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짓다빈 Jan 22. 2020

내 인생의 초록불

길을 건너려는데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었다.

방금 전까지 성급하게 종종 대며 걸어온 두 다리가 참을성을 발휘해 멈춰 섰다.

시간은 오전 8시 47분.

코 앞으로 차들이 쌩쌩 내달렸다.

바닥에 뿌리내린 나무처럼 우두커니 서 있던 나는 그것들이 스치며 일으킨 풍력에 아찔하게 휘청였다.

차들은 도저히 멈춰줄 것 같지 않았다.

아니. 세상 어느 것도 나를 다시 걷도록 허락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저 이렇게 멈춰 선 채로 빨간불만을 응시하다 졸도할 것 만 같았다.

삶이란 원래 꾸역꾸역 버티는 거라고, 어쩌면 이곳이 나의 종착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시야가 흐려질 때쯤 신호등의 초록불이 선연하게 빛났다.

자비라곤 없을 것처럼 내달리던 차들도 더 이상 나를 위협하지 않았다.


길을 건너며 신호등의 신호가 그렇듯 내 안에도 다시금 초록불이 켜지지 않을까 기대해 보았다. 어쩌면 벌써 켜졌을지도 모르겠다고. 단, 줄어드는 초단위의 카운트 안에 횡단하지 못하면 빨간불로 바뀔 수도 있겠지만(늘 그렇듯 삶에서 타이밍은 중요하니까.)

적어도 빨간불 앞에 멈춰 선 채로 졸도하는 사고 따위는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단 가느다란 희망 한 줄기가 피어올랐다.


그래.
때가 오면, 가면 된다.
나를 영원히 멈추게 하는 것은 없다.


이렇게 생각하며 오늘도 묵묵히 걸었다.

내일도 나는 내 갈 길을 갈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깨 부시고 싶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