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시작
2023년 5월... 처음으로 코로나에 걸린 이후 여름 내 감기를 달고 살았다.
마음 같아선 한 일주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푹 쉬면서 회복기를 갖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기엔 매일 처리해야 할 일들이 있었고, 루틴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내 일을 사랑했다.
난 출근하는 것이 좋았다. 방과 후 돌봄 교사로 일하면서 아이들을 만나는 게 나에겐 스트레스가 아닌 즐거움이었고, 적성에 딱 맞는 일을 할 수 있어 감사했다. 내가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들이 있었기에 나에게 주어진 일에 대한 책임감도 나를 쉴 수 없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였다.
"코로나 때문에 면역이 떨어져서 그래"
내 몸은 나에게 쉬라고 계속 신호를 보내고 있었지만, 난 코로나 후유증을 핑계로 그 신호를 무시했다. 아니 어쩌면 건강에 대한 자신감도 있었던 것 같다. 코로나를 앓고 일시적으로 그런 거라 생각하고 몸이 견딜만하니 같은 일상들을 유지해 나갔다. 그러던 8월의 어느 날... 겨드랑이가 붓고 아프기 시작했다.
"어? 이게 뭐지? 이런 적은 없었는데?" 함께 일하는 선생님들께 물어봐도 나와 같은 증상을 겪어본 사람은 없었다. 겨드랑이 통증이 계속되자 난 종합병원의 외과진료를 봤다.
"초음파상으로 임파선이 심하게 부어있네요. 이런 증상이 처음이신가요?" 처음이라는 내 대답을 듣고 선생님께서는 단순 임파선염일수 있으니 약을 3일 먹어보고 그래도 통증이 계속되면 다시 오라고 하시며 림프순환제를 처방해 주셨다. 약을 3일 먹으니 거짓말처럼 통증이 사라지고 겨드랑이가 가라앉아서 임파선염이라고 생각하고 이것 역시 코로나로 인한 후유증 정도일 거라 생각하고 넘겼다.
2023년 11월... 또다시 겨드랑이가 붓고 아프기 시작했다. 거의 3개월 만이다. 지난번도 감기 끝물에 그런 증상이 있었고, 이번에도 감기 끝물에 증상이 나타나자 면역이 떨어져서 겨드랑이가 붓는 거라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외과를 찾았다. 초음파를 보시는 분이 임파선의 크기가 비정상적으로 크고 개수도 많다고 하시며 조직검사를 한번 해봐야 할 수도 있다고 하셨고, 의사 선생님의 소견 역시 이번에 한번 더 약을 3일 먹어보고 증상이 나아지지 않거나 다음에 또 이런 증상이 나타나면 그때는 조직검사를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이땐 살짝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약을 먹으니 또 증상이 사라져서 이번에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2023년 12월... 올해가 끝나기 전에 국가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산부인과에 예약을 했다. 자궁경부암 검사만 했었는데 40대가 되니 유방암 검진도 추가되어 2가지 검사를 받았고 검사 결과 치밀 유방에 혹이 몇 개 있기는 하지만 모양이 나쁘지 않고 크기도 크지 않으니 6개월마다 추적관찰을 하자고 하셨다.
그리고 올해 6월... 겨드랑이가 또 부었다. 병은 알리라고 했던가? 주변 사람들에게 내 증상을 알리며 조언을 구하기 시작했다. 유방 쪽을 의심해 보라는 말을 듣고 옆 도시에 유방암을 잘 찾아내기로 유명하신 분에게 초음파를 하기 위해 병원 예약을 하고 21일 진료를 받았다.
"작년 12월에 국가에서 해주는 유방암 검진받았고요, 혹이 있어서 6개월에 한 번 추적관찰을 하라고 하셔서... 검진 시기가 되기도 했고, 겨드랑이 임파선이 자주 부어서 왔어요."
