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으로서 정리해본 엔드게임 킬링포인트 12
마블 팬인 나는 어벤져스 엔드게임 개봉일에 영화를 관람했다. 세 시간의 러닝타임이 어떻게 지나간 줄 모를 정도로 몰입해서 봤고, 한 시대의 끝을 말해주는 이 마스터피스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수많은 영화 평론에서 나왔듯,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었던 MCU Phase 1기를 마무리하는 멋진 엔딩이었다. 특히, 영화 후반부에 모든 것을 쏟아부은 전투씬은 그 간 어벤져스 시리즈에서 보여준 훌륭한 전투씬들 중에서도 단연 압도적인 스케일과 퀄리티를 자랑한다.
사실 마블 영화를 꼬박꼬박 챙겨본 팬 입장의 나로서는(영화 보기 전부터 시리즈의 마지막이라는 사실에 아쉬움으로 센치해진 상태였다), 객관적으로 영화의 장단점을 따져 보기에는 무리가 있기에 그냥 그런 거 다 놓아버리려고 한다. 팬으로서 발견한 이 영화의 킬링포인트들만 기록해두고 싶다. 참고로 나의 최애캐는 로키&버키인데, 엔드게임에서 버키는 쩌리 역할을 맡았고 로키는 10초 등장으로 끝나서 화가 많이 난 상태이므로 표현은 날 것 그대로 할 거다. 캐릭터에 따라 개인적 감정 및 일부 기억 조작이 들어가 있을 수 있음을 먼저 양해 부탁드립니다!
1920년대 출생한 사람 치고 하이테크 기술에 동요 없이 적응한 세련된 할아버지이긴 하지만, 캡틴 아메리카는 2차 대전 때 군생활을 했던 사람이라 그런지 시리즈 내내 때로는 답답하게 느껴질 정도로 원칙주의자, 바른생활 사나이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근데 왜 네 친구 버키가 토니 부모님 살해한 것에 대해서는 사과 안 하니 쒸익쒸익!) 그런 그의 바르고 곧은 품성을 보여주는 것 중 하나가 다른 멤버들에 비해 욕설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비교적 자유분방하고 유쾌한 히어로를 표방하는 스타로드나 로켓 같은 캐릭터들이 fuck, shit 같은 욕들을 아무렇지 않게 쓰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심지어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초반 전투씬에서는 아이언맨이 “Shit”이라고 하자 “Language!(고운 말!)”하면서 주의를 주는 모습까지 보였다.(이는 어벤져 사이에서 캡아를 놀리는데 두고두고 쓰이는 소재기도 하다) 그러나 엔드게임에서는 캡아가 영화 초반부터 ‘타노스 그 새끼 죽이러 가자’는 센 대사를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다는 사실! 정확하게는 타노스에게 ‘Son of a bitch’라는 단어를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는 인류 절반이 몰살당한 현실에 비교적 차분히 대응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캡틴과 그의 분노가, 사실 전혀 차분하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해주는 것 같아 속이 시원했다.
과거의 자신들에게로 돌아가 스톤을 찾으려는 어벤져들의 계획에 따라, 캡아는 뉴욕 대참사 시절로 돌아간다. 거기서 로키로부터 압수한 테서랙트를 쉴드인척하는 하이드라 멤버들에게서 빼앗아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데. 사실 스트라이크팀과 캡틴의 엘리베이터 안 격투씬은 ‘캡틴 아메리카:시빌 워’에서도 한 번 본 적이 있기에, 또 한 번 큰 싸움이 일어나려나 하고 잔뜩 긴장했었다.
하지만 이미 미래에서 시트웰과 럼로우를 비롯한 스트라이크팀이 사실 하이드라였다는 것을 보고 온 캡틴은 딱 한마디로 유혈사태 없이 테서랙트를 받아낸다. 바로 하이드라 조직원들 사이의 비밀 코드인 “하일 하이드라(Hail Hydra)”.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를 본 사람들은 캡아가 하이드라 조직을 격퇴하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했는지 잘 알고 있을 터. 잔뜩 비틀린 유머를 실은 이 대사 하나로, 극장에서 마블 팬들은 다 같이 빵 터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영화 시작부터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전작들과 전혀 딴판이 되어버린 토르의 모습이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2’에서 나온 드랙스와 가모라의 표현에 따르면 해적과 천사 사이에서 태어난 듯한, 근육이 끝장나는 이 잘생긴 천둥의 신은 마블 시리즈 전체에서 육체미의 대표로 자리매김했었다. 심지어 드랙스가 토르를 질투하는 듯한 스타로드에게 “너는 애지만, 이 자(토르)는 사내라고 할 수 있지.”라고 까지 말한다고.
