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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명한 6가지 매력의 바르셀로나

by 산들

바르셀로나 여행을 가기로 마음먹은 것은 세계 최고의 라이벌 FC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경기 엘 클라시코를 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4년 전 여름에 동생과 함께 마드리드-세비야-말라가-그라나다-바르셀로나 여행을 했을 때 바르셀로나를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기도 했고. 바다 낀 도시에 끌리고, 한 도시에 진득이 오래 있는 것을 좋아하는 나답게, 바르셀로나에서만 9일을 머무는 여행 계획을 세웠다. 항공은 도하 경유의 카타르 항공, 호텔은 universitat 역 근처 한 군데로 예약하고서 출발!


1. 바르셀로나를 먹여 살리는 수호신, 가우디

그라시아 거리는 널찍하고 깨끗하다

바르셀로나 관광수익의 8할은 가우디가 책임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매력이 많은 곳이지만, 나 같은 초급 여행자에게 느껴지는 바르셀로나에서의 가우디 파워는 정말 막강하다. 그의 대표적 건축유산 중 가장 유명한 것들만 추리자면 구엘공원, 성가족 성당, 까사 바뜨요, 까사밀라 등이 있다.

(까사밀라는 현지에서 ‘라 페드레라’로 불린다. 이는 까사밀라가 건축되던 당시, 소위 돈 있는 사람들이 과시성으로 짓던 건물과는 확연히 다르게 개성 있었던 모습을 못생겼다고 비하했던 것에서 기인한다. ‘라 페드레라’는 ‘채석장’이라는 뜻. 하지만 놀랍게도 구글 지도에서 한국어로는 ‘라 페드레라’ 대신에 밀라를 위한 집, ‘까사밀라’라고 표기해주고 있다)

구엘공원의 너는 용이냐 도마뱀이냐
구엘공원에서 만난, 가우디가 사랑한 여자 모습으로 만들었다는 석상

2014년 방문했을 때는 나의 준비 부족으로 인해 가우디 건축물 안으로 입장하지는 않고 밖에서 봤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리하고 아름다운 건축과 자연의 조화에 크게 감탄했었다. 이번에는 가우디를 제대로 즐겨주리라 다짐하고 가우디 투어를 예약해 까사밀라에서 집결해서 구엘공원-까사 바뜨요-성가족 성당에 이르는 가우디 대장정을 했었다(까사밀라와 까사 바뜨요는 입장하지 않고 밖에서 가이드분의 설명을 듣는 코스였다). 살아생전에는 크게 인정받지도 못했고, 그를 후원했던 자산가들(구엘이나 밀라 등)도 결국 대부분 사업이 망해서 지속적인 후원을 받기 힘들었던 비운의 예술가지만.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그가 만들어낸 세계 안으로 들어가면 가우디는 진정한 천재였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비가 내리면 모래-자갈층을 거쳐 정화가 되어 천장에서 내려온다
앉으면 허리가 무진장 편하도록 가우디가 설계한 구엘공원의 벤치
구엘공원은 기둥 하나하나 다 특별했다

이탈리아 여행을 하면서도 느꼈었지만, 하루 이틀 정도 시간을 내여 그 도시에 대한 지식투어를 하면 나와 도시 간의 거리가 한결 가까워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비록 나는 여기서 이방인이고 말도 통하지 않지만, 상대방과 적어도 통성명하고 가족관계, 성격 정도는 알고 어울리는 느낌이 든달까. 4년 전 여행에서 가우디에 대한 호기심이 일었던 터라, 투어를 통해 까사밀라, 구엘공원, 까사 바뜨요, 성가족 성당에 대한 설명을 들었고, 투어에서 입장하지 않는 까사밀라와 까사 바뜨요는 개인적으로 온라인을 통해 예약해 내부를 관람했다.

