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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Mar 03. 2018

[영화리뷰] 더 포스트 (The Post)

이토록 파워풀한 두 시간이라니!

 이 영화를 보게 된 것은 순전히 메릴 스트립과 톰 행크스가 논쟁하고 있는 듯한 포스터 때문이었다. 두 배우의 무게감에 이 영화가 무슨 이야기인지, 감독이 누군지조차 모르고 그냥 입장했다가, 나올 때는 물개 박수를 치며 나왔다. 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Best picture와 Best actress부문에 노미네이트 되고, 75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도 Best motion picture, Best director 등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된,  그 작품성도 영화제 기준들을 무난히 통과한 영화. 무엇보다 드라마 장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내가 두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홀려서 본, 더 포스트 영화의 매력에 대해서 이야기해본다.


1. 전쟁을 둘러싼 거대한 국가 음모, 그것만으로 흥미로운 소재

 더 포스트는 미국의 해리 트루먼, 드와이트 아이젠하우어, 존 케네디, 린든 존슨 대통령을 거쳐 리처드 닉슨 대통령 시대까지 지속해 온 베트남 전쟁에 대한 미국 정부의 은폐와 거짓에 대한 폭로를 담고 있다.

 베트남 전쟁 현장에서 그 참혹한 실상을 목격한 기자 다니엘 엘스버그는 당시 베트남 방문을 함께 했던 미 정부 국방장관 로버트 맥나마라가 대국민을 상대로 전쟁이 점점 승리해 나가는 양상이라고 거짓 발표하는 것을 본다. 이에 반발한 그는 맥나마라 장관 주도로 베트남전에 대한 미 정부의 실상을 정리한 보고서, 일명 펜타곤 페이퍼를 조심스레 복사해서 반출하고, 이를 기사로 터뜨릴 준비를 해 나간다.

긴장감을 자아내는 포스터, 캐서린과 벤

 첫 스포트라이트는 뉴욕 타임스가 가져갔다. 1971년, 뉴욕 타임스는 다니엘이 반출한 펜타곤 페이퍼를 기반으로 국민들의 알 권리를 위해 최초로 특종 보도를 터뜨린다. 이에 분노한 미국 정부가 뉴욕 타임스를 고소하게 되면서 뉴욕 타임스는 펜타곤 페이퍼에 대한 추가 보도의 기회를 잃는다. 이 틈에 워싱턴 포스트 또한 은밀하고도 조심스러운 준비를 통해 펜타곤 페이퍼를 입수하고, 이를 기사화시키며 국민들을 우롱한 정부의 행태를 고발한다.


 국민을 상대로 한 정부의 대 사기극. 뭔가 슬프지만 어느 순간부턴가 우리에게도 익숙한 워딩이다. 얼마 전 우리 사회도 맞닥들였던 국정농단 사태와 오버랩되면서, 몰입감을 더욱 높여주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이라니. 미국 현대사를 재현해서 보여주는 듯한 이 영화는, 과장된 플롯 없이 다큐멘터리 같은 자연스러운 전개 그 자체로 흥미를 끌었고 영화 막판에는 닉슨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사건의 힌트를 은근히 보여주면서 막을 내린다.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펜타콘 페이퍼가 끝이 아니었구나 하며 멍하게 앉아 있는데 제작자 이름이 화면에서 올라간다. 스티븐 스필버그. 아- 그제야 이해가 됐다. 거장이 말하는 듯했다. "이보쇼, 나는 끊임없이 고발할 거요, 그러니까 정치 잘하쇼!"


2. 연기 대가들의 팽팽한 대치, 위대한 메릴 스트립의 연기 

정치와 경제 모두 남자들이 이끌던 시대, 살아남아야 했던 그녀

 더 포스트의 주요 내용은 캐서린 그레이엄(메릴 스트립)과 벤 브래들리(톰 행크스)가 이끌어 간다. 특히 영화 초반에는 다소 무기력한 모습들을 보여주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힘을 얻어가는 입체적인 캐서린 캐릭터가 아주 매력적이었다. 캐서린은 남편이 자살하면서 워싱턴 포스트를 떠맡아 이끌게 되는데, 당시 신문사들 중 여성 발행인(회장)이 없던 시절이라 그녀가 겪어왔을 고생은 안 봐도 눈에 뻔하다. 사실 워싱턴 포스트는 캐서린 아버지의 회사였고 아버지가 사위인 캐서린 남편에서 물려준 거여서, 따지고보면 캐서린 소유의 회사인 셈인데 말이다

후반부 캐서린은 주위에 귀 기울이되, 본인의 목소리를 잃지 않는다

 이런 남성 중심의 세계에서 포스트의 이사들은 대놓고 캐서린은 사교계에서야 능력 있지 언론사 회장으로서는 자질이 없다고 대놓고 면박을 주곤 한다. 남자 임원들 천지인 투자자문위원회에서 긴장해서 미리 준비해둔 말 조차 이어가지 못해 발언권을 뺏기는 그녀의 모습에는 여성 기업인을 얕보고 인정하지 않는 1970년대 시대상이 반영되어있다. 그래서인지 극 초반에는 왠지 모르게 주눅 들어있고 주변의 의견에 휩쓸려 다니던 그녀였지만, 점점 위기에 처한 회사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며 결단을 내리는 강한 모습을 보여준다. 여성 기업인으로서 캐서린이 느끼는 인간적인 고뇌가 영화 곳곳에 배어있는데, 오버하지 않고 현실적으로 보여주면서 후반부로 갈수록 캐서린의 모습이 더 드라마틱하게 느껴졌다.

