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만하게 이직하기 (1)

퇴사와 이직을 꿈꾸는 이들을 향한 현실적인 이야기

by 산들

30대 초반에 세 번째 직장. 계획 세우기를 좋아하는 나지만, 이건 인생 계획에 없는 거였다.

대학교 졸업 시점에 맞물려 운이 좋게 입사하게 된 통신회사 마케팅 조직. 인생의 봄날을 맞이하듯 신나게 살았던 4년의 끝엔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들어섰고, 결국 국내 MBA에 진학하게 되면서 퇴사. 1년간 국내에서 MBA 하고 졸업 시점에 맞게 또 운 좋게 입사하게 된 모바일 결제 플랫폼 기획 조직에서도 많은 것을 배우고(참아내고) 화장품 회사 플랫폼 조직으로 이직.


글로 표현하면 단지 4~5줄에 불과한 커리어 히스토리지만, 이 몇 줄의 이야기엔 7년이 넘는 시간과 백 명이 넘는 사람들,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고민과 결정들이 걸쳐있다. 한 번쯤 풀어내고팠던, 어떨 때/어떻게 이직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이야기.

커리어를 생각하면 따라오는 생각들이 참 많다

왜 이직을 하려고 하는가

사람들이 이직을 결심하는 데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대략 열에 아홉은 다음 세 가지에 해당되는 것 같다. 하나, 이 일이 적성에 안 맞고 미래가 안 보인다(앞으로 내가 성장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특히, 젊은 직장인들을 갉아먹는 괴물 같은 감정이다). 둘, 일이 너무 많고 힘들다(워라밸 최악, 저녁 시간이 없다. 생활이 무너짐과 동시에 건강도 악화된다). 셋, 나를 무지하게 괴롭히는 사람/사람들이 있다(얼굴만 봐도 스트레스인 사람이 있다. 이 또한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 기타, 일이 무난하지만 너무 재미가 없다거나, 월급이 너무 적다거나 하는 경우들도 있을 수 있겠다. 공무원 준비나 의사/약사 자격시험이나 창업처럼 아예 다른 방향으로의 인생 전환의 필요성을 느끼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 현 직장을 퇴사하고 새 직장으로의 이직을 생각하게 된다.


본인의 일이 자신에게 너무나 잘 맞고 내가 매일 성장하는 게 느껴지며, 협조적인 동료 및 존경스러운 상사 밑에서, 평일 저녁시간을 자유롭게 오롯이 나만의 것으로 삼아 생활할 수 있는 직장인의 수가 얼마나 될까. 만약 직장인의 전형적인 삶이 이렇다면 모두가 직장인이 되고 싶어 할 텐데. 그러나 우리는 안다. 이런 사람들은 엄마 아빠가 그 회사 오너 거나, 전생에 나라를 구해 아~주 운이 좋게 희박한 확률로 좋은 기회를 잡은 것이라는 걸.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언제 로또 한 번 안되나, 취미로 회사를 다니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들을 해본 적 있을 테니까.


나의 경우에는 일에 대한 매력을 못 느낀 점이 컸다.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조직 구성 상 그걸 못하게 되어서 좌절감이 느껴지고, 도통 직무전환은 될 것 같지도 않고, 그래서 매너리즘에 빠지고, 꼭 필요한 일들만 소극적으로 하게 되고, 성과는 크게 안 나고 그게 또 스트레스가 되는 악순환의 반복. 속으로는 열심히 달려보고픈 열정이 있는데 현실은 그냥 편한 게 편한 거지 하고 퍼져버리는 현실에 당도한 순간, 이렇게 시간을 뭉개기에 나는 아직 젊다! 를 외치며 새로운 영감과 에너지를 줄 다른 일(혹은 분야)에 휙 뛰어들어버렸던 것 같다.


퇴직-이직 카드가 피곤한 당신의 삶을 구제해줄 만능열쇠는 아니다

우리가 회사를 그만두어야 할 것만 같은 안 좋은 상황은 수천 가지 일 수 있지만, 대비책 없이 너무 감정적으로 저질러 버릴 일은 아니다. 나이가 많을수록, (특히 나처럼 전형적인 문과생이라) 특별히 내세울 전문성이 없는 사람일수록 더 그렇다. 당장에 나의 생계가 지장을 받게 되기 때문에. 이직할 곳을 확실히 잡아 입사일을 받아놓지 않은 이상, 지금 회사를 관둬도 최소 6개월간의 생활이 유지될 만큼의 돈이나, 더 전도 유망한 일을 하게 될 것이 분명한 탄탄한 백업플랜이나, 빠른 시일 내의 다른 돈벌이 방법이 확보되지 않았다면 퇴사 카드는 꽁꽁 숨기는 게 맞다. (첫 직장에서의 퇴직금을 바탕으로 MBA를 준비하면서 맘 한편에 불안이 도사리고 있었던 이유는, 만에 하나 MBA에 떨어지면 어쩌지, 졸업 후 빠른 시일 내 다시 취업을 하지 못하게 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컸다.)