성가족 성당 중 가우디가 담당해 작업했던 부분의 위엄
성가족 성당 내 거대한 스테인드글라스로 컬러풀한 햇살이 스며든다
개성 있고 압도적인 성가족 성당의 내부

구엘공원과 성가족 성당은 말할 것도 없는 멋진 곳이지만, 특히 까사 바뜨요가 주는 충격은 기대 이상이었다. 까사 바뜨요는 다양한 관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고 한국어 지원도 되는데, 사람이 없는 까사 바뜨요의 내부를 조용히 관람하고 싶어 인원 한정으로 8시 반 입장을 받는 ‘첫 관람’ 프로그램을 미리 예약해 두었다. 과연, 그라시아 거리를 지나다니며 선망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던 까사 바뜨요는 동화와 천재성의 결합, 그 자체였다.

까사 바뜨요의 시원한 채광
까사 바뜨요의 푸른 내부 발코니의 색은 위로 올라갈수록 진해진다
계단 난간의 불투명 유리를 통해 보면 정말 물속에 있는 것만 같다

까사 바뜨요는 흉폭한 용으로부터 공주를 구한 기사 성 조지의 전설에서 착안해 건물 여기저기를 구성했는데, 용의 몸체 곡선을 형상화해 건물 꼭대기 곡선을 만들었다. 용의 비늘은 가우디의 전매특허 트랜카디스 공법(색색깔의 타일을 조각내 붙인, 마치 모자이크 같은 표현법. 구엘공원의 슈퍼스타 도마뱀도 트랜카디스를 이용한 작품)으로 꾸며져 있다.

용의 전설이 깃든 듯

용이 성 조지의 칼에 찔려 피를 흘렸을 부분에는 창이 나 있으며(전설에 따르면 그 피에서 빨간 장미꽃이 피어났다고 한다. 그래서 성 조지의 날에는 빨간 장미로 까사 바뜨요를 꾸미는데 정말 장관이라고 한다), 용을 찌른 칼은 신앙심 깊었던 가우디가 십자가 모양의 기둥으로 표현해 옥상에 올려놓았다. 외관의 층 사이 사람 뼈마디 모양처럼 보이는 기둥은 그 용에 의해 희생당한 사람들을 상징. 길 건너에서 건물을 올려다보거나, 까사 바뜨요 옥상에 올라가면 이 전설 속 이야기를 상상하며 챙겨 보기를 추천한다.

바다의 동화를 형상화한 것 같았던 까사 바뜨요

까사 바뜨요의 외관도 너무나 멋지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물속에 있는 듯한 환상적인 기분이 드는데 말로 다 표현하기도 어렵다. 한국어 설명이 나오는 수신기를 끼고서 시선은 물이 흘러내리는 듯한 천장에서부터 모든 햇살을 총 천연색으로 투영해내는 넓은 유리창, 파란 타일을 일렁이는 물결처럼 보이도록 만든 불투명한 유리 난간을 가로지르느라 쉴 틈이 없었다.


물이 떨어지는 모습과 물고기의 뼈 모습을 박아 넣은 듯한 내부 인테리어도 센스 있고 멋지지만, 자연을 중시했던 가우디 답게 조화로운 채광을 위해 건물 가운데 태양빛이 들어오는 발코니를 내면서 아래층 타일은 연하게, 위쪽 타일은 좀 더 진하게 구성하고, 창의 크기도 아래쪽이 더 크게 만들어 놓은 그의 발상에 다시 한번 존경의 박수를. 관람 말미에는, 거리 방향의 발코니에서 사진을 찍어주고 이 사진이 마음에 든다고 하면 인화해서 파는 과정이 있는데, 인생 사진을 건지고 싶다면 반드시 예쁜 옷을 입고 까사 바뜨요로 향할 것을 추천한다!

이렇게 단독 발코니 샷을 찍어준다

집 한 채인 까사 바뜨요 만 해도 이토록 찬사가 넘쳐나는데. 부드러운 곡선의 외관이 시선을 사로잡은 또 다른 느낌의 집인 까사밀라, 내리는 비가 자갈과 흙의 자연 필터를 거쳐 식수가 되도록 고려한 환경친화적이면서 예쁘기까지 한 구엘공원, 전 세계 성당들 중 가장 개성 있고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성가족 성당 이야기까지 하면 글 분량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가우디 이야기는 여기까지. 요약하자면 가우디 투어 추천, 그리고 관심이 있다면 예약을 통해 꼭 내부까지 들어가 볼 것. 투어에서 들은 이야기를 배경 지식 삼아 혼자 여유롭게 돌아보는 시간이 그렇게 좋더라!

