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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Jul 31. 2017

신에게 닿았을 예술의 경지, 바티칸 시국

 인천공항에서 대한항공의 로마행 비행기가 다소 연착해, 떼르미니 역에 내린 시각은 밤 10시 가까이 되어있었다. 금요일 오후의 인천공항에는 유럽행 비행기들이 많기 때문인지, 종종 연착이 일어난다고 하니 참고해두면 좋을 것 같다.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에서 떼르미니 역까지는 보통 레오나르도 익스프레스라는 기차나 공항버스를 이용한다. 공항버스는 짐을 버스 아래 트렁크에 싣고 가기 때문에 짐을 분실하면 어쩌지 하는 소심한 생각과 함께, 나는 평소 버스보다 기차를 좋아하기에 그 이름도 낭만적인 레오나르도 기차를 택했다.

숙소 쪽 떼르미니 역 입구

 공항에서 떼르미니 역까지는 1시간이 채 안 걸린다. 떼르미니 역에는 승강장이 많은데, 나는 숙소인 베스트웨스턴 로열 산티나 호텔 쪽으로 가기 위해 1번 승강장 쪽으로 가로질러 나갔다. 늦은 시간이라 식당에 들어가긴 애매했지만 배는 고파서 역에서 카프레제 파니노를 하나 사들고 호텔로 향했다. 그리고 호텔방에 앉아 샌드위치도 이렇게 맛있다니 하며 감탄. 많은 토핑이 들어가진 않았지만 신선한 토마토와 치즈, 그리고 빵이 너무나 맛있었다. 고소하고 살짝 짭짜름하면서 질깃한 빵. 급히 배를 채우고 다음날 오전 바티칸 투어를 예약해두었기에, 짐을 후다닥 풀어놓고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두근두근 하는 심장을 부여잡고서.

첫날밤 사 먹었던 카프레제 파니노

 바티칸 시국 투어는 한국의 여러 업체에서 진행하고 있는데, 나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대중적인 업체에 신청을 해놓았다. 프로그램은 대동소이하다. 아침 일찍 모여서 함께 바티칸까지 이동한다. 나의 경우 아침 7시 반까지 로마 지하철 A선의 치프로 역에서 모이기로 되어있었다. 처음 타보는 로마 지하철, 살짝 긴장했는데 지하철 사인인 M모양만 따라가다 보면 표 발권기가 나오고, 영어 메뉴로 선택해 차근차근 화면 내용을 따라가면 표 사기도 쉽다. 지하철 방향 표시도 잘 되어있어, 가고자 하는 역 쪽 종점을 확인하면 잘못 탈 위험도 없었다.  

 현지 가이드분들 말씀으로는 지하철의 가운데를 피하고 맨 앞이나 맨 뒤칸에 타는 것이 소매치기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가운데 칸이 관광객들이 많이 모이니까 소매치기도 이 북적한 틈에서 기회를 노린다는 말씀.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으니 나는 지하철을 탈 때 사람이 없는 칸을 자주 이용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여행 내내 소매치기와 마주친 적도, 물건을 잃어버린 것도 없다. 혼자 와서 사람들이 모여있으면 저 구석에 홀로 박혀 있었고, 누가 옆에 오면 신기함과 경계심을 섞어 쳐다봤기에 접근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겠다.

치프로역 미팅 장소에서 늑대만 한 개가 다녀서 다들 신기해했다
가이드분의 말씀을 전해주는 고마운 수신기

 치프로 역에 내려 사전 미팅 포인트로 갔다. 한국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이런 투어 프로그램은 회사에서 단체 사전 예약을 해 두어 입장이 빠르다는 장점도 있다. 물론 개인적으로 사전 입장 예약을 할 수도 있겠지만, 이 복잡한 바티칸에서 이렇게 단체에, 그리고 현지 사정에 밝은 가이드에 얹혀가니 편했다. 수신기를 하나씩 받고 가이드가 이끄는 대로 쫄래쫄래 따라갔다. 길을 걸으면서도 가이드분이 계속 로마와 바티칸 이야기를 해주셔서 귀를 쫑긋거렸고, 눈은 비로소 처음 제대로 보는 로마의 모습에 휘둥그레 해졌다.


 바티칸 시국은 교황님이 선출되고, 미사를 보는 곳이기에 그 정숙한 분위기를 해치면 안 된다. 많은 성당이 그렇듯, 당연히 복장 규제도 있다. 민소매나 너무 짧은 하의, 슬리퍼 차림은 입장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바티칸 시국 입구에서는 커다란 스카프를 5유로 정도의 가격에 파는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얇고 긴 카디건을 챙겨가면 이런 때 걸칠 수 있고, 날카로운 이탈리아 햇살을 가려주기도 하니 유용하다.

사이좋게 앉은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

 입구에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의 얼굴 모습이 보이고, 입장하는 곳에 조신히 줄을 선다. 단체 사전 예약을 했지만, 전 세계의 투어팀이 다 모여있어서 그래도 기다려야 한다. 성수기라 그런지 사전 예약을 하지 않았다면 3시간은 족히 기다렸을 것 같다. 약 30분간의 기다림 끝에, 우리 팀도 입장.

