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dion Mar 21. 2021

우리 같은 사람들

우리라는 이름이란


"그럼 오늘 강의는 여기서 마치죠."


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책상 달린 의자가 끌리는 소리가 산발적으로 뒤섞이고 발소리가 우르르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그런 학생들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고 미라는 강의 노트를 챙겨서 가방 안에 천천히 집어넣었다. 그녀는 가방을 메고 거침없이, 그러나 고요한 표정으로 복도로 걸어 나갔다.


학과 사무실에 출석부를 돌려놓고 나오는데 복도 왼편에서 누군가가 미라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미라가 학부시절 전공선택 과목을 두 번 들은 적 있는 교수였다. 한동안 다른 학교로 간다는 얘기가 파다했는데 어느새인가 학과장의 은퇴로 공석이 된 정교수 자리를 꿰찬 여인이었다.


"안녕하셨어요 교수님."

"나야 안녕하지. 너는 어떠니?"

"저요? "

" 참 오랜만이다."
"그러게요."

"네가 우리 학교에서 가르치게 될 줄이야. 새삼 세월 참 빠르구나 싶네."

"저도 여기 다시 오게 될 때 참 놀랐어요. 교수님은 여전하신 걸요. 오히려 젊어지신 것 같아요."

"빈말이라도 고맙다."

"진짠데요."

"얘, 시간 괜찮으면 커피라도 한잔할래? 선물 받은 원두 유통기한이 다돼가서 빨리 마셔야 되거든. 좀 도와줄래?"


뜻밖의 제안이었다. 미라는 이 초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그러나 그녀가 제대로 생각하기도 전에 교수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교수는 고급스러운 미색 투피스 정장 차림이었다. 큼직한 관엽식물 화분이 놓인 실내의 한색도 난색도 아닌 고채도의 중성색 인테리어와 잘 어울리는 색이었다. 마찬가지로 교수는 세팅한 세련된 단발머리였다. 이름 있는 있는 브랜드 제품인 소파와 다기 세트와 잘 어울리게.


"머리 자르셨네요. 잘 어울리셔요."

"고마워. 요즘 어때?"

"그저 그렇죠 뭐. 출강하고 책 쓰고. 제가 평생 공부하게 될 줄 어떻게 알았겠어요. 게다가 가르치는 일이라니. 다들 지루해서 죽을 것 같아하는 걸 보니 미안하기까지 하던데. 요즘 애들은 제때보다 더 빡빡하게 살잖아요. 그런데..... 아, 죄송해요."


미라는 묘하게 민망한 마음에 되는대로 제 사정을 줄줄 늘어놓으며 잔에 흘러내리는 커피 얼룩을 닦다가 그만 통째로 뒤집어 쏟아버렸다.


"아니야. 괜찮아."


교수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고 방황하는 그녀의 양손을 지그시 잡았다. 그리고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미라는 교수에게 시선과 손이 이중으로 사로잡힌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되었다. 그녀는 어색한 미소를 띤 채 눈알을 이리저리 굴렸다. 그도 그럴 것이 교수의 시선에는 묘한 열기가 서려 있어서 보지 않아도 그녀의 시선이 내뿜는 기운을 온몸으로 감각할 수 있었다.

 

"저......."

"어려우면 내가 좋은 말 넣어 볼 수도 있고. "

"네?"

"너 같은 재원이 그냥 썩기는 아깝잖아. "

"감사합니다."


미라는 억지로 웃으며 교수의 손을 최대한 작은 동작으로 뿌리쳤다.


"뭘, 우리 같은 사람들은 서로 돕고 살아야 해."


순간, 미라의 등줄기가 서늘해지면서 온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미라는 입을 열었다. 그러나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그곳을 나올 때까지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교수의 연구실이 있는 복도를 벗어나자마자 미라는 교수의 명함을 찢어 휴지통에 버렸다. 서둘러 학교를 빠져나오면서  미라는 친구 안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누구에게라도,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러는 넌 명문대도 아니면서 쓸데없이 고학력이라 문제야. 겨우 보따리 장사하면서 아무도 안 읽는 책 좀 낸다고  뭐가 달라지냐. "