(성가족 성당과 구엘공원은 투어사에서 예약해주셨고, 까사 바뜨요는 여행 가기 전 한국에서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 까사밀라는 근처에서 밥 먹다가 즉흥적으로 가고 싶어서 모바일로 예약했는데, 생각보다 예약이 쉽고 빨라 바로 이동해 관람했다. 가우디의 유산 앞에는 항상 사람들이 북적거리니 가급적 예약할 것을 추천!)

까사밀라는 가우디가 몬세라트 산 능선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
까사밀라의 옥상, 저 탑 머리 부분이 다스베이더 투구의 모티브
까사밀라의 가구, 가우디는 입주자들을 위해 가구 제작도 했다


2. 세계 축구의 성지, FC바르셀로나의 캄프 누

나의 최애캐 메시

바르셀로나가 가우디 못지않게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 바르셀로나 사람들을 붙잡고 물으면 백이면 백,

FC바르셀로나(애칭 바르사)라고 답할 것이라 자신한다. 내가 팬이라서 그런 것만은 아니고, 바르사는 전 세계 축구 구단 중 가장 인기가 많고 실력이 좋은 구단 중 하나다. 축구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메시의 이름은 들어봤을 터. 그 위대한 메시를 품고 있는 구단이 바로 바르사다. 바르셀로나 여기저기를 거닐다 보면 바르사 유니폼을 입고 있거나, 바르사 구단 상품을 파는 매장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꾸레로서 너무나 행복했던 순간
경기가 있는 날이면 팬들이 어마어마하게 몰린다

바르셀로나는 지하철 시설이 좋은 편이고 역이 촘촘히 이어져 있으며, 10.2유로짜리 T-10 카드를 사면 10번의 지하철/트램/버스를 경제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등 대중교통 이용이 매우 편리하다(75분 내 환승도 된다!). 바르사의 홈구장 캄프 누는 10만 명에 육박하는 인원이 수용 가능한 대형 구장임에도 시내 중심에서 지하철로 손쉽게 이동 가능한 곳에 위치해있다. 구장이 있는 collblanc역까지는 내 숙소가 있었던 universitat역 기준으로 환승 1회 포함 20분 정도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캄프 누의 메가스토어에 들어서면 맞아주는 마네킹들
바르사의 핵심 멤버들

그만큼 접근성이 좋을뿐더러, 스포츠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눈이 휘둥그레 해질만한 메가스토어가 있으며(텅장 되는 거 순식간이다), 캄프 누 익스피리언스를 예매한 경우 구장 안 선수들이 경기 시 입장하는 통로까지 가볼 수 있다! 나는 2014년 월드컵이 한창일 때 캄프 누 익스피리언스를 했었는데, 바르사의 트로피 향연과 멋진 선수들 영상에 감탄했고, 빅이어 모조 트로피를 들고서 사진 찍어주고 구장 잔디까지 밟아볼 수 있도록 알차게 꾸며놓은 구성에 아주 만족했었다.

엘클 경기 때는 모두에게 응원 깃발을 나눠주었다


메시의 움직임에 따라 경기의 흐름이 바뀌었다

경기가 있을 때 여행하게 된다면, 캄프 누에서 경기를 관람하는 것도 추천한다. 열성 꾸레들에 둘러싸여 응원가를 부르거나 함께 흥분해 주심에게 화를 내거나, 선수들의 움직임을 직접 눈앞에서 보는 멋진 경험은 두고두고 기억 속에 남을 거라 장담한다. 나는 운이 좋게도 엘 클라시코와 비야레알 경기를 1층에서 관람했는데, 바르사 선수들의 생생한 움직임에 감탄했고(특히 엘클경기 대박), 어슬렁대는 메시/달리는 메시/골 넣는 메시의 모습을 직접 두 눈에 담았다는 사실에 감격의 눈물을 흘렸으며, 17/18 시즌을 마지막으로 일본으로 떠나는 이니에스타에게 기립박수로 예우하는 물결에 함께 했다. 인생의 큰 버킷리스트 하나를 달성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또 다른 야망을 마음속에 품게 된 멋진 경험으로 심장이 계속 두근거려 결국 그날 밤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무승부 경기 후 자축포가 터졌다(무패 신화 깨지기 전 ㅠ)
고생한 선수들 모두에게 박수를