안녕 바티칸의 아름다운 기둥, 너도 오랜 역사를 봐왔겠지

 바티칸시국에서는 바티칸 전용 수신기를 써야 하기에, 모두들 주섬주섬 투어 회사 수신기에서 바티칸 수신기로 갈아탄다. 친절한 가이드분은 우리들을 한쪽에 앉혀놓고, 본격적으로 바티칸 시국과 미켈란젤로의 천장화, 로마의 역사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다. 지난해 촛불시위를 하며 마련했던 임시 방석을 챙겨갔었는데,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가이드 투어 특성상 이런 식으로 앉아서 설명을 해주는 시간이 꽤 긴데, 바닥에 그냥 앉는 것보다 그래도 방석이 있으면 편하니까.

바티칸의 평범한 복도, 저 조각상들 하나하나 다 디테일이 엄청났다

 가이드분의 설명으로 머릿속으로 상상을 해보니, 라파엘로는 곱상한 얼굴에 단발머리를 한 상냥하고 다정한 청년이었을 것 같다. 미켈란젤로는 한 성격 하는 고집불통에, 곱슬머리에 주저앉은 코를 가진 외골수. 실제로 미켈란젤로는 술집에서 그림에 대한 오만한 발언을 했다가 사람들에게 얻어맞아 평생을 코가 주저앉아있었단다.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보면 '내가 세상에서 그림 제일 잘 그린다'라고 했어도 나는 손뼉 치면서 에휴, 아무렴요, 님 인정 인정! 했을 것 같은데. 사실 미켈란젤로는 잘 알려진 대로 회화보다는 조각을 더 잘하는 사람이었다. 바티칸 시국을 빛내주는 천장화를 남긴 덕에 그가 처음부터 완전히 그림쟁이였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그의 천장화를 찬찬히 뜯어보면 그가 천장화를 완성해 가는 시간 동안 그림 실력도 늘어갔음이 느껴진다.


 그는 조각을 했던 사람이기에 평면적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회화에서도 입체적인 표현을 주는 시도를 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이 빛을 창조하는 모습도 앞모습과 뒷모습을 이어서 함께 그리는 식. 그 디테일에 다시 한번 감탄이 나왔다.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천장화 답게,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 아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려있는 곳이다. 모두가 목이 한껏 꺾인 채 입을 벌리고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목도 너무 아프지만, 몇 년에 걸쳐 허리를 잔뜩 젖힌 채 그림을 완성해 나갔을 미켈란젤로를 생각해보면 이까짓 불편함이야 내색할 것도 못된다. 정말로 그는 육체적 한계를 예술혼으로 넘어선 사람이다. 아마도 천국에 계실 것 같다.

(3대 거장으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가 꼽히는데, 다빈치는 무신론자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의 흔적은 바티칸에서 안 보인다.)


얼마나 많은 노력하는 천재들이 있었을까

 미켈란젤로 천장화 하나만 봐도 이토록 많은 생각과 감정이 떠오르는데, 바티칸에 있는 위대한 예술품들은 그 수를 세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유명한 것들만 꼽아도, 하루가 모자란다. 미술 교과서에서 많이 봤던 토르소를 뱅글뱅글 돌면서 감상할 수 있고, 황금 비율을 자랑하는 잘생긴 아폴론 조각도 볼 수 있다. 그리고 미켈란젤로도 보고 감탄했다는 라오콘 군상이 있다. 그 고통스러운 표정의 생생함과 몸 근육의 표현, 두 아들들이 죽어가는 처참한 분위기에 압도된다. 경외심에 고개가 저절로 숙여졌다.

미소년 아폴론 상
주름 디테일도 예술이다
토르소, 이 앞에서 데생하고 있어야 할 것만 같았다
라오콘 군상, 앞에 마주 서고 있노라면 그 고통이 전해질 정도로 생생하다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은 또 어떤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센터로, 디오게네스, 유클리드, 피타고라스 등등 이토록 파워풀한 주인공들이라니. 관념을 중시하며 하늘을 가리키는 플라톤과, 자연계와 과학을 탐닉하며 손을 바닥으로 향한 아리스토텔레스. 이 둘은 바티칸 입장 티켓에도 간판 모델로 등장하는 위인들이시다. 잊지 않고 인증샷을 찰칵. 서양미술에 문외한인 나조차도 이런 명작을 마주하니 저절로 넋을 놓고 보게 된다. 저런 대작들이 이 바티칸에는 한 둘이 아니다. 정말로 저들은 천재인 데다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고자 하는 노력까지 곁들여 필사적으로 매진했던 것이 틀림없다. 그게 아니고서야, 몇 백 년째 수 천만의 사람들을 아직까지 이렇게나 감동하게 만들 수 없었을 거다.

