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괴담
수한은 카페에 있었다. 창가의 바 형태로 된 1인석에 앉아 노트북을 펼치고 타이핑을 하면서 이따금 옆에 놓인 아이스 라떼를 마셨다. 그의 옆에는 이십대로 보이는 여성 하나가 케이크를 앞에 놓고 아이패드에 아이펜슬로 그림 작업 같은 것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뒤로 다인석에 앉은 손님들이 무리를 지어 이야기하는 소리가 뒤섞였다. 수한이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는 발랄한 팝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다지 유난스러울 게 없는 풍경이었다. 여기는 수도권의 평범한 주택가였고 카페 앞에는 구립 도서관이 서 있었다. 사람들은 일상적인 모습으로 길을 지나쳐 갔고 초여름의 날씨는 여느 여름처럼 적당히 더웠다.
만약 누군가 이 시점의 수한에게 당신은 세 시간 후에 죽을 것이라고 했다면 그가 믿었을까? 아마도 그는 그 사실을 알린 존재가 미쳤거나 오류를 일으켰다고 간주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로부터 세 시간 뒤, 30대의 건강한 청년인 수한은 심장 마비를 일으킨다. 그래도 일단 이날 아침으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다시 시작할 필요성을 느낀다.
이날 아침 역시 평범했다. 수한은 아침 8시에 눈을 떴다. 알람은 한참 전부터 울리고 있었다. 하지만 수한은 늘 아침에 일어나기 어려워했고 그래서 아침이면 꽤 길게 시끄러운 알람이 울려 퍼지고는 했다. 그래서일까? 수한의 이웃은 엘리베이터에서 수한과 마주칠 때 못마땅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수한으로서는 짐짓 모르는 척하는 수밖에 없었다. 알람이라도 켜 놓지 않으면 하루 반나절이 넘게 자버리기도 했기 때문이다. 특히나 이날 수한은 아르바이트를 위해 꼭 제시간에 출근해야 했다.
수한은 급히 세수를 하고 옷을 걸쳤다. 가방 안에 노트북을 챙겨 넣고 그는 버스 정류장으로 달음질쳤다. 아르바이트하는 5시간은 정신없이 흘러갔다. 퇴근하면서 그는 집 근처 정류장이 아닌 도서관 근처에서 내렸다. 그리고 도서관에 들어가 책 한 권을 빌렸다. 까뮈의 '시지프스 신화'였다. 그는 도서관 앞의 카페에 들어갔다. 여기까지 별다른 일은 없었다. 그런데 왜 이 시점까지 거슬러 올라갔느냐고 물을 수 있겠다. 왜냐고? 그건 바로 그의 집에서 그가 까맣게 잊은 무언가 때문이다. 그는 아침에 나오느라고 자신의 집안을 돌아다니지 않고 침실과 화장실만을 이용했을 뿐이다.
수한은 무엇이 집에서 자신을 기다리는지 모른 채 카페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글 쓰기를 좋아했다. 그중에서 그가 쓰고자 하는 장르는 단연 호러, 괴담, 미스터리였다. 그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미스터리와 괴담 갤러리를 수시로 드나들었고, 이런 장르의 소재를 찾기 위해 영어 기사를 읽고 영어 팟캐스트까지 찾아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한은 저주받은 물건들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다. 인터넷 경매로 거래되는 귀신 들린 물건이나 잔혹한 사연이 있는 증거물 따위를 구경하며 자신의 경제적 여건에도 맞고 취향을 저격하는 물건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그제 밤에 그가 어렵게 얻어낸 저주받은 물건이 배송되었던 것이다.
그건 겉 보기에는 아주 평범한 앉은뱅이 경대였다. 사실 경대라기에 그냥 거울 달린 화장품 상자라고 해야 할 물건이었다. 특별히 고풍스럽지도 않고 디자인이 희귀하지도 않았다. 인터넷 쇼핑 사이트에 들어가서 찾으면 이와 비슷한 물건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 물건을 경매에 올린 주인은 이 물건이 결코 평범하지 않단는 경고문을 써놓았다. "혼자 있을 때 절대 뚜껑을 열지 마세요." 그것뿐이었다. 엄청 무시무시한 내력이 구구절절 쓰여있지는 않았다. 이 경대의 이전 주인은 이 물건의 '판도라의 경대' 라고 제목을 붙였다. 사람들은 그의 작명 센스를 비웃었다. 자세한 사연도 모르는 데다가 싸구려 기성품의 외관 때문에 입찰에 나서는 이는 거의 없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수한의 눈을 사로잡았던 걸까? 그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문구가 있었다. 미래를 알 수 있습니다. 매우 유치한 설정이다. 수한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자꾸 그 웹페이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맴돌았다.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입찰을 원하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큰 출혈도 아닌데 뭐 어떠냐는 생각이 들었고 장난 반으로 가격을 불렀다. 그리고 별로 어렵지 않게 이 물건을 얻을 수 있었다.