하지만, 본인이 막지 못한 타노스로 인해 이복동생 로키와 아스가르드 인 절반이 죽음을 맞이한 것에 대한 충격으로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버린 토르는 영화 내내 배 나온 털북숭이로 나온다. 그의 상의 탈의 모습을 보고 영화관에 울려 퍼졌던 많은 팬들의 탄식이란... 그래서인지 과거로 돌아간 토르가 그의 어머니와 재회하고 떠나야 하는 순간, 어머니는 토르에게 말해준다. “얘야, 샐러드 좀 먹어... (Eat your salad).” 이 얼마나 다정한 어머니란 말인가.
타노스로부터 인류 절반이 몰살당한 후, 히어로들도 사람들도 어느 정도 현실을 받아들이고 살아내고 있지만 블랙위도우만은 유독 계속 타노스의 흔적을 찾아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에 집착한다. 어벤져스 본부에 남아 전 우주를 정찰하는 히어로들과 정기적으로 정보를 교환하고, 가족을 잃은 충격에 폭주 상태가 되어버린 호크아이를 데려오기 위해 일본으로 찾아간 것도 그녀다. 호크아이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잃은 후, 폭력조직들을 찾아가 조직원들을 무참히 살해하며 지냈다. (폭력조직이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는 일이 있으니, 그에 대한 복수를 본인이 자행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은 살인자라며 완전히 무너져버린 호크아이에게 블랙위도우는 '난 실수만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며 그를 달랜다. 그리고 소울스톤을 찾으러 간 보드미르 행성에서 본인을 희생해 호크아이 손에 스톤을 쥐어준다.
마블 시리즈에서 블랙위도우는 소련 스파이로서 트레이닝을 받았다는 내용만 나올 뿐 그녀의 과거나 가족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다만 암살자로 활동하던 과거에 손에 묻혔던 피를 어벤져스 활동을 통해서 속죄하고자 하는 모습들이 암시되었는데, 어쩌면 그녀는 타노스를 만난 뒤로 처음부터 인류 절반을 되살리기 위해 누가 죽어야 한다면 내가 죽겠다고 결심한 게 아닌가 싶다. 폭주하던 자신의 과거에 대한 후회로 본인을 희생하려 든 것 같은데, 사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는 위로가 가장 절실했던 캐릭터는 블랙위도우가 아니었을까 싶어 씁쓸했다. 내가 어벤져였다면 그녀를 따뜻하게 안아줄 텐데. 그녀의 마지막 대사 “Let me go. It’s OK.” 사실 나는 이때부터 매우 울컥해서 울기 시작했다.
헐크는 많은 이들의 예상대로 초록헐크로서의 육체적 강인함과 배너박사로서의 지식을 동시에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 그렇다 보니 초록헐크의 모습이더라도 전처럼 마구잡이로 때려 부수는 행동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는 것. 타노스 이후의 세계에서 가끔은 어린이/청소년 팬들의 요청에 같이 사진도 찍어주면서 아-주 온화하게 살아간다. (이 장면에서 아무도 자신에게 사진 찍자는 요청을 하지 않아 서운해하는 앤트맨 표정도 킬포중 하나다)
캡아, 토니와 함께 뉴욕 전투 때로 돌아간 헐크는 그때 당시의 자신이 사리분별 못하고 뭐든지 다 부수고 다니는 것을 본다.(캡아의 "Hulk! Smash" 지령을 충실히 수행 중)
과거의 자신을 보고 뻘쭘해진 헐크는 역시 헐크로서의 소명은 부수는 것인가, 내가 지금 여기서 뭔가를 부숴야 어벤져들이 좋아하려나 싶어 괜히 눈 앞의 차를 ‘으아아아~’하고 집어던지면서 캡아와 토니 눈치를 보는데 그게 또 그렇게 웃겼다. '굳이...?' 하는 듯한 캡아와 토니의 표정도 그렇고. 그래, 헐크야 뭐, 부수고 싶으면 부수라고.