'퇴사'에 자유인이라는 낭만적인 이미지를 붙여 영감을 얻을 세계여행을 떠나라거나,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이에게) 창업을 시작하라든지 하며 무책임하게 많은 직장인들에게 바람을 넣고 등을 떠밀어 붐을 조성하고, 그걸 돈벌이로 삼는 분위기는 도통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정신 차려야 한다, 이건 어느 책에 나오는 에세이가 아니라 나의 인생이니까. 타잔의 법칙처럼, 저쪽 줄을 먼저 손에 넣어 단단히 잡아놓고 이쪽 줄을 놓는 것이 맞다.


일이 적성에 안 맞을 수는 있지만, 늘 같은 업무만 하게 되지 않을 테니 잠시 욱하는 마음에 적성검사 책을 안고 뛰쳐나오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많은 회사에서 하고 있는 것처럼) 업무의 자리가 나면 우선 사내 공고를 통해 인력 충원을 하는 경우에 참고 기다려볼 만하다. 적어도 퇴사하지 않고 다른 일을 해볼 수 있는 기회는 있는 거니까. 그러나 하고 있는 일과 회사에 미래가 없어 보인다면 그건 정말 심각하게 큰 일이다.


일이 주 3일 이상 밤 10시를 넘기는 심각한 야근 없이는 도저히 처리 불가능할 정도로 너무 많은 경우에는 참지 말고 상사에게 조직 차원에서의 업무 조정이나 재분배를 요청해봐야 한다. 만약 그게 씨알도 안 먹히고 내 건강이 점점 안 좋아지는 게 느껴진다면 진지하게 이직을 생각해 볼 것을 권한다. 회사는 (내가 오너가 아닌 이상) 회사고 나는 계약에 의한 종업원이며, 산재가 아닌 이상 회사는 내가 과로로 건강이 안 좋아지거나 병을 얻어도 책임져줄 이유가 없으니까. 나는 내 업무를 충실히 이행해 회사의 영업이익에 일조할 사명은 있지만, 내 목숨을 갈아 넣어 회사를 지켜야 할 의무는 없다. 내 건강은 내가 챙겨야 한다.


사람이 문제인 경우가 가장 복잡하다. 누가 나를 괴롭힌다면, 다소 억울하더라도 먼저 나 자신을 되돌아본다. 나의 업무처리 방법에 문제가 있나? 내 말투가 공격적인가? 내가 의도치 않게 저 사람의 약점을 때린 적이 있는가? 하다못해 혹시 내 책상이 너무 지저분해서 저 사람이 스트레스받나? 그렇게 본인을 돌아보고, 진지한 대화를 요청해보았음에도 나를 싫어한다면, 저 사람은 아마 아주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는 이상 나를 계속 싫어할 것이다.


그렇다면 계산해 본다. 저 사람과 나는 업무를 함께 해야 하는 사이인가? 정말로 불편하다면 업무 조정을 통해 최대한 부딪히지 않을 방법을 모색한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나와한 팀의 직속 상사라면 좀 괴로워진다. 마땅히 피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그렇다면 또 생각한다. 저 사람이 (나와 마주칠 일이 적은)다른 조직으로 옮길 가능성은 없는가? 혹은 내가 다른 조직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많은 회사들이 매년 조직 이동을 하고 있으니, 그 열차에 타거나 상대방을 태우면 어느 정도 해소가 될 수 있는 부분이다. 다만 시간이 걸릴 뿐.

업무가 힘든 것은 버틸 수 있어도 사람이 힘들면 못 버틴다는 말이 있듯, 직장인을 괴롭히는 것 일 순위는 '다른 사람'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명심해야 할 또 한 가지. 다른 회사로 간다 한들 새로운 곳의 모든 사람들이 다 무난한 성격의 소유자라고 장담할 수 없다. 사람 때문에 이직했는데, 운이 나쁜 경우 그곳에서 더 심한 사이코패스를 만나게 될 수도 있다는 것. 슬프지만 진실이다. 그러니 단순히 사람 때문에 회사가 너무 싫어진다면 최대한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러설 곳 없고 내가 스트레스로 숨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면, 어서 좋은 회사로 이직하길 바랍니다 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다.

