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에 2박 3일로 짧게 후쿠오카 여행을 다녀왔다. 목적은 유후인 료칸에서 노천 온천하기! 유후인과 가까운 오이타 공항으로 가서 유후인에서만 2박 하고 싶었지만 비행시간이 안 맞아 후쿠오카 공항에 떨어지는 것으로 예약. 후쿠오카 구경을 하며 1박 하고, 유후인노모리를 타고 유후인으로 이동해 료칸에서 1박 하는 일정으로 출발했다. 월요일 하루 휴가 내고 가볍게 홀로 슥- 다녀온, 하지만 나름 할 건 다하고 온 여행기를 공유한다!
후쿠오카에서 많은 것들을 먹었지만, 특히 가장 인상 깊었던 식사들.
#이치란 라멘
오전에 제주항공을 타고 출발해 하카타 캐널시티 쪽에 있는 호텔에 체크인한 시각은 오후 2시쯤! 이것저것 짐을 좀 풀고 뜨끈한 라면이나 먹을까 싶어 이치란 라면집으로 향했다. 사실 이 곳은 한국 여행자들에게 너무나도 유명한 곳이지만, 나는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었다. 아무리 맛집이라 할지라도 짧은 기간 여행하는(그리고 기다리기 싫어하는) 나에게 줄 서서 먹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큰 진입장벽! 그러나 오후 3시쯤 도착하니 다행히 기다릴 필요 없이 바로 입장할 수 있었다. 이 곳은 이층짜리 가게라 일반 식당 같은 형태의 일층에서 식사할지, 일인석 전용인 이층에서 식사할지 물어보는데, 혼자 간 터라 일인석 자리에 앉을 생각으로 2층으로 올라가 주문을 위해 자판기 앞에 섰다.
여기선 취향껏 기본 라면 위에 원하는 재료들을 추가할 수 있는데, 인기 토핑 5가지를 모아놓은 5종 토핑을 많이들 선택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많이 먹는 편이 아니어서 기본 돈코츠 라면에 파와 차슈를 추가했고, 자리에 앉아 주문서에 면발 익힘 정도나 굵기, 매운 정도도 모두 중간으로 주문했다. 일인 식사가 대중적인 일본답게, 일인석에는 종업원의 얼굴이 안 보이게 정면 윗부분이 막혀있다. 그래서 상냥한 그들의 목소리는 들리지만, 주문지를 내밀고 라면을 받아 들고나갈 때까지 얼굴을 마주칠 일 없고 오롯이 라면의 맛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것!
과연 그 돈코츠 라면의 국물은 진했고, 차슈가 특히나 맛있었다. 매운 것을 잘 못 먹는 내 입맛에는 잘 맞았지만 이곳은 유감스럽게도 라면의 친구인 교자 메뉴가 없었다! 라면과 함께 먹는 교자가 얼마나 맛있는데. 이 곳의 라면 자체는 괜찮았지만 30분 넘게 줄 서서 먹을만한지는 글쎄. 후쿠오카에는 라면이 맛있는 집이 많으니, 이치란 라면집은 대기를 많이 하지 않아도 된다면 추천, 아니면 비추다! (후쿠오카 공항 면세점에서 끓여먹을 수 있는 이치란 라멘 세트를 팔고 있던데 못 드신 분들은 이 찬스를 활용하셔도 좋을 듯! 물론 가게에서 직접 끓인 맛보다는 못하겠지만 말이다.)
#하카타역 지하 텐동
점심을 느지막이 먹은 데다, 커피며 티라미수 같은 간식거리를 틈틈이 먹어 배가 고프지 않았는데, 그래도 저녁 정도는 제대로 먹어야겠다 싶어 지하상가 쪽을 어슬렁거렸다. 들어가서 바로 식사가 가능할 법한 조용한 집을 찾다 우연히 들어간 이름 모를 텐동 집. 8시가 넘은 시간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혼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시키는 메뉴들을 보니 주로 우동이다. 이 곳은 고기 우동이나 우엉 우동을 잘하나 보군 싶었지만 점심때 라면을 먹었기에 밥 종류를 먹고 싶어서 고슬고슬한 흰쌀밥 위에 바삭한 새우며 채소튀김이 올라간 텐동과 아사히 생맥주 한 잔을 주문했다.
흰쌀밥 자체도 맛있었지만, 밥 위에 올려진 튀김의 겉은 바삭 속은 촉촉한 식감이 아주 좋았다. 밥에 특제 간장소스를 뿌리고 아삭 거리는 가지 튀김과 같이 크게 한입- 채소가 이렇게나 맛있는 거였나 싶다. 후쿠오카 지역은 특히 우엉을 테마로 한 우엉 우동이나 우엉 튀김이 유명한 집도 많으니, 한번 시도해볼 만한 것 같다!
