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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선꽃언니 Oct 01. 2021

엄마의 부재에 적응해가는 아빠

아빠에게 안정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아빠는 부지런하다. 아침에 일어나서 까르 산책을 다녀오고 곧장 헬스장에 운동을 하러 간다. 낮에는 주식 공부를 하고 저녁엔 까르 산책을 한번 더 나간다. 한주에 두 번 정도 친구들과 한잔하러 나간다.


남편과 나는 엄마 사고 이후에 살이 쪘는데 아빠는 꾸준한 운동으로 오히려 7kg 정도 감량을 했다. 왜 감량하는 것이냐 물으니 결혼하기 전 체격으로 돌아가 보고 싶다는 답이 돌아왔다. 아빠는 몸무게 감량 하나에도 목적이 있고 성실하게 목표를 잘 달성하는 편이다.


"아빠는 몇 살까지 살 거야?"


"나는 활동적인 인생을 사는 건 앞으로 75세까지 10년 남았다고 생각해. 그 이후에는 끌려가는 인생일 것 같고."


아빠 친구들은 활동적으로 살 수 있는 나이를 75세까지 라고 생각하는 아빠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고 하지만 나는 엄마 사고 이후에도 삶과 행복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사는 사람 내 아빠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좀 진정되면 아빤 베트남 가서 좀 지내다 올 거야."


"왜 거기 뭐 있어?"


"아빠 후배 ooo 알지? 지금 하노이에 주재원으로 근무하고 있어. 와이프같이 안 가서 심심해 죽겠나 봐."


헐. 아빠는 아빠 후배 주재원으로 살고 있는 집에 숙식을 부치고 하노이 원주민처럼 살아보길 꿈꾸고 있나 보다. 하긴, 엄마 있을 땐 꿈도 못 꿀 일이었지만 아빠는 이제 자유니까.


아빠가 조금씩 엄마의 사고로 인한 끔찍한 기억에서 헤어 나오기 시작했다.  엄마가 떠나서 제일 당황스럽고 힘든 건 아빠일 텐데.  만일 아빠가 우울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매일 누워만 있다면 나 역시도 아빠를 보며 우리 가족이 왜 이렇게 되었지 하며 더 힘들어했을 것 같다.


엄마 사고 전 아빠는 엄마 기분을 맞추기 위해서였는지 몰라도 좀 더 소프트한 사람이었다. 요즘의 아빠는 좀 더 단단하고 (좋은 의미에서) 자기중심적이다. 아빠는 앞으로 살 날이 산 날보다 적기 때문에 아빠 자신을 우선순위로 두고 살아가겠다고 했다. 아빠가 전처럼 다정다감하지 않은 건 좀 아쉽기는 하지만 나이 든 아빠가 언제나처럼 단단하게 울타리가 되어주는 것은 딸로서는 고맙고 든든한 일이다


아빠는 까르를 보며 자주 웃는다. 우리 아빠는 애보다 개가 좋다고 하는 사람이다. 강아지를 하도 잘 돌보길래 나중에 애 낳으면 키우는 거 도와달라고 했더니 아빠는 애 키우는 거 돕느라고 인생을 허비할 수 없다고 했다. 언젠가 태어날 아기는 남편도 아빠도 못 키워주니 나 혼자 키워야 할 것 같아 두렵지만 왠지 나는 이 또한 아빠가 삶에 대한 애착을 보이는 한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아졌다. 만일 아빠가 그래, 다 늙은 마당에 애나 키우는 거 도와주마, 했다면 외려 아빠의 활력이 시든 것 같아 속상했을 것 같다.


아빠는 술을 마셔도 전후에 헛개나무즙을 꼭 챙겨 먹는다. 이틀 연속으로 술마시지않는다. 영양제를 꼬박꼬박 잘 챙겨 먹고 아프면 주말에 연 병원을 찾아서라도 진료를 보러 간다. 이 또한 아빠가 스스로를 관리하는 모습이기 때문에 다행이다 싶다.


엄마가 떠나고 난 아빠마저 떠날까 봐 두려운 마음에 오만가지 아빠 일상에 간섭을 했다. 병원에서는 불안증이라며 약을 처방해줬다. 병원 약을 먹어도 아빠가 잘못될까 봐 불안해하는 마음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런데 난 요즘 아빠가 불안하지 않다. 아빠가 알아서 스스로를 잘 챙기는 모습을 보았고 삶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있음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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