뉴욕 사태에서 로키를 잡고 다른 어벤져들이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가면서 헐크에게 정원초과니까 너는 계단으로 걸어가라고 하는 것도 정말 웃겼는데. 헐크가 “계단 싫어!!!!”하면서 (이것저것 부수면서) 걸어내려 가는 모습을 보니, ‘토르 3’에서 토르로부터 “지구는 너 싫어해!!!” 소리 듣고 마음에 스크래치 받고 삐진 헐크 모습도 생각났다. 헐크도 은근히 귀여운 캐릭터다.
시간을 되돌려 스타로드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1’ 초반에 모라그 행성에 파워스톤을 가지러 가는 장면도 나온다. 스타로드보다 먼저 파워스톤을 찾기 위해 워머신과 네뷸라는 모라그 행성으로 향한다. 스타로드가 지구인 엄마로부터 선물 받은 음악 리스트를 워크맨으로 들으면서 ‘Come and get your love’를 따라 부르는 장면에서 팬들은 대폭소 할 수밖에 없었다. 가오갤에서 볼 때는 배경음악으로 깔려서 몰랐는데, 생각해보면 스타로드는 이어폰을 끼고 따라 부르는 상황이니, 옆에서 다른 이가 들으면 스타로드가 “헤에에~에에엥~ “하면서 노래 부르는 것 밖에 안 들리니까. 심지어 매우 못 부른다. 스타로드의 흑역사라고나 할까.
아 참, 중간에 가모라가 미래에서 온 네뷸라를 믿어주면서 함께 타노스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할 때 어디 자빠져있던 스타로드를 우연히 만난다. 사랑하는 여자와 재회한 스타로드의 감동 따위 집어치운 이 자매의 대화가 압권. 스타로드를 한심하게 쳐다보며 가모라 왈 “야, 미래에 내가 이런 남자를 좋아한다고? 진심?” 네뷸라는 시크하게 대답한다. “어, 이거 아니면 나무(그루트를 말하는 듯)밖에 없었다고.” 스타로드의 흑역사 2 되시겠다.
더 말해 무엇하리. 영화를 보고 온 사람들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혹은 소름 돋았던 장면을 물으면 백이면 백 다 이 장면을 꼽았다. 바로 전투씬 중간, 어벤져스가 열세에 몰린 듯한 순간에, 가루로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온 나머지 히어로들이 닥터 스트레인지의 마법진을 통해 타노스와의 전투씬으로 소환된 장면. 전편에서 사라졌었던 스파이더맨, 닥터 스트레인지, 스타로드, 완다, 블랙 팬서 등 지원군들이 동시에 몰려들고 이들의 맨 앞에서 캡아가 외친 “어벤져스, 어셈블.” 이 한마디의 위력에 극장 안은 한차례 번개를 맞은 듯 술렁거렸다!
‘토르 1’에서 토르의 아버지 오딘은 호전적이고 문제 투성이었던 토르에게서 묠니르를 빼앗으면서, ‘앞으로 자격이 있는 자만이 묠니르를 다룰 수 있을 것이다’라는 주문을 걸어놓는다. ‘토르 3’에서 헬라로 인해 묠니르는 파괴되었고, 토르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 스톰 브레이커라는 새 무기를 얻었다. 그리고 엔드게임에서는 묠니르가 부서지기 전으로 시간을 돌릴 수 있었기에 토르는 한 손에는 묠니르를, 다른 한 손에는 스톰 브레이커를 쥐고 타노스와 붙는다. 하지만 역시 타노스는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토르가 수세에 몰렸을 때 그를 돕기 위해 묠니르를 날리며 타노스를 두들겨 팬 것은 바로 캡아.