3. 최고의 스테이크와 온갖 타파스, 와인

보께리아 시장에서 파는 하몽을 사다가 냠냠
보께리아 시장에선 신선하고 맛난 생과일주스가 단돈 1유로!

올리브, 토마토, 하몽을 사랑하는 나에게 스페인은 미식의 나라다. 미식에 있어서는 스페인 북부의 산 세바스티안 지역이 핫하다고는 하나, 나는 바르셀로나에서만 머물 몸. 바르셀로나의 음식도 한국에 비해 저렴하고 내 입에 정말 잘 맞는다. 특히 하몽 가격은 한국의 4분의 1도 안 되는 지경. 왜 한국에만 수입되면 이렇게 가격이 뻥튀기되는지 모르겠다고 툴툴대며, 나는 거의 매일 하몽을 먹었었다. 보께리아 시장에 가면 하몽이랑 치즈를 들고 다니며 먹을 수 있도록 작게 나눠서 3유로 정도에 파는데, 이게 얼마나 맛있던지. 맥주 한 잔과 함께 먹으면 정말 끝내준다!

고딕지구 구경 후 간단히 한잔, 소소한 행복

한 두 입이면 끝나는 다양한 재료로 만든 따빠스 가게들이 바르셀로나에 널려 있으니, 혼자 여행 온 사람도 비교적 덜 서럽게 다양한 메뉴를 즐길 수 있다는 사실. 그중 나의 베스트 메뉴는 하몽이멜론(하몽과 멜론이 같이 나오는 요리), 감바스 알 아히요(올리브 오일에 새우와 마늘을 넣고 끓여낸 요리), 빠따따 브라바스(깍둑 썰기한 감자를 튀겨내고 매콤한 소스를 뿌린 요리). 맥주 혹은 샹그리아 한잔하면서 오래 걸어 지친 다리도 쉬고, 맛있는 요리를 먹으며 한결 달콤한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마트에서 하몽, 치즈, 비스킷, 와인을 사다가 야식타임! 맛있고 저렴하다
바르사 훈련장 근처에서 먹은 피자, 꿀맛!

뿐만 아니라, 꽤 괜찮은 스테이크 하우스들도 많은데, 카탈루냐 광장 근처에 있었던 ‘파타고니아 비프&와인’에서 먹은 lomo 스테이크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전채 샐러드로 식욕을 돋운 뒤 레드와인 한잔으로 목을 축이고 스테이크 한 점 입에 넣는 순간, 브라보! 천국으로 날아올라 가우디 알현하고 지상으로 내려오면서 메시와 하이파이브하는 기분이랄까. 너무 맛있었다. 와인과 온갖 향신료에 정통한 웨이터는 내가 궁금한 걸 물을 때마다 성심성의껏 답해 주었다. 후한 팁을 주고 싶게끔 만드는 곳이었다. 천천히 여유롭게 맛을 음미하며 메인 요리를 끝내고, 이런 곳이면 디저트도 예술이겠다 싶어 주문한 티라미스와 함께 카페 꼰 레체(라테) 한 잔 하니 나는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파타고니아 비프&와인의 환상적인 로모 스테이크! 굽기는 미디엄
파타고니아 비프&와인의 티라미스, 항상 옳은 티라미스