점점 더 강해지는 캐서린을 담백하게 연기한 메릴 스트립

 특히 벤의 아내가 케서린에 대해 한 말은 아주 인상 깊었다. 남들이 너는 안 된다고, 못할 거라고 깎아내리는 말을 듣게 되면 정말 그 사람은 주눅이 들고 아무것도 못하게 될텐데 캐서린은 몇십 년 간 사회에서 그녀를 모욕하는 말들을 들어가면서도 주저앉지 않았다고. 언뜻 보이는 그 시대 여성들의 연대감에서 마치 영화 '히든 피겨스'를 보며 느꼈던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캐서린이 펜타곤 페이퍼 기사 게재에 반대하며, 가족과 회사를 생각하라며 토를 다는 이사들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내 회사고 내 결단이니 따르라고 단호하게 나오는 모습에서는 함께 소리를 지를 뻔!

 

 캐서린과 함께 극을 이끌어 나가는 벤은 투철한 기자정신으로 무장하여 본인의 소신을 지키는 단단한 편집국장이다. 본인의 주관에 있어서는 회장인 캐서린과도 타협하지 않고 날을 세운다. 특종을 잡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워커홀릭이지만, 언론인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고자 하는 결심을 내리는 캐서린에게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는 인물이다. 캐서린과 벤 사이에 일어나는 팽팽한 긴장감이나, 깊은 우정, 소명의식으로 한데 뭉친 모습들을 보면서 이 연륜 있는 연기자들이 얼마나 대단한 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과하지 않은 현실적인 연기만으로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마음을 끓어오르게 하는 힘이 느껴졌기 때문에.


 3. 진정한 기자 정신이란 무엇인가

 워싱턴 포스트는 캐서린에게 가족이자 그녀가 가진 모든 것이었다. 펜타곤 페이퍼에 대한 폭로를 했던 뉴욕타임스가 정부에게 혹독하게 대가를 치르는 모습을 보면서도, 캐서린과 워싱턴 포스트의 기자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내부적으로는 회사 이사진에서, 외부에서는 정부 법무부에서 워싱턴 포스트가 산산조각 날 것이고 담당자들은 감옥에 가게 될 거라고 협박해와도 캐서린과 벤, 그리고 그와 뜻을 같이한 기자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현실에 타협하거나 포기하지 않는 기자들의 노력이 고귀하게 느껴졌다

 오히려 먼저 고소당한 뉴욕 타임스에 힘을 실어 주는 듯, 워싱턴 포스트는 펜타곤 페이퍼에 대한 신랄한 기사를 1면에 실어버렸는데, 이러한 움직임에 다른 유수의 신문사들도 정부의 거짓말을 비판하는 기사를 앞다투어 낸다. 경쟁관계였던 사람들이 자진해서 한 배에 올랐고, 정부로부터 고소당했던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는 함께 무죄의 판결을 끌어내게 된다. 언론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신문사들이 타협하지 않고 이어나간 펜타곤 페이퍼 폭로로 인해 미국 내에서는 반전(反戰) 운동이 일어났고, 닉슨 정부는 이에 분노해 워싱턴 포스트의 기자는 단 한 명도 백악관에 들이지 말고 취재도 허락하지 말라는 불호령을 내린다. 정부에게 전쟁은 돈이 되는 사업이었고, 이로 인해 희생되는 병사들과 정확한 전쟁 상황 공유는 안중에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관객들은 알 수 있다. 정부가 어떤 압박을 해와도 이 기자들은 어떻게든 사건을 파헤치고 은폐된 것들을 밝혀냈으리라는 것을.

 

 영화에서는 끊임없이 양질의 신문기사의 중요성을 피력한다. 캐서린이 수준 높은 기사가 자연스럽게 신문사의 수익을 끌어낼 것이라 말하는 부분도 그렇고, 벤이 국민들의 알 권리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것, 신문은 역사의 초고라고 되뇌는 장면 등. 그것이 바로 고귀한 기자 정신이자 진짜 기자들의 소명이 아닐까. 또한 편집국장인 벤은 회장인 캐서린의 의견은 참고만 할 뿐, 기사의 논조는 본인 보고 판단한대로 정한다는 확고한 철학이 있다. 저마다의 책임감 아래 최선을 다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직업의식을 떠나 인간적인 존경심까지 느껴졌다.

#소신을지키는편집장과 #권력과감정에굴복하지않는발행인 #환상의콜라보

 조회수 올리기에만 급급해 자극적인 워딩으로 제대로 확인해보지도 않은 사실들을 찍어내기 식으로 보도하는, 일부 기자들이 이 영화를 보며 조금이라도 반성하기를 바라며. 수익을 쫓으며 정부와 대기업의 입맛에 맞는 기사들만 보도하며 국민의 눈과 귀를 멀게하는 언론인이 없기를 바라며. 더 많은 사람들이 이 파워풀하고 감동적인 드라마를 보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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