선생님은 초음파로 겨드랑이를 한참을 보시고, 보시고, 또 보셨다. 마치 이런 케이스는 처음 본다는 표정과 반응이었다. 난 뭔가가 잘못되었음을 바로 감지했다.
"유방암은 아닌 것 같고, 림프종이 의심이 되니 조직검사를 해서 확인을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저희 병원에서 하실 수도 있지만, 겨드랑이 림프 쪽 조직검사는 다른 조직검사에 비해 출혈이 예상되어 혹시라도 잘못되는 경우 응급수술을 해야 할 수 있으니 환자 동의서가 필요합니다.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에서 조직검사를 하시면 어떨까요? 소견서를 써 드릴게요."
지방에 사는 사람들(참고로 나는 따뜻한 남쪽지방에 산다)은 서울에 있는 큰 병원으로 가라는 소리를 들을 때 제일 무섭다. 뭔가 나에게 큰일이 난 것만 같다. 림프종?? 운전을 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림프종이라는 단어가 맴돌았고, 이때부터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나를 림프종의 세계로 안내했다.
무서웠다. 유방암이면 단어가 친숙하기라도 할 텐데 림프종이 의심된다니... 사실 림프종이 뭔지도 전혀 몰랐다. 유방암일 거란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하고 서울의 한 대학병원 외래를 가기 전까지 열심히 림프종에 대해 알아봤다. 소견서를 써 주셨던 선생님께서 유방암은 아니라고 확신 있게 말씀하셨고, 심지어 유방 검사는 1년에 한 번만 해도 될 정도로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셨기에 그 말을 믿었다.
6월 27일 목요일 오전 9시 50분...
서울에 있는 한 대학병원 외래진료를 보기 위해 새벽 5시 기차역에 도착했다. 긴장이 되어 몇 시간 잠도 못 자고 역에 도착해 바라본 일출은 한참을 넋을 잃고 바라볼 만큼 아름다웠다. 정말 한 5분 동안 그 자리에 서서 한참을 바라봤다. 난 무슨 생각을 했었나?
그저 내가 살아있음에 감사했다. 살아서 이렇게 예쁜 풍경을 바라볼 수 있음에 감사했다. 이 5분이라는 짧은 순간만큼은 내 겨드랑이가 부어있다는 사실도, 림프종이라는 단어도, 조직검사에 대한 두려움도 비집고 들어올 수 없을 만큼 내 마음이 감사로 가득 찼다. 온몸에 전율이 느껴지고 감동의 눈물이 살짝 눈가에 맺힐 만큼...
인생을 오르막 내리막에 비하던가?
오르막을 오를 땐 죽을 것 같이 힘들다. 등산을 좋아하는 나는 오르막을 오를 때마다 인생을 떠올린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땀이 삐질삐질 나다 못해 등짝이 뜨거워지고, 다리는 근육이 터질 듯 아파올 때 겉옷을 벗어 허리에 두르고 물을 한 모금 들이킨 후 들숨을 한껏 품어 내쉬면 그제야 새소리가 들린다. 작은 야생화가 보인다. 바람이 이마의 땀을 식혀 시원해진다. 그리곤 이내 기분이 좋아진다.
" 오르막의 중간에도 여전히 즐길 수 있고 감사할 수 있다. "
힘들지 않아서가 아니다. 힘듦과 힘듦의 사이... 그 찰나의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아서다. 오르막의 중간에도 여전히 즐길 수 있음을 잘 아는 나는 이 여정을 즐기기로 다짐했다. "뭐야~첫 스타트가 아주 좋아" 혼잣말을 하며 기차에 올랐다. 기차도 얼마 만에 타보는지... 소풍을 가는 아이처럼 살짝 설레기까지 했다.
하지만 암환자로 등록되기까지 나의 여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조직검사를 무려 5번이나 했고 내 가슴과 겨드랑이는 만신창이가 되었다.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전화-01. 나는 아만자다/ 유방암 진단을 받다
다음화-03. 다섯 번의 조직검사/ 암 진단을 받기까지의 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