석사까지 함께했던 안나가 하는 말이었다. 안나도 박사에 도전했지만 집안 사정도 있고  심리적 압박도 심해서 결국 그만두게 되기까지 그녀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미라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안나가 하는 말이기에 미라는 묵묵히 듣고 있었다. 처음에는 미라의 기분을 달래주겠다고 안나가 마련한 자리였지만 안나의 직장 이야기가 나온 이후로는 그 취지가 흐려졌다. 이야기는 일이 육아와 양립하기 어려운 사정에 대한 토로로 넘어갔다. 그리고는 시어머니와 시댁이 행사하는 부당한 횡포에 분노하다가 초점이 과거의 시련으로까지 넘어가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넌 꼭 교수돼라, 아니 꼭 될 거야. 그렇고 말고. 너같이 학문을 사랑하는 애가 교수가 안되면 누가 되냐? 너 가르치기도 잘하잖아. 10년 된 파워포인트 자료 가지고 날로 먹는 인간들이 널렸는데 넌 얼마나 명석, 성실해. 암, 그렇고 말고. "

"취했어 너."


미라는 큰소리로 고래고래 외치는 안나에게서 잔을 빼앗았다. 막차가 끊긴지는 오래였다. 그녀는 안나의 휴대폰을 빼앗아 안나의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나의 남편이 안나를 데리러 올 동안 미라는 술값을 계산하고 짐을 추슬렀다.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자 미라는 안나를 부축해 가게 앞으로 나왔다. 차도 쪽을 주시하며 힘겹게 그녀를 지탱한 끝에 남편에게 넘길 수 있었다. 태워다 주겠다는 안나 남편의 권유를 거절하고 미라는 걸었다.


바람이 차디찬 겨울밤에 미라는 걷고 또 걸었다. 한기가 옷을 뚫고 파고들어와 살이 에이었다. 머릿속까지 얼어버린 듯싶었다. 그런 중에도 문득 정신을 차리니 어느새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를 지나고 있었다. 미라는 발길을 멈추고 난간 너머를 넘겨다 보았다. 밤의 공기는 검고도 푸르렀다. 투명하지 않은 그 장막 너머 수평선 저편에 무엇이 있을까. 그녀는 눈을 감았다. 오전의 강의실, 학생들의 웅성임이 썰물처럼 빠지자 그 너머로 오후의 햇살이 스미는 교수실이 보였다. 핀 조명 같은 햇빛의 스포트라이트에 두 여자가 있다. 잘 차려입은 나이 든 여자가 젊은 여자의 두 손을 움켜쥔다. 젊은 여자의 얼굴이 붉어진다. 우리 같은 사람들. 놀라움 다음은 수치심일까? 분노일까? 부정해야 해. 나를? 나는? 탕, 하고 테이블을 치는 소리가 들린다. 아무도 안 읽는 책 좀 낸다고 뭐가 달라 지나. 술냄새. 미라는 자신에게서 나는 술냄새를 느낀다. 구구절절한 상념은 구질구질하군. 미라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한 사람을 발견했다. 저만치서 사람이 난간 너머에 한 발을 걸치고 있었다. 미라는 본능적으로 그쪽을 향해 달렸다.


"거기 그대로 있어요"


미라는 그 사람 뒤에서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그냥 가세요. 제발"


난간에 선 사람의 목소리는 의외로 앳되었다.


"이봐요. 전 무슨 일인지 몰라요. 하지만 이런 행동이 진짜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상관없어요. 그냥 이 모든 걸 이만 끝내고 싶다고요"


어린 여자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 사이 미라는 살금살금 다가가 가만히 소녀의 겨드랑이 사이에 두 팔을 끼워 넣고 깍지를 꼈다.


"이거 놔요."

"싫어요. 놓으면 뛰어내릴 거잖아요."

"놓으라......"


소녀가 말을 채 잇기도 전에 울음이 다시 터져버렸다. 팔을 타고 외투를 걸치지 않은 소녀의 체온이 느껴졌다. 흐느낌에 맞춰 들썩거리는 몸에서는 심장의 고동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소녀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리며 얼굴을 간지럽혔다. 여자는 정말 섭디섭게 울었다. 미라는 속삭이듯이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든지 간에 당신은 당신이에요. 다른 사람이, 세상이 상처 입히게 놔두지 말아요. 그들이 이기게 두지 말아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는 당신이 결정하는 거예요. 울고 싶으면 마음껏 울어도 돼요. 하지만 그러고 나서는 잊어버려야 해요. 울 수 있다는 건 아직 당신에게 희망이 살아있다는 거죠."


