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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다빈 Jan 12. 2020

저는 이만 죽어도 되겠어요

존엄사, 스스로 삶을 끝낼 권리에 대하여

영화 미 비포 유(Me Before You)의 윌 (Sam Claflin).

영화 미 비포 유를 봤다. 이 작품은 5년 전 소설로 먼저 만났던 기억이 있다.

배우의 잘생긴 용모도 이 영화를 보기로 결정함에 부분 일조한 점이 있지만 사실은 그냥 예전에 소설을 읽으며 물기 머금은 촉촉한 스펀지 같은 마음이 됐던 게 향수처럼 되살아나 그 기분을 다시 느끼고 싶은 것이 컸다.

요즘의 나는 쩍쩍 갈라지는 메마른 땅처럼 무미건조하기 짝이없기에. (일 때문.)


영화 속에서 주인공 '윌'은 영국의 잘나가는 귀족 가문의 아들로 투자 일을 하며, 미모의 여자친구도 있고,

잘생기고 다부진 외모에 유난히 모험과 도전을 좋아해서 다이빙부터 서핑, 스키 같은 액티비티를 즐겨하던 만능맨이었다.

그야말로 영앤리치 톨앤핸썸 가이, 랄까. (Young and Rich, Tall and Handsome guy. PERFECT.)

그랬다. 그의 사지가 멀쩡할 때까지만 해도.


불의의 교통사고로 전신마비 불구가 된 윌의 삶은 360도 뒤틀렸다.

좀처럼 잃어버린 생기를 찾을 수 없었으며 온화하던 그의 성격은 매우 신경질적이고 날카롭게 변했다.

늘 자신의 죽음을 생각했으며 그를 간병하러 온 루이자의 엉뚱하고 발랄한 매력에 사로잡혀 자신도 모르게 사랑에 빠졌을 때에도, 그녀와 연인이 되어 황홀한 휴가를 떠나 왔을 때에도 그는 죽음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윌이 존엄사를 계획하고 있음을 눈치 채고 있던 루이자는 자신의 사랑이 그의 맘을 바꿀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윌은 결국 루이자에게 이런 말을 전하며 자신의 결심을 확고히 했을 뿐이었다.


루이자, 나는 내 삶을 사랑했어.


넌 지금의 내가 어떤지 몰라.
이건 내 삶이 아냐.
나는 이런 걸 그냥 받아들이는 그런 유형의 사람이 못 돼.



루이자는 끔찍했으리라. 사랑하는 남자가 자신을 두고 영영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난다니.

믿을 수 없이 참혹하며 생경한 기분마저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윌의 말에 가슴 깊은 사무침을 느끼며 절절히 공감할 수 있었다.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돈도 많은데 그냥 수발 들어주는 사람들이나 써 가며 편하게 살지.

또는 루이자의 엄마처럼 '이건 말도 안돼. 그 부모 정신 나간 거 아냐? 그건 살인이야!' 라며 존엄사에 대해 맹렬히 비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지는 않지 않은가?

그러니 견딜 수 있는 한계 효용의 수치도 사람마다 각기 다를 것이다. 우린 이 점을 유념해야 한다.

윌의 전 생애를 보면 그가 이런 삶을 견딜 리 없었다.

자신이 누운 베개를 바로 잡는 것도, 사랑하는 여자의 뺨을 쓰다듬는 것도 그 어떤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던 그는 자신이 이미 죽은 것과 다름 없다고 여겼을지 모른다.


결국 자신의 '존엄한 죽음'을 위해 가족들과 스위스로 떠난 윌은,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연인과 키스한 뒤 영원한 안식을 얻는다.


존엄사에 대해서는 전 세계적으로 말이 참 많다.

윤리적으로 가치판단이 어려운 부분이고 반대하는 사람들의 외침도 만만치 않게 크다.

하지만 결국 죽음도 한 개인의 인생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사건일 뿐 누군가가 정해주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존엄사의 오남용성에 대한 문제점은 제외하고, 그 선택에 대해서만 논하는 바이다.)


우리는 스스로 만들어가는 인생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숱하게 배우면서,

정말로 중요한 일 앞에서 스스로 선택하는 법에 있어서는 미숙하다.

비단 죽음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내가 가야할 길, 내가 살고 싶은 라이프 스타일을 만드는 것에 있어서 우리는 타인의 말이나 세상의 풍조에 너무도 많이 흔들린다.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첫째, 누구보다 자신을 잘 알고

둘째, 진정 원하는 것을 선택하는 용기가 필요할 것 같다.

삶이든 죽음이든, 뭐가 됐든지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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