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풍선꽃언니 Oct 07. 2021

남편의 승진이 걱정돼서요

요즘은 전화로도 '신점'을 볼 수 있다

남편이 직장생활을 한지도 십 년이 넘었다. 남편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한 그룹사의 계열사에 근무한다. 첫 입사는 나와 같은 해에 했는데 나는 중간에 그만두고 경찰공무원이 되었고 남편은 지금껏 같은 그룹사에 있다.


남편은 자기 일을 굉장히 사랑하는 사람이다. 가령 일을 다루는 태도부터가 나와는 다르다. 예를 들어 좀 부담되는 업무를 맡으면 나는 '어디서부터 손을 대지' 하고 겁부터 먹는다면 남편은 '어디서부터 일을 시작해볼까'하고 재미를 느낀다. 또 인간관계 능력도 나보다 월등하다. 나는 직장에서 부대끼는 상사를 만나면 '미친놈이 나타났다'라고 욕하기 바쁜데 남편은 그를 잘 구워삶아 자기편으로 만드는 신기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남편을 보면서 한 번도 남편의 직장생활에 관한 한 걱정한 적이 없다.


남편은 올초 기존에 십 년간 근무한 회사에서 계열사 전배를 통해 좀 더 큰 조직으로 옮겼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을 하며 한동안은 조금 앓는 것 같더니 이내 적응을 잘해서 스트레스 없이 출퇴근을 하고 있다. 다행인 일이다. 그런 남편이 내년 2월에 차장 진급을 목전에 두고 있다. 남편은 직장생활에 패기가 넘치는 사람이라 그동안의 진급에 한 번도 누락된 적 없이 잘 성장해 왔는데 계열사가 바뀌며 아무래도 입지가 약하다 보니 좀 걱정이 된다. 그래서 요새는 인터넷으로도 점을 볼 수 있던데 전화를 한번 해봤다.


"남편이 직장생활에 빠지는 부분은 없는데 지금으로서는 좀 힘들어. 누군가 이 사람 정말 잘한다고 한번 푸시를 해줘야 해. 계열사 옮겼다고 하지 않았소?"


괜히 전화해봤나. 통화료도 비싸던데. 괜히 부정적인 말을 들으니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남편이 퇴근하고 오자마자 득달같이 오늘 전화해서 점 본 얘기를 시작했다. 남편은 한참을 흥미롭게 듣더니 걱정 마, 잘될 거야. 하며 나를 안심시켜주었다.


내가 불안하기 시작한 것은 남편이 진급 누락이라는 것은 내 인생에 없다고 생각하기에 혹시 누락이 되면 이직 준비를 할 거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진급이야 한번 누락될 수도 있는 건데 십 년 넘게 다닌 회사를 옮길 기세로 나오니 우리 가정의 경제적 평온이 깨질까 봐 두려운 것이다. 남편은 이직을 한다고 해도 다니면서 준비할 거고 이직하는 회사에는 연봉을 높여 이직할 계획이라 두려워할 것이 없으며 애초에 진급을 할 것이니 거기까지 걱정할 것도 없다고 했다. 하지만, 올 한 해 우리 집에 생겼던 많은 불운한 일들의 여파로 나는 뭔가가 항상 잘못될까 봐 두렵고 걱정이 더 많아져서 남편의 진급이 너무나도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내년 2월까지는 아직 넉 달이나 남았다. 남편은 아마 내가 듣고 온 점괘를 자양분 삼아 더 열심히 직장생활을 할 것이다. 나는 기도를 해야겠다. 할 수 있는 게 기도 밖에는 없으니 엄마에게 내 남편 차장 진급시켜달라고 부탁해봐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빠가 새로 사귄 '여자'친구(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