그란비아 거리를 걷다가 메시네 가족도 가끔 온다는 소리를 듣고 찾아간 레스토랑 ‘9 reinas’ 도 빼놓을 수 없다. 9 reinas에서는 가게 이름을 그대로 딴 샐러드가 있어서 시켜봤는데, 빙고! 신선한 시금치에 바삭하게 튀긴 닭, 딸기에 소스를 버무려 내주는데 이렇게 맛있는 닭고기와 신선한 조합의 샐러드는 처음 먹어봤다. 필렛 스테이크 고기 질이 아주 좋았고, 곁들여 마신 말벡 와인과의 조화도 기대 이상. 디저트로 여기서도 카페 콘레체를 마셨는데, 서비스가 훌륭했던 웨이터가 식사의 마무리로 무료로 내 준 샴페인 덕분에 더욱 행복했던 식사로 기억에 남았다. 이 두 식당은 혼자 식사했을 때 전체-메인-후식까지 50유로 정도의 비용이 들었고(누렸던 호사에 비하면 저렴), 다음에 바르셀로나에 방문하면 반드시 다시 찾아갈 곳들이다.

9 Reinas 샐러드 저 닭고기의 맛을 잊을 수가 없다
9 Reinas의 부드러운 필렛 스테이크
마무리는 샴페인!

그밖에 메뉴 델 디아(오늘의 메뉴)를 내놓는 식당들도 많은데, 보통 스타터-메인-디저트로 구성이 되고 가격은 단품들보다 훨씬 저렴하다. 가끔은 익숙지 않은 식재료나 요리법이 나와서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이 또한 재미있는 여행 추억으로 생각하면 될 일. 여행에서 음식은 정말 중요한 부분들을 차지하기에, 혼자 온 여행자들도 음식에 대해서는 욕심을 부렸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 사실, 혼자 식사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아무 신경도 안 쓴다는 사실!

하몽이 저렴해서 너무 좋았다
성가족 성당 근처에서 먹은 빠에야, 짜지 않고 맛있었다
바르셀로나 대성당 근처 Satan’s coffee에서 먹은 토스트


4. 바르셀로나의 전망을 한눈에, 몬주익 성

몬주익 성 올라가는 길

이 아름다운 도시 전체의 모습을 눈에 담고 싶어 찾아갔던 곳은 몬주 익성이다. 야경 스폿으로 몬주익 성이 많이 거론되지만, 사실 이 곳은 카탈루냐 역사에 있어서도 아주 중요한 곳이다. 몬주익 성은 스페인 왕실 군대로부터 카탈루냐를 지키기도 했고, 반대로 스페인 왕실에 의해 카탈루냐를 공격하는데도 쓰였으며, 카탈루냐 독립 투쟁의 상징 ‘루이스 콤파니스’가 총살된 곳이기도 하다.

위엄이 느껴진다
이 곳에 많은 사람들이 수감되었고 생을 마감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 곳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몬주익 성의 역사에 대한 비디오를 볼 수 있다. 조금 숙연해진 마음으로 성으로 진입하면 낡고 커다란 대포들이 놓여있다. 카탈루냐 독립에 대한 열망은 현재 진행형이다. 나는 스페인 사람이 아니기에 어떠한 입장을 지지하기엔 어렵지만, 그래도 프랑코 왕정 독재시대 때 카탈루냐가 겪었던 수난과 FC바르셀로나 대 레알 마드리드의 경쟁관계를 생각하면 카탈루냐에 대한 애정의 마음이 크다.

이렇게 정원 같은 곳도 품고 있다
몬주익 성에서 보이는 항구

역사를 빼놓고 보더라도 몬주익 성은 위에 말했다시피 아름다운 바르셀로나의 도심 전경과 바다 풍경을 감상하기에 아주 좋은 장소다. 바다 뷰는 항구에 컨테이너들이 쌓여있고 화물선들이 이동하는 모습들만 보여, 언뜻 인천항이 떠오르지만. 이 바다와 항구 덕분에 예부터 바르셀로나는 외부 문명과 활발하게 교류해왔고, 무역으로 부를 쌓을 수 있었다. 현재의 바르셀로나를 만드는데 아주 중요한 요소였다고 할 수 있겠다.