이직의 기회는 어떻게 잡아야 하는가

어떤 이유에서든 이직만이 답이라는 확신이 들었다면, 본인의 이력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이는 이직준비자뿐만 아니라 직장인이라면 평소에 해두는 게 좋다. 시기별로 내가 해왔던 업무들, 프로젝트들, 그 규모와 성과를 기록해 두는 것은 좋은 습관이다. 특히 정량적인 수치가 나올 수 있다면 반드시 챙겨서 기록해 두자. 그 기록을 처음 보는 사람으로서는 '성공적으로 수행' 보다는 '신규 가입자 20만 명 획득'이 훨씬 더 설득력 있다. 그리고 내 업무의 성과를 증명할 수 있는 자료가 있다면 빠짐없이 챙겨놓는 것이 좋겠다(하다못해 내 업무와 관련된 신문기사가 있다면 그거라도 캡처해두는 게 좋다). 나중에 신뢰성 있는 포트폴리오가 된다.


이력서가 어느 정도 준비되면 구직사이트에 올린다. '링크드인'에서 프로필을 작성해두면 페이스북처럼 헤드헌터들로부터 1촌 신청이 오고 인메일 기능으로 오퍼가 온다. 링크드인은 모바일로도 많이 쓰기 때문에, 열람이 편하고 프로세스가 빠르다는 것이 장점인 것 같다. 프로필 작성을 할 때는 반드시 잘 나온 증명사진을 등록하고, 짧은 문장으로 본인을 잘 어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 외국계 기업에 관심이 많다면 '피플앤잡'이 유용하고, '사람인'이나 '인크루트', '잡플래닛'처럼 다양한 이용자 수가 많은 사이트도 괜찮다. 다만 본인이 해왔던 업무들과 향후 이직을 원하는 업무 분야나 그 내용을 최대한 명확하게 기입해두어야, 엉뚱한 오퍼를 받는 황당함이나 시간낭비를 줄일 수 있다. ('기획'의 경우에도 개발 베이스의 기획인지, 마케팅 관점의 기획인지를 명시해야 헤드헌터들이 혼란스럽지 않을 것이다.)


헤드헌팅 사이트 외에도, 학연이나 지연을 활용해 자리를 찾아보는 방법도 있다. 간혹 선배가 본인 회사에서 사람을 찾고 있다는 귀가 쫑긋해지는 소식을 전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회사에서는 급하게 신뢰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을 찾을 때 임직원의 지인 찬스를 유용하게 이용한다. 그러나 그 말을 해주는 지인의 회사 인력 충원계획이 비공식적인 것이라면 성사될 확률이 그리 높지 않으므로, 헤드헌팅 사이트 이력서 등록은 꼭 해두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모두 잘 알겠지만 이직을 원하는 직종이나 회사는 본인이 지금까지 걸어왔던 커리어와 미래의 모습을 충분히 고려해서 신중하게 정해야 한다. 간혹 지금까지의 커리어를 뒤엎고 아예 새로운 직장을 얻으려고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 신입 지원이라고 생각하고 준비해야 한다. 전략상 득 될 것 없는 경력이라 생각한다면 과감하게 삭제해버리는 결단도 필요하다. 첫 직장과 첫 경력이 생각보다 중요한 것이었다는 걸 이직 준비하면서 많이 느꼈던 것 같다.

인생이 걸린만큼 충분한 계획이 필요하다

일부 헤드헌팅 유료 사이트들도 있는 것으로 아는데, 개인적인 경험에 따르면 굳이 프리미엄 유료 계정을 이용하지 않아도 좋은 오퍼들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 사이트 한 곳에 이직을 희망한다고 명시하고 등록하면, 헤드헌팅 회사들이 정보를 돌리는지 다양한 곳에서 연락이 온다. 그러니 나의 이직 희망 소식이 널리 잘 퍼질 수 있도록(?) 이력서를 잘 다듬는 것에 힘쓰자.


쓰다 보니 글이 길어져서 헤드헌터나 이직 면접 관련, 그리고 이별 방법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 이어 써야 할 것 같다. 이제 겨우 회사에서 허리가 된, 7년 차 되는 직장 경력자이지만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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