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풍선꽃언니 Oct 07. 2021

아빠가 새로 사귄 '여자'친구(2)

자꾸만 눈물이 난다

아빠가 내게 요청했던 콤부차가 오늘 택배로 도착했다. 해돌이 엄마한테 줄 거니까 굳이 우리 가족 취향을 따라 살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세일 중인 '레몬맛'으로 주문했다.


택배 상자를 뜯자마자 해돌이 엄마 가져다주라고 방으로 들고 들어가 아빠에게 건네주었다. 그런데 아빠의 표정에 실망의 기색이 역력했다.


"아니, 왜 이걸 샀냐. 레몬맛은 흔하디 흔한 맛인데. 이거 말고 베리 맛으로 다시 주문해서 줘."


"아줌마 줄 건데 뭐 어때. 콤부차가 뭔지도 모르는데. 나는 레몬맛 좋아해. 레몬맛도 맛있어."


티젠에서 나온 콤부차는 유자맛, 레몬맛, 베리맛 세 가지 종류가 있는데 아빠는 특히 베리맛만 찾는다. 다른 맛은 밍밍하다고 좋아하지 않는다.


아빠가 하도 구시렁 거리길래 나는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아빠 그럼 내가 요 앞에 올리브영 가서 사 올게. 동네 올리브영에서는 30개 들이는 없고 10개 단위 포장 밖에 없어. 세 박스 사 오면 30개니까 그거면 돼지?"


"응. 빨리 갔다 와라."


기가 막혔다. 평소 같으면 구두쇠 우리 아빠, 돈 쓰지 마라, 그냥 이거 먹지 뭐. 했을 텐데 해돌이 엄마 줄 콤부차를 사러 나더러 '빨리' 나갔다 오란다. 왠지 기분이 묘하게 나빠졌다.


베리맛 콤부차 세 박스와 봉투를 사서 잘 넣어 아빠에게 건넸다. 아빠는 내용물을 확인하더니 만족한 말투로 그래, 이게 맛있지. 했다. 그러더니 방에 종이봉투 입구를 스테이플러로 한번 찍고 아파트 동호수를 정자체로 쓴 뒤 책상 위에 올려놓고 낮잠을 자기 시작했다.


아빠가 낮잠을 자는 사이 나는 화장실에 숨어 갑자기 나오는 눈물을 훔치며 한참을 앉아있었다. 엄마에게 늘 보살핌을 받는 쪽이었던 아빠가 엄마 아닌 누군가를 위해서 아빠가 제일 맛이 좋다고 생각하는 차를 선물한다는 게 슬펐다. 분명 아빠는 예순다섯밖에 안되었고 원한다면 재혼을 할 수도 여자 친구를 사귈 수도 있는데 머리로는 다 아는데 나는 자꾸만 눈물이 났다.


그 언젠가 엄마가 성당이었나 어딘가에서 고로케 한 개를 받은적이 있다. 보통사람이라면 그 자리에서 사람들하고 먹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엄마는 고로케가 식을까봐 후다닥 뛰어서 집에 왔다. 그러더니 방긋 웃으며 말했다.


"맛있는 거니까 짝꿍(아빠)이랑 같이 먹어야지."


"엄만 그냥 그걸 먹고 말지. 굳이 들고 왔어."


자꾸만 그때 엄마의 해맑은 얼굴이 떠올라 눈물이 쏟아졌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남편의 승진이 걱정돼서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