캡아가 묠니르를 들 수 있는가에 대한 논쟁은 이미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때 한 번 불거진 주제다. 에이지 오브 울트론 초반에 스타크 타워에서 어벤져들이 파티하면서 술김에 토르의 묠니르를 누가 들 수 있나 돌아가며 들어보는 장면이 나오는데, 누가 들어도 꿈쩍도 않던 묠니르가 캡아가 힘을 쓰니 살짝 움직이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그때는 살짝 움직였을 뿐, 정말 들리지는 않았으므로 토르가 허세 섞인 목소리로 “자네들은 모두 자격이 없는 거라니깐?” 하고 외치지만. 사실 토르는 묠니르가 살짝 움직였을 때 눈이 땡그래지면서 놀랐고, 캡아가 포기하고 손을 놓았을 때 그제야 안심한 표정을 짓는다.(하지만 나중에 비젼이 묠니르를 들어 토르에게 건네는 장면이 나와 토르 머쓱)
어찌 됐건 캡아는 묠니르를 다룰 수 있을 정도로 정의롭고 고결한 자라는 것이 팩트. 울트론 때는 그게 좀 미약했고, 엔드게임에서는 무르익어서 묠니르를 토르처럼 다룰 수 있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때도 이미 들 수 있었는데, 토르를 위해서 못 드는 척 한건 지도?
영화 후반 전투씬에서는 인피티니 워에서 가루로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온 히어로들이 대거 합류하는데, 완다도 그중 하나다. 사실 그녀의 분량은 전투씬에서도 그리 많은 편은 아니지만 그 임팩트만은 타노스를 당황하게 하기 충분했다. 그녀의 전매특허, 날아오르면서 붉은 기운의 염력을 날리는 모습은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더욱 강해졌고, 엔드게임에서는 타노스를 무력화시키기에 이른다. 완다가 눈을 번쩍거리며 타노스에게 “넌 나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갔어.”하고 등장했어도, 타노스가 “난 네가 누군지도 몰라”하고 강펀치를 날리면 완다도 별 수 없을 줄 알았건만.
그녀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해, “이제 알게 될 거야.” 한 마리를 남기고 타노스를 두들겨 패면서 그의 갑옷까지 산산조각 내 버린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타노스는 본인의 부하들에게 적군 아군 가리지 않고 무차별 폭격을 날리라고 말하게 된다. 이쯤 되면 완다의 힘의 근원은 이제 마인드 스톤이 아니라 타노스 때문에 사랑했던 비젼을 잃은 ‘분노감’이었음이 확실하다. 완다가 분노하면 막을 자가 없다는 것은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도 나왔었다. 쌍둥이 오빠인 피에트로의 죽음을 느낀 완다는 폭주해서 로봇군단을 날려버렸고 급기야 어벤져들이 다 달려들어도 힘겨웠단 상대, 울트론의 심장을 뽑아내기에 이른다. (완다는 울트론을 찢어!)
전투가 끝난 후, 호크아이와 완다의 대화 씬 또한 마음을 찡하게 만들었다. 사실 완다가 본격적 어벤져 활동을 하기 전, 아직 어리고 하이드라의 편이었을 때 그녀를 각성시켜 어벤져스로 합류시킨 것은 호크아이였다. 아이언맨과 스파이디의 관계까지는 아니더라도, 뭔가 보호자-피 보호인의 관계였달까. 승리로 끝난 전투지만 그 둘은 각자의 소중했던 존재(호크아이의 나타샤, 완다의 비젼)들을 잃은 채 덩그러니 남는다. 호크아이는 그녀(나타샤)가 우리가 승리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았겠다고 말하고, 완다는 그들도(both) 알 것이라고 대답해 준다. 마음속 깊은 상실감을 이겨내고 애써 웃는 호크아이와 완다의 모습에서 우리는 나타샤와 비젼의 희생이 정녕 헛된 것이 아니라고 느끼게 된다.
사실 어벤져스, 아니 모든 마블 히어로 상업영화가 성공할 수 있도록 물꼬를 튼 것은 아이언맨의 공이 컸다. ‘아이언맨 1’ 끝부분에서 기자들을 불러 모아놓고 미리 비서가 작성해준 대로 읽어나가려다가 마음을 바꿔 “내가 아이언맨이오”하고 자기소개해버린 토니로부터 마블 히어로들의 전설이 시작되었다.
