감 있게 볼 수 있게 해 놓으니, 안 그래도 멋진 하이네켄의 광고들이 더 멋지게 보인다. 그중 단연 눈에 띄는 메시지는 ‘Drink responsibly.’ 유명 카레이서가 등장하는 이 광고 시리즈에는 술을 권하는 파티 상황에서 카레이서가 나는 아직 운전을 하고 있으니 술은 사양하겠소 하고 맥주를 거부하는 장면이 나온다. 주류회사 입장에서는 쉽게 하기 힘들, 공익광고스러운 멘트지만, 이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하이네켄을 오래 사랑하게 만드는 힘이 아닐지. 세뇌시키듯 나오는 하이네켄의 재미있는 광고 영상들은 꽤나 오래 머릿속에 남았다.

가장 큰 dam이라네요

 혼자 놀고 있으니, 짓궂은 크루가 혼자 온 다른 사람이 또 있다고 둘이 같이 다니라며 부추긴다. 아, 아니 저기 그렇게 까지 과하게 친절하게 관람객들을 케어해줄 필요는 없다고. 뻘쭘하게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보니, 이 친구는 터키에서 왔다. 의사인데 몇 개월 암스테르담의 어느 병원에서 진료를 하며 머물게 되었단다. 그러면 혼자 맥주 마시면 재미없으니 같이 한 잔 할까 하고선 루프탑으로 올라갔다. 여기서 입장하며 받은 배지를 내고 하이네켄 맥주를 받을 수 있다! 눈 앞에 펼쳐진 암스테르담 풍경을 안주 삼아 맥주를 들이키니 이토록 시원한 한 모금이 또 없다. 맥주를 마시며 이 친구의 터키 이야기를 들었고, 나는 한국 이야기를 했다. 이렇게  외국인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가고 싶은 곳이 정말 많아진다.

치어-스
루프탑에서 바라본 암스테르담 풍경
하이네켄 병들 알록달록

 하이네켄 익스피리언스는 브랜드의 '체험관'이라는 것이 어떤 방향을 지향하고 어떤 즐거움을 주어야 하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제공하는 교과서 같았다. 누구든 이 하이네켄 익스피리언스를 거치면 하이네켄에 대한 호감도가 상승할 것이다. 야속하게도 비행기 시간이 다가와서, 나는 이 즐거운 놀이터를 떠나야 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시 암스테르담 중앙역으로 향했다. 암스테르담이 이렇게 겨우 몇 시간 마주하고 떠날 곳이 아닌데 하며, 애꿎은 비행기 시간을 탓하면서.

과연 자전거의 천국 암스테르담
구름 사이로 새어 나온 햇살이 예쁘구나

 공항에 도착해서는 장시간 비행을 상쾌하게 하기 위해, 공항 내 호텔 유료 샤워시설을 찾았다. 면세점에 스프릿츠를 만들 수 있는 세트가 있으면 사고 싶었는데(베네치아에는 있었는데!), 여기는 암스테르담이라 스프릿츠는 흔적도 없었다는 거. 대신 베네치아에서 맛있게 마셨던 치프리아니 칵테일을 한 병 샀다. 아, 이제 정말 서울에서 새로운 직장, 또 다른 시작이구나- 하는 마음의 각오를 하면서. 하지만 이탈리아와 암스테르담에 머물렀던 시간들이 너무나 행복했기 때문에, 이 에너지를 충전했으니 한동안 못할 일이 없을 것 같다는 의지가 생겼다. 그렇게 웃으면서 여행의 기억을 정리하고 인천행 항공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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