아테네 학당의 동문들은 세계 최강이군
실제로 교황님이 출입하시는 통로라고 한다
천장 좀 보세요

 사람들에 밀려서 복도들을 지나가는데, 이 복도들도 그냥 복도가 아니다. 천장을 보면 거기에 눈을 의심케 하는 작품이 있고, 벽에도 예술의 혼이 앉았다. 나는 종교가 없지만 이런 위대함을 목도하니 종교가 생길 것 같은, 종교를 가져야 할 것만 같은 그런 기분. 다만 동시에 일행을 잃지 않으려면 매와 같은 눈으로 우리 가이드분의 깃발도 쉬지 않고 쫓아야 했다. 바티칸 시국이 비교적 덜 붐비는 시기는 언제일까. 그때 다시 와서 좀 여유롭게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때는 정말로 이름도 다 모를 멋진 작품들 앞에서 질리도록 바라봐줄 테다.

성 베드로 성당, 들어가는 순간부터 압도적이다
신자가 아니지만 눈물 나게 만들었던 풍경
저 앞에 써진 글씨만 해도 크기가 미터 단위
대체 어떻게 이런 걸 만든 건가요

 성 베드로 성당에 발을 내딛자, 모든 것이 거대해서 크기가 가늠이 안 되는 지경에 이른다. 시선이 천장에서 벽을 타고 바닥으로 내려오기까지, 입이 떡 벌어진다. (사실 입은 미켈란젤로 천장 화보고 나오는 걸음부터 계속 안 다물어진 채였다.) 입구에는 그 유명한 피에타상이 있다. 미켈란젤로가 피에타상을 만들었을 때가 우리나라로 치면 대학생 4학년 때쯤 된 시점이라지. 거의 졸업작품이라고 보면 될 것 같은데, 세상에 어떤 천재가 졸업작품으로 피에타 같은 조각상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옷 주름의 디테일, 무릎, 발가락에 이르기까지 정말 살아있는 사람이 아닌가 싶었다. 이 조각상이 등장했을 당시, 이 어리고 유명하지 않은 조각가를 시기한 사람들은 예수의 표정이 고통스러워 보인다느니, 조각의 비율이 이상하다느니 하는 날 선 비판을 냈다. 그러나 미켈란젤로의 뜻대로 신의 입장에서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성모 마리아에 안겨있는 예수의 표정은 한없이 평온해 보이며 그 둘의 인체 비례도 자연스럽다. 대체 그는 보통 사람들보다 몇 수를 앞서 나가 있었던 걸까. 경외심에 무릎 꿇고 몇 시간이고 감상하고 싶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가장 많은 사람들이 감탄하고 있는 장소 중 하나
하나하나가 예술 작품
많은 신자들이 성지순례의 마지막 단계로 이 분의 발을 만진다고 한다

 나는 신자도 아니고, 예술품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바티칸시국에 대해서는 큰 기대 없었지만, 그래도 미켈란젤로의 천장화가 보고 싶기도 하고 역사에 대해 알고 싶어 투어를 신청했던 건데, 다른 이들에게는 반드시 바티칸 투어를 신청할 것을 권유하고 싶다. 확실히 얻어가는 것이 많고, 느껴지는 것들도 다르다. 그리고 우리 가이드분을 비롯, 다른 투어팀의 가이드분들도 모두 다 열정이 넘치고 하나라도 더 말해주시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우리 가이드분은 법대를 전공하고 이탈리아에 와서 로마에 반해 눌러앉게 된 케이스인데, 정말로 본인이 사랑하는 이탈리아를 우리도 사랑하게 만들기 위해 목이 걱정될 정도로 자세한 설명을 해주셨다. 더하자면, 얇은 카디건과 방석이 있으면 챙길 것. 신발은 반드시 편한 운동화로 신을 것. 나중에는 다리가 아파서 힘이 들었다.

바티칸을 지키고 있는 스위스 근위병들, 한결같이 근엄한 표정

 두오모를 올라갈 수 있는데, 이 곳의 두오모들이 다 그렇듯 계단은 기본 400개가량이 된다. 덥고 다리도 아팠던 탓에 두오모는 포기. 하지만 고통을 참고 오른 자들에게는 아름다운 바티칸 앞 광장과 저 멀리 로마 시내의 모습까지 선사한다고 하니, 다음에는 비수기에 운동화를 신고 와서 올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오모에 올라가면 이 아름다운 광장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고 한다
흔한 바티칸의 복도
그림이었대도 감탄했을 텐데, 건축이라니

 요즘 우리는 누가 어떻게 돈을 더 잘 버는지. 어떻게 더 잘 노는지. 이런 걸로 경쟁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바티칸 시국의 곳곳을 장식하고 있는 예술가들은 오롯이 작품으로 견주기 위해, 스스로와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신에게 닿기 위해, 누가 그 과정을 알아주지 않더라도 몇 년을 묵묵히 작업해냈다. 자존심을 걸고 경쟁자보다 더 나은 작품을 만들어 내기 위해 눈이 멀고, 허리가 꺾여도 견디고, 나중에 다른 이가 알아주거나 보상해주지 않더라도 '나'와 '신'만은 안다는 그런 신념으로. 그런 그들의 가치가 너무 고결해서 눈물이 났다. 나는 그런 인간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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