엔드게임 전투씬에서 타노스와 맞붙으면서 토니가 한 대사 “나는 아이언맨이야”가 가진 무게감이란. 아버지의 군수회사 ‘스타크 인더스트리’를 이어받으면서 어마어마한 돈을 상속받았고 이 무기들로 조국인 미국을 지킨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정작 스타크 인더스트리가 만든 무기들이 테러리스트들에게도 넘어가 무고한 사람들이 죽었다는 사실이 줄곧 토니 마음속에 부채감으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살상용 무기 제조를 그만두고, 어벤져스로서 지구수비대 역할을 해왔던 토니의 희생은 엔드게임에서 가장 빛을 발한다. 그리고 그 전설의 시작과 끝을 장식한 이 대사는 마블 역사에서도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타노스를 물리치고 토르는 지구에 자리 잡은 아스가르드의 통치를 발키리에게 넘겨준다. 그리고선 가오갤 멤버 틈으로 합류하면서 능글맞게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아스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라고 이름을 바꿔 불러 버린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부터 토르는 가오갤 멤버들과 어울렸기 때문에 그들이 함께 있는 게 이제 어느 정도 자연스럽긴 하지만, 여전히 한 우주선 내에서의 리더 자리를 두고 토르와 스타로드는 옥신각신한다.
거짓말 못하는 드랙스와 멘티스가 그러면 칼이나 총으로 둘이 승부를 보라고 부추기는데, 토르와 스타로드는 서로 눈치 보면서 싸우기는 싫단다. 사실 토르는 신이고 스타로드는 아버지가 셀레스티얼이고 어머니가 지구인인 반신반인의 존재다. 타노스한테 맹렬히 달려들고 목을 베기까지 했던 그들이지만 ‘싸워봤자 내가 이길걸?’하고 동의해주길 바라는 스타로드의 간절한 눈빛에 토르가 떨떠름하게 ‘어어.. 그렇지 뭐’하는 장면은 우리를 피식하게 할 코믹 요소로 충분. 토르가 합류한 가오갤의 개그코드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엔드게임에 대한 포스팅을 올리면서 많은 사람들이 태그로 #3000을 달았다. 영화를 아직 보지 않은 이들은 이게 대체 무슨 뜻인가 싶었을 것. 타노스 사태 이후 살아남은 토니와 페퍼는 결혼하고 딸아이도 낳아서 나름 행복한 가정을 꾸려 살게 된다. 토니의 딸이 토니에게 “3000만큼 사랑해”라는 말을 하는데, 아무래도 그 어린아이가 배운 숫자 중 가장 큰 게 3000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내와 아이를 두고 죽음의 길을 택한 토니의 마음이 어땠을지 감히 짐작도 가지 않지만, 토니는 나중을 위해 유언 영상을 찍어놓는다. 딸아이에게 3000만큼 사랑한다는 말을 남기는 이 장면에서 많은 팬들이 흐르는 눈물을 감추느라 여기저기서 코를 훌쩍거리는 소리, 다 들렸다!(그러게 나처럼 티슈를 챙겨갔었어야지!)
해피가 토니의 딸에게 배 고프냐고 물어보고 먹고싶은 걸 다 사주겠다고 했을 때, 딸내미가 치즈버거를 말 한 장면에서도 찡했다. 토니가 ‘아이언맨 1’에서 피랍된 동굴에서 탈출해 뉴욕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가장 먼저 찾았던 음식이 치즈버거였기 때문에.
그 외에도 로켓이 우주 사정을 통 모르는 앤트맨에게 “아이고, 우주 가보고싶었쪄요 우리 강아지, 우쭈쭈쭈”하고 어르는 장면, 앤트맨이 타임머신을 실험하면서 노인이 되었다 아이가 되었다 하는 장면, 캡아가 엎어져 있는 과거의 자신 모습을 보면서(그 와중에 힙업 된 본인의 몸매를 보면서) “저 정도는 되어야 미국의 엉덩이지! (That’s America’s ass!)”하는 장면, 나타샤가 "나는 너구리에게 이메일도 받아"하는 장면 등. 팬으로서 심장 부여잡게 하는 킬링 포인트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대장정의 끝을 맺은 이번 영화를 보면서 이 히어로들이 실제 인물도 아니지만, 이제는 친구가 되어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엔드게임을 보면서 블랙위도우 캐릭터를 나타샤로 부르는 게 더 자연스럽게 느껴진 것처럼. 어느 순간에는 그녀를 “냇(Nat)”으로 부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내 젊은 시절 지구를 지켜준 어벤져스의 이야기는 끝났지만(사실 안 끝났다, 신에게는 아직 봐야 할 4dx와 아이맥스가 남았사옵니다!), 너무나 강렬하고 즐거운 추억으로 꽤나 오랫동안 기억하게 될 것 같다. 고마워요, 어벤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