#닌교초 이마한 스키야키
이 곳은 후쿠오카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던 날 마지막으로 맛있는 한 끼를 먹고 싶어 골라 간 집이었다. 하카타역 이뮤 플라자 8층에는 맛집들이 많기로 유명한데, 그중에서도 스키야키가 먹고 싶어 진작에 점찍어 둔 곳!
미리 예약을 해두지 않았어서 걱정했지만, 식사시간을 넘겨 들어가서 그런지 기다리지 않고 바로 입장할 수 있었다. 이 곳은 기모노 차림의 직원분들이 직접 채소와 고기를 구워주는 곳이다. 메뉴판을 보니 스키야키 코스가 있어, 스탠더드 소고기로 골라 주문했다.(전채요리-스키야키-디저트에 아사히 생맥주 한잔 포함해 6천 엔 정도의 가격이었다)
식사 전에 내가 주문한 소고기는 군마 지역에서 자란 소고기라고 보증서 같은걸 보여주는데 거기서부터 이 식당의 섬세한 서비스가 느껴졌다.
전담 직원분이 능숙한 손놀림으로 날달걀을 그릇에 풀어 휘휘 저어 고기를 찍어먹는 소스를 만들어 주었다. 인덕션 위에 판을 올려두고 다시 육수와 간장을 부어가며 채소와 고기를 구워주시는데, 간이 다소 짤 수 있으니 흰쌀밥과 함께 먹는 것을 추천한다! (재료를 굽기 전에 흰밥과 같이 먹겠냐고 직원분이 물어봐주었다.) 그리고 간장소스는 많이 먹으면 물릴 수 있으니 생맥주를 곁들이면 금상첨화!
간장 육수에 살짝 익힌 부드러운 소고기를 날달걀에 찍어서 입안 가득 한 입 먹으니 미각의 축제가 벌어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평소 날달걀을 못 먹음에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게 우아-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런 반응이 익숙하다는 듯 직원분은 상냥하게 밥을 더 먹을 것인지, 계란을 새로 풀 것인지 등등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해 요리를 해준다. 소고기뿐만 아니라, 두부, 버섯, 쑥갓등 부수 재료도 이 마법의 소스를 곁들여 구운 뒤 날계란에 찍어먹으니 맛이 예술이었다.
고기만 봤을 때는 양이 좀 적지 않을까 싶었는데, 먹다 보니 배가 슬슬 불러왔다. 고기와 채소를 다 먹어갈 즈음에 직원분이 물어본다 “계란밥을 만들건데 괜찮으세요?”
배가 부르다고 이 계란밥을 거절했다면 나는 아마도 이 맛을 모르고 살았을 텐데 지금 와 생각해보니 그건 상상만으로도 억울하다. 안 먹어보면 아쉬울 것 같아 배가 부르니 계란밥은 조금만 달라고 했다.(지금 생각해도 그때의 나, 정말 잘했어!!)
다시 육수와 간장, 고기 육즙이 남아있는 판 위에 계란 두 개를 살살 풀어 조금만 익히고 흰쌀밥 위에 올린 계란밥. 앞서 먹었던 고기 못지않게 정말 맛있었다. 지금까지 많이 먹어 배부르다는 생각을 잊고, 계란밥까지 한 톨도 남기지 않고 삭삭 긁어먹었다. 직원은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섬세하게 혼자 와 식사하는 나를 챙겼고, 가게 분위기도 조용해 맛을 음미하는데 최고의 장소였다. 음식 맛이며 서비스며 모든 면에서 아주 만족스러웠던 식사였다. 다음에 후쿠오카에 놀러 오면 반드시 여기 들러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운동화 필수, 후쿠오카에서는 짧은 시간 내 효율적인 쇼핑이 가능하다.
#저렴한 가격의 다양한 상품, 돈키호테
이치란 라멘에서 식사하고 나서 소화나 시킬까 싶어, 걸어서 나카스 카와바타 역 인근의 돈키호테로 향했다. (이 건물 일층에는 일본 유명 서점 체인 츠타야 서점도 있으니 온 김에 같이 구경해도 좋을 듯!)
전에 돈키호테에서 위에 좋다는 카베진을 샀었는데 속이 안 좋을 때마다 효과를 봤었기 때문에, 카베진이나 더 사러 갈까 들렀다가 온갖 좋아 보이는 약들을 보고 주워 담았더니 어느덧 5400엔을 넘어서서 면세 혜택을 받았다.