루이스 콤파니스, 잠시 그를 기리는 순간
낡은 대포는 아직도 바다를 향하고 있다

전망대(미라도르)에 올라 도심 전경을 바라보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저기 멀리 에스파냐 광장과 성가족 성당이 눈에 띄고, 오렌지 빛깔의 건물 꼭대기들과 촘촘히 나 있는 길을 보면 그냥 조용히 앉아 도시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싶어 진다. 구엘공원 안의 광장에서도 바르셀로나 도심이 예쁘게 내려다 보이지만, 몬주익 성은 더 높은 곳에서 전체를 파노라마로 담는 느낌이랄까. 최근 몇 년 사이에 '벙커'도 야경 감상의 메카로 떠오르고 있지만, 벙커는 교통편이 애매하고 해가 지면 특히 위험하기 때문에 혼자 가는 여자 여행자들에게는 노을 지는 몬주익 성을 추천하고 싶다.

(내가 여행했을 때 벙커에서 어떤 여자분이 점프샷을 찍겠다고 뛰었다가 추락해서 크게 다치셨다고 들었다. 쾌유를 바라고, 여행자에게는 안전이 제일이라는 것을 모두 다시 한번 생각했으면)

바르셀로나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기분이 상쾌하고 좋았다!
복도도 멋지다

나는 푸니쿨라를 타고 내려서 버스를 타고 몬주익 성으로 올라갔는데, 버스로 구불구불한 길을 올라가며 창밖으로 본 바르셀로나 모습도 참 예뻤다. 기회가 된다면 도시락과 시원한 샹그리아를 챙겨서 와도 좋을 것 같다. 공원이 잘 조성되어있기도 하고 중간중간 걷다가 배고프면 앉아서 바르셀로나를 내려다보며 간식거리를 먹으면 너무나 기분이 좋을 것 같으니까!


5. 태닝과 신남을 원한다면 바르셀로네타 해변

몬주익 성에서 본 바다가 항구의 바다라면, 바르셀로네타는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들의 바다라고 할 수 있다. 몬주익 성 구경을 끝내고 내려와 바르셀로네타 쪽으로 이동했는데, 바닷가로 들어가는 초입에는 물건을 파는 상인들이 즐비했고 아침엔 흐렸던 하늘이 본격적으로 맑은 햇빛을 드러내면서 더욱 활기찬 인상을 주었다.


토마토 바른 빵을 올리유에 적셔 새우 한 마리 올려 먹으면 최고!

가게 이름이 위트 있는 ‘새우의 왕’이라는 곳에서 새우 요리를 먹으며 샹그리아 한잔 하고 살짝 취기가 올라올 즈음, 가게를 나와 해변을 걸었다. 해변가로 칵테일을 파는 노점, 바들이 늘어서 있고 바다 쪽에는 뜨거운 태양을 두 팔 벌려 환영하는 사람들이 드러누워 있었다. 수영할 생각은 없었기에(5월 초 바르셀로네타 해변의 물은 꽤 차다), 발만 적셨는데 신발을 양손에 쥔 채 파도가 밀려오면 도망가고 물러다면 다시 쫓아가기를 30분, 어느새 꼬마들이 이 행렬에 동참했고 누가 아이고 누가 어른인지 모르는 광경이 펼쳐졌지만 즐거웠다.

물은 생각보다 찼다
바르셀로나의 젤라토도 괜찮다!
모두 드러누워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저 갈매기 크기 실화나

한쪽에서는 사람들이 발리볼을 하고 있고, 또 다른 곳에서는 아이들이 축구를 하고, 반대편에서는 길거리의 예술가들이 스패니시 기타 연주를 하고 있으니, 관심 있는 곳을 골라 자리 깔고 앉아 바라보면 한 시간이 후딱 지나간다. 베네치아 갔을 때 바포레토를 타고 리도섬에 갔었는데, 그 섬이 보여준 해변보다 조금 더 활기차고 조금 더 상업적인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걷기만 해도 그림이 되고 뮤비가 되는 곳
포트벨은 활기차다

