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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이디 Nov 07. 2024

01. 나는 아만자다

유방암 진단을 받다

"안녕하세요. 국민건강보험공단입니다. 이**님의 산정특례 등록이 완료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2024년 7월 24일 수요일 9:30a.m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문자를 받고 내가 이제 정말 암환자가 되었음을 실감했다. 

어제인 7월 23일 암진단을 받고 추가 검사를 위해 병원 근처 모텔에 숙박을 했고, 퇴근 후 한걸음에 달려온 신랑과 함께 평소와는 완전히 다른 공기의 아침을 맞이했다. 

우린 서로가 밤새 잘 자지 못했음을 알고 있었다. 신랑도 나처럼 생각이 많았으리라...


나는 늘 하던 대로 다이어리를 펼쳐 생각과 마음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제 난 뭘 해야 하지?" 7월 29일이 첫 항암이라서 그전까지 정리해야 한다. 직장에도 통보해야 하고, 다니던 필라테스 원장님께도 양해를 구해야 한다. 이제 한참 필라테스에 재미를 붙여 열심히 다니고 있었는데...

1년 회원권을 결제했기 때문에 아직도 8개월 분량의 수업 횟수가 남았다. 


그랬다. 참 열심히 살았다. 

몇 년 전부터 새벽기상을 한다고 새벽 5시에 일어나기 챌린지를 하고, 아침 루틴을 만들고, 그 루틴 가운데는 운동도 포함되었다. 새벽기상 덕분에 꾸준히 하는 것들이 늘어났고 그중 한 가지가 다이어리 쓰기다. 

식습관 역시 나쁘지 않았다. 40대가 되니 건강관리에 더 관심이 생겨 야채 과일 섭취를 늘리고 인스턴트를 최소화하며 살기 시작했다. 야식은 안 먹은 지 오래되었고, 두유제조기를 사서 두유를 만들어먹기 시작했다. 

브로콜리와 가지, 아보카도와 셀러리, 토마토를 좋아하고 술과 담배는 하지 않는다. 

건강검진도 2년에 한 번 꾸준히 하고 있었고, 유방암 검사는 작년 12월에 했는데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데 왜?? 내가 암에 걸린 걸까?


암 진단을 받으면 내가 왜 암에 걸렸는지 원인을 생각해 보려 애쓰게 된다. 나 스스로 납득이 되면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런 걸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난 한동안 내가 왜 암에 걸렸는지, 무엇이 나를 이지경으로 만든 건지 알아내려고 이런저런 가설들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내가 내린 결론은 "내가 뭔가를 잘못해서 암에 걸린 게 아니다"였다. 


왜 암에 걸리게 된 건지 그 원인은 궁금했지만, 왜 하필 나야?라는 질문은 하지 않았다. 

난 평소 모든 일에서 나를 제외시키지 않는다. 뉴스에 보도되는 사건 사고들을 보면 "나도 예외는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며 경각심을 갖고 살았고, 종양내과 전문의가 쓴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라는 책을 읽으며 만약 내가 말기 암환자라면 나는 삶을 어떻게 정리해야 하고 가족들에게 어떤 부탁을 해야 할지... 장례는 어떻게 치르고 싶은지에 대해서도 미리 생각해 두었다. 그래서일까?

암 진단을 받고 울지 않았다. 억울하거나 슬프지도 않았다. 단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머리가 복잡하고 생각이 많았을 뿐이다. 내가 슬펐던 포인트는 내 소식을 듣고 슬퍼하는 가족들이다. 

특히 엄마 아빠가 나 때문에 얼마나 많이 우셨을지... 그걸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난 자녀가 없다. 그래서 자식이 병에 걸리면 어떤 심정일지 100% 이해한다고 말하기는 조심스럽다. 

하지만 그나마도 조금 "이런 감정이 아닐까?" 감히 유추해 볼 수 있는 경험은 해봤다. 

내가 키우는 앵무새가 *PBFD라는 검사 결과를 전화로 통보받았을 때... 전화를 끊고 난 펑펑 울었다. 

(*PBFD는 앵무새 4대 질병 중 하나이며 치료제가 없는 난치성 질병으로 앵무새 부리의 변형과 털 빠짐 증상을 가져온다.) 일주일 동안 마음이 너무나 힘들어서 앵무새를 떠올리기만 해도 슬퍼서 울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난 내가 암 진단을 받았을 때 보다 반려조 "보리"가 난치병 진단을 받았을 때 더 슬프고 마음이 아프고 힘들었던 것 같다. 나에게 자식 같은 존재라 그랬나 보다. 


지금 나는 아만자(암환자)다. 

6번의 항암 중 마지막 항암을 앞두고 있고, 내 몸에 이상을 발견하게 된 시기부터 조직검사 과정, 항암 부작용과 암투병 과정들을 기록할 예정이다. 이미 임파선까지 전이가 된 상태라 6차 항암 후 수술이 가능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수술이 가능할 만큼 항암 효과가 좋길 바라지만, 큰 기대를 하지는 않는다. 난 언제나 최악의 수를 생각하고 그럴 경우에 감정적, 정신적 타격을 입지 않도록 미리미리 정신과 마음을 대비하는 스타일이라서 최악의 경우 어떤 자세와 태도로 그 상황을 받아들일지를 생각한다. 


상황은 제어할 수 없지만 그에 대한 자신의 반응은 제어할 수 있다 " 


내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바꿀 수는 없지만 달라진 내 삶을 바라보는 관점과 반응은 바꿀 수 있다. 

겨우 40여 년 남짓 살면서 깨달은 건, 모든 일이 100% 얻는 것만 있지도, 그렇다고 잃는 것만 있지도 않다는 것이다. 암이 나에게 찾아옴으로 인해 분명 내가 얻는 것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암 진단은 내 삶에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가장 큰 변화 한 가지는 머리카락이 없다는 것이다. 항암 부작용과 머리카락에 대한 이야기는 4화쯤 등장할 예정이다. 그전에 내 몸에 나타난 이상 증상을 찾아 1년을 거슬러 가본다. 


다음화-02. 1년을 거슬러 가다/ 문제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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