속이 쓰리거나 소화가 안 될 때 먹으면 좋은 카베진, 일본 국민 소화제라는 오타이산, 유산균제인 산비오페르민, 생리통 등에 효과가 좋다는 진통제 이브, 손상된 각막을 회복시키고 눈에 영양을 준다는 로토와 산테의 안약 몇 개를 집어 들었더니 5000엔을 훌쩍 넘겼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가정상비약이나 안약 시장이 더 크고 활발해서, 몇 가지 관심 가는 품목들을 미리 찾아두었다가 가격이 저렴한 돈키호테에서 면세까지 받으면서 사면 좋다. 카베진처럼 우리나라 약국에도 들어와 있는 경우가 있지만 확실히 일본보다는 비싸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키스미 마스카라나 세잔느 블러셔 같은 색조 화장품들의 경우에도 돈키호테에서 가장 저렴하게 팔고 있었으니, 이 부분도 체크! 직장동료나 친구들에게 선물용으로 주기 부담 없는 민티아나 니베아 복숭아 향 립밤도 구경해보길 추천한다.
돈키호테에서는 5400엔 이상 사면 여권을 보여주고 면세 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 내가 간 지점에서는 의약품과 일반 제품(식료품이나 화장품 등)을 합쳐서 5400엔이 아니라, 각각 5400엔 이상씩이어야 면세 혜택이 가능하다고 안내되어 있었다. 어차피 나는 의약품만으로 그 금액을 넘어서서 이슈가 없었지만, 방문해서 면세 혜택 받으실 분들은 꼭 여권 챙겨가시고, 현장에서 한 번 더 확인해보는 게 좋겠다!
#문구류와 전자제품은 도큐한즈&요도바시 카메라
일본이 에어팟이 싸다길래 하카타 역을 거쳐서 요도바시 카메라를 들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을 지나다 도큐한즈에 시선을 뺏겨 잠시 경로 이탈. 하카타역은 꽤나 크고 안에는 쇼핑 스폿들이 한가득인데, 도큐한즈는 주방용품, 화장품, 문구류, 식품 등 구경하기 좋은 것들이 가득 모여있어 발 들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5개가 넘는 층에 걸쳐 있는데 워낙 캐릭터들을 좋아하는지라 문구류 층에서 엽서를 보며 이걸 살까 말까 20분은 고민한 것 같다. (정말 귀엽고, 이쁘고 비쌌다.)
엽서 사봤자 안 쓰고 먼지만 쌓일 것 같아 포기하고 지나가는데 이번에는 캐릭터 갓챠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한판에 300엔밖에 안 하는 데다, 꽝 같은 건 없는 거니까! 하며 자기 합리화한 끝에 시바견 모양의 열쇠고리를 얻었다. 도큐한즈에서는 시바견 모양의 열쇠고리 뽑기 한 번으로 만족. 하카타 역 여기저기는 크리스마스 준비로 분주했다. 2년 전 크리스마스 시즌에 후쿠오카에 와서 텐진역과 하카타역의 크리스마스 마켓을 방문했었는데, 텐진역 쪽이 좀 더 아기자기하고 좋았던 기억이 있다. 추억을 곱씹으며 조금 더 걸어서 하카타역 뒤편 요도바시 카메라에 도착!
요도바시 카메라에서 에어팟은 2층인가 3층인가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름 일본어스럽게 ‘에아 팟-‘이라고 말했건만 못 알아들으시더니 ‘아, 에아팟또!’라고 확인해주셨다. 아, 에어팟또였구만- 하면서 직원분을 쫓아가니 작은 플라스틱 패널을 주신다. 이건 에어팟이 아닌데? 하고 뭔가 잔뜩 물을 것 같은 눈빛으로 쳐다보니, 직원분이 이걸 들고 카운터에 가면 에어팟 실물상품으로 바꿔주니 거기 가서 바로 계산하면 된단다. 계산대로 향하니 비자 카드로 결제하면 할인되고 면세 할인까지 같이 받을 수 있다는 훈훈한 소식. 그 덕에 1500엔 대로 드디어 에어팟을 구했다! (에어팟 2세대 나오면 사겠다고 버티고 있었는데, 그런 나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에어팟을 쓰는 지금 뒤늦게 깨닫는다!!)
돈키호테, 캐널시티(무인양품), 하카타 도큐한즈, 요도바시 카메라까지 죽 훑으면서 필요한 것만 나름 잘 산 쇼핑을 한 하루였다! 무엇보다 이 모든 곳들이 다 가까워서 그냥 걸어 다녔는데, 맘먹고 쇼핑 스폿들을 돌 거라면 신발은 반드시 편한 운동화 신기를 추천! 후쿠오카는 쇼핑하기 효율적인 곳이라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