해변가를 벗어나 걷고 있자니 목이 말랐는데, 블랙 랩이라는 이름의 수제 맥주집을 발견해 들어갔다(블랙 랩=블랙 래브라도=까만 래브라도, 강아지 덕후인 내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름이다). 맥주 리스트를 보니 개성 있는 이름과 설명들이 한가득이다! sour lady라는 맥주와 감자튀김을 받아 들었는데 맥주 한 모금하자마자 예쓰! 개성 있는 상큼한 맛이 입안을 감도는데, 마치 ‘더부스’에서 바질 맛이 나는 맥주를 처음 마셨을 때의 그 느낌이다. 향신료들을 좋아하는 내 입맛에 딱, 일반적 범주의 맥주 풍미를 기대한 사람들에게는 맞지 않을 그런 특별한 맥주였다. 모리츠 수제 맥주 만드는 곳도 가본 적이 있는 게 내 취향에는 이 집 맥주 리스트들이 더 잘 맞는 듯. 오늘 하루 태닝 좀 하고 기분 좀 내고 싶어, 그런 맘이 든다면 바르셀로네타로 향할 것!

블랙 랩의 맥주 리스트
바르셀로네타 해변 근처에서 마신 수제 맥주, 개성 있는 훌륭한 맛
베스트 멤버인 듯
뭘 만들고 있는 건지 들어가 보고 싶어 진다


6. 중세시대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지로나

하루 정도는 바르셀로나 근교 도시를 가야지 생각했었다. 처음에는 아름다운 바다의 도시, 메시가 최근에 산 호텔이 있다는 시체스를 갈 생각이었으나, 날씨가 좀 흐리고 비를 뿌릴 것 같길래 지로나로 목적지를 바꿨다. 지로나에 가려면 산츠역 등에서 버스나 렌페를 타는 게 편한데, 나는 산츠역에서 출발하는 렌페를 선택. 바르셀로나 여행자들의 동반자, T-10으로 커버되는 범위가 아니므로 표를 사야 한다. 특급은 40분 정도 걸리고 일반 표는 1시간 20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렌페를 타고 지로나로!
피렌체와 비견되곤 하는 지로나의 풍경

지로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미드 ‘왕좌의 게임’이나 한드 ‘푸른 바다의 전설’ 촬영지로 유명하다고 하는데, 나는 그 두 드라마 모두 본 적이 없으므로 패스. 그냥 구시가지 골목들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생각이었다. 지로나 역에 내려 15분 정도 걸으니 구시가지 입구가 보였고 또 발 닿는 대로 걷다 보니 지로나 대성당이 보였다. 마침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대성당들의 시대’가 흘러나오기에, 성당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티켓을 구입.

지로나에서 만난 큰 멍멍이 너무 순했다
길거리가 참 운치 있다
좁은 골목들마다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 듯한 느낌
흔한 지로나의 기념품 클래스

바르셀로나의 생기 넘치는 햇살을 가득 담아내는 가우디 건축물에 익숙했던 눈은 어둡고 위엄 있는 지로나 대성당 내부 모습에 잠시 당황. 스테인드 글라스 사이로 스며오는 빛을 제외하고는 빛이 들어오는 곳이 없어서 생각보다 깜깜했고, 그래서인지 그 속에서 보는 채플의 모습은 훨씬 엄숙했다. 성가족 성당이 밝은 빛들이 왈츠를 추는 이미지였다면, 지로나 대성당에서는 무릎 꿇은 성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저절로 숨소리도 죽이게 되었고, 이것이 오히려 또 색다른 기억으로 남았다.

지로나 대성당은 엄숙했다
지로나 대성당에서 만난 천사
그림 같았던 복도

성당을 보고 나와서 배가 고파 메뉴 델 디아 간판을 걸어놓은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마음 가는 대로 고른 스타터-메인-디저트에 와인 한 잔을 차례로 받아 들면서, 다음에 뭐가 나올까 하며 드는 묘한 기대감이 식욕을 더욱 돋우는 것 같다. 내가 고른 스타터는 양파 수프였는데, 지금껏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마치 가스파초를 처음 먹었을 때의 그 임팩트를 받았다. 날이 흐려 몸이 조금 으슬으슬했는데, 볶은 양파를 베이스로 한 뜨끈한 양파 수프를 받아 드니 몸에 뜨거운 기운이 도는 것 같았다. 지금껏 먹었던 수프 중 단연 최고.