소녀는 듣고 있는지 듣지 못했는지 여전히 울면서 힘겹게 숨을 뱉었다. 미라는 말을 이었다.


"나에게 말해주지 않을래요? 어떤 얘기든 좋아요. 내가 들어 줄게요. 말할 수 있겠어요?"

"내가.... 내가..... 너무......"

"네"

"내가 너무...... 바보였어요."

"그렇게 느낀 이유가 뭐죠?"

"친구들이 날 배신했어요. 학교애들이 내가 너무 이상해서 실테요. 아니 나 같은 애가 싫어서 친구인척 하다가 그런 거니까 친구도 아니었어요. 처음부터...... 처음부터......."

"그건 그 애들 잘못이지 학생 잘못이 아니잖아요."

"내가 할머니 같고 구질구질하데요. "

" 왜 할머니 같다고 하는데요?"

"난 할머니 하고만 살아요. 난 우리 할머니가 좋은데, 난 몰랐는데 우리 할머니가 하는 것처럼 행동해버리면 다들 싫어해요."

"요즘애들 같지 않다는 게 뭐 어때서요. 그런 사람이 지구 상에 학생 하나가 아니잖아요."

"하지만 우리 반에 나 같은 애는 이상한 거예요. 다른 애들은 안 그래요. "

"다르게 행동하면 되죠. 다른 애들처럼."

"나도 다른 애들처럼 해보려고 했는데 잘 안돼요. 그리고 이제는 내가 어떻게 행동하더라도 그 애들은 날 싫어할 걸요."

"남과 다르다는 게 잘못이 아니에요. 나도 남과 달라요. 모두가 남과 달라요. 그 애들은 그냥 남을 괴롭힐 이유가 필요했던 거죠. 그래, 학생은 할머니가 밉나요?"

" 아뇨, 할머니는 제 전부예요."

" 할머니를 사랑할 수 있다면 학생 자신도 사랑할 수 있어요. 잘될 거라고 괴롭힘이 한 번에 사라질 거라고 장담은 못해요. 하지만 사랑한다면 이러지 말아요. "

"할머니를요?"

"할머니랑 학생 자신이요."

" 난 이런 내가 너무......."

"할머니가 기다리고 계실 거예요. 다른 게 힘들다면 할머니를 봐서라도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겠어요?"

"난....."

"이 밤중에 어디를 갔나 걱정하실 거예요. 지금 이 순간도 학생을 찾아다니고 있는지도 몰라요."

"할머니..... 어떡해."

소녀가 다시 울먹이기 시작했다. 미라는 슬슬 팔에 힘이 빠지는 게 느껴졌다.

"자, 이제 그만 이쪽으로 넘어와서 얘기해요. 어서."


소녀는 더는 대답이 없었지만 곧 순순히 넘어올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미라는 구조대를 부를 것을 하고 후회했지만 이미 소녀는 움직이고 있었다. 미라의 정수리가 얼얼할 정도로 신경이 곤두섰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소녀가 바닥이 보이지 않는 강물 속으로 떨어질 판이었다. 그녀는 서둘러 고개를 좌우로 돌려 도움의 손길을 찾았지만 근처에 사람은 없었다.


"잡고 있을게요. 천천히. 하나, 둘, 셋!"


다행히도 소녀는 떨어지지 않았다. 대신 미라는 소녀와 함께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괜찮아요?"


미라는 소녀의 상태를 살피며 말했다.

소녀는 여전히 흐느끼느라 어깨를 들먹이면서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쉬-. 괜찮아요. 괜찮을 거야."


미라는 코트를 벗어 소녀의 떨리는 몸을 감쌌다.


"우리 같은 사람은 서로 돕고 살아야 해. "


이 말은 거의 미라의 혼잣말처럼도 들렸다. 그녀는 소녀를 끌어안은 채로 눈을 감았다. 어느 사이에인가 솜털 같은 눈송이가 두 사람의 위에서 흩날리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을의 바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