지로나에서 만난 취향저격 뜨끈 양파수프
도전이었던 송아지 육회 요리, 고기가 신선해서 좋았다

문제는 메인 요리였는데 veal이라는 이름만 보고 송아지 요리구나 하고 신나서 시켰더니 받아 든 것은 육회! 나는 회 같은 날 음식을 잘 먹지 않기 때문에 잠시 당황했지만, 에잇 색 다른 곳에서 모험 한 번 해볼까 하고 호기롭게 포크를 들었다. 눈 딱 감고 한입 입에 넣었는데, 웬걸, 비릴 거라는 나의 예상과 달리 송아지 고기를 어떻게 저몄는지 아주 부드러웠고 그 위에 뿌린 올리브 오일과 파마산 치즈가루와도 조화가 잘 맞았다. 의도치 않은 음식 도전이었지만, 다행히 패배는 면한 기분. 디저트로 산딸기 소스를 곁들인 치즈케이크와 에스프레소를 한 잔 하니 다시 두 시간 더 걸을 기운이 생겼던 것 같다.

이 문을 넘어가면 기사를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골목에 아기자기한 화분이 떠다닌다
구불구불한 골목들을 헤집고 다니는 재미가 있었다

지로나는 에펠탑으로 유명한 구스타프 에펠이 만든 붉은 철제 다리나 언뜻 피렌체가 연상되는 강가의 건물들, 지로나 대성당을 주인공 삼아 홍보하지만 사실 진짜 주인공은 구 시가지의 골목들이었던 것 같다. 골목마다 색다른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었다. 어느 골목은 정말로 동굴 같았고, 또 어딘가는 알록달록한 화분들로 장식되어 있었으며, 마법의 문을 여는 것처럼 비현실적인 공간들도 있었다. 사람들로 붐비지 않았기에 더 나의 몽상 속으로 빠져들 수 있었던 것 같다. 시간의 여유가 있다면 좁은 계단에 앉아 책을 읽거나, 스케치를 하거나 사진으로 담아내면 좋을 것 같은, 그런 화려하지 않지만 숨겨진 이야기가 있을 것 같은 곳이었다.

구스타프 에펠이 만든 다리
카탈루냐의 독립과 독립 지지 정치인들의 사면을 요구하는 지로나

그리고 지로나는 바르셀로나보다 더 카탈루냐 독립에 대한 열망이 강한 곳 같았다. 카탈루냐를 상징하는 깃발들과 카탈루냐 독립을 주장하다가 스페인 정부로부터 쫓기는 신세가 된 정치인들에 대한 응원이 집집마다 걸려있었다. 조금 더 지역색이 강한 그런 인상. 국제도시 같았던 바르셀로나와는 다른, 조금 더 스페인 마을 같았던 그런 곳이었다.

에스파냐 광장에서 만난 귀여운 꼬마들
bershka 매장의 포토스폿!
바르셀로나 대성당 광장에서 만난 거리의 예술가, 이 분의 cd를 샀다

9일 동안 한 도시를 여행하니까 충분히 볼 수 있고 더 아쉬운 마음이 없을 거야 라고 생각했던 것이 무색해질 만큼, 떠날 때가 되니 미련이 우수수 떨어졌다. 바르셀로나 거리를 수놓는 스패니시 기타 선율이나, 어디서나 맛볼 수 있었던 맛있는 올리브 오일, 과장된 제스처로 오지랖 넓게 말을 거는 쾌활한 사람들이 너무나 그리울 것 같았다. 처음 왔을 때보다 이번 방문에서 더 많은 것들이 남았고, 다음 바르셀로나 여행은 더욱 아름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알면 알수록 더 큰 매력을 느끼게 하고 혼자 여행하는 이도 외로움이 들 새가 없는, 그런 멋진 바르셀로나 여행이었다.

걷기만 해도 예뻤던 맑은 날의 바르셀로나
라치나타에서 올리브 오일, 소금, 화장품을 잔뜩 샀다!
이런 오래된 건축 양식 너무 멋지지 않나요
위엄 있는 바르셀로나 대성당, 활기찬 성당 앞 광장의 분위기가 정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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