오랜 시간 취업에 실패해온 수한으로서는 미래란 막막하고 걱정스러운 시간일 뿐이었다. 현재에 집중하면 미래에 대한 불안을 버틸 수 있다는 말들을 들었고 그에 대해 그 역시 수긍하고 있었지만 하루하루에 치여 지내다가도 한밤중에 깨어나 좁은 방안을 맴돌게 하는 불안의 습격을 완벽히 피할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언제인가부터 그는 비는 시간에 괴담과 미스터리에 묻혀 지내다가도 틈이 나면 인터넷 운세 사이트를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점괘라는 것이 원래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 코빼기라도 힐 긋 보고 있는 듯한 착각으로 마음을 순간이나마 달랠 수 있었다.
나는 어제 고대하던 물건을 받았다. 경매로 받은 경대로서 경대라기에는 거울 달린 화장품 상자라는 표현이 맞는 물건이었다. 이 경대는 미래를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이 경대를 받자마자 동봉되어있던 전 주인의 메모에 적힌 대로 미래를 보기 위한 의식을 실행했다. 일단 흰 종이에 내 이름과 생년월일을 적고 촛불에 불을 켠 다음 전등을 껐다. 그런 다음 경대를 세 번 두드린 후 뚜껑을 완전히 열지 않고 아까의 종이를 넣었다. 그 앞에서 내 이름을 거꾸로 세 번 외친 후 친지 중 돌아가신 분의 이름을 거꾸로 두 번 외쳤다. 그리고 정신을 집중해서 생각을 미래에 집중하고 경대 뚜껑을 열어 종이를 꺼낸 후 촛불에 태웠다. 그 순간 거울 속에 미래의 한 장면이 비친다고 했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종이에 붙은 불 때문에 집에 불을 낼 뻔했다.
수한은 여기까지 타이핑하고는 커피를 한 모금 빨아 마셨다. 그리고는 한 문장을 더 처넣고는 피식 웃었다.
참, 내 미래가 깜깜 하다는 뜻인가.
그러고 나서 수한은 웹서핑을 하며 새로 올라온 괴담 에피소드가 없나 살피며 노닥거리다 카페를 빠져나왔던 것이다. 그는 천천히 걸어서 집에 도착했다. 부모님은 제사 때문에 친척 집에서 자고 오기로 한 참이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수한은 땀으로 끈적한 몸을 씻기 위해 욕실로 들어갔다.
샤워기를 틀어놓고 욕조 안에 들어가 샤워 커튼을 친 수한은 수도꼭지를 돌려 뜨거운 물을 틀었다. 여름에도 뜨거운 물을 고집하는 탓에 얼마 안 가 욕실은 뜨거운 김으로 가득 찼다. 그렇게 머리를 감기 위해 샴푸를 할 때였다. 어디선가 '달그락'하고 소리가 들렸다. 잘못 들었겠지. 어차피 나갈 수 없고 눈을 뜰 수도 없고 해서 수한은 소리를 무시했다. 달그락. 그러나 소리는 수한이 다시 바쁘게 손을 움직이자 들려왔고 멈추자 멎었다. 수한은 서둘러 물을 틀었다. 후다닥 머리의 샴푸를 헹궈내고 얼굴의 물을 손바닥으로 문질러 닦으며 그는 샤워 커튼은 확 젖혔다. 욕실 안에는 소리가 날만하 요소가 없었다. 수한은 잠시 망설이다 욕실 문을 살짝 열었다.
"엄마야?"
부모님이 돌아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외친 말이었다. 그러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빠?"
역시 집 안은 조용했다. 잘못 들었겠지. 수한은 욕실 문을 닫고 돌아섰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욕실 거울에 서린 수증기를 손바닥으로 문질러 닦아냈다. 물에 젖은 머리카락과 얼굴이 보였다.
'달그락'
"뭐야?"
수한은 뒤를 돌아다보았다. 그 순간 뒤로 디딘 발이 쭉 미끄러졌다.
"씨발."
욕으로 비명을 지르던 수한은 몸이 완전히 균형을 잃기 직전에야 가까스로 멈출 수 있었다. 몸을 추스르고 나서 수한은 또한 번, 이번에는 길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아까의 긴장감은 남김없이 날아가버렸다. 수한은 서둘러 샤워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으로 들어간 그는 수건을 머리에 쓴 채 책상 의자에 앉았다. 의자를 당겨 앉으려니 책상 및에서 무언가가 발에 걸리었다. 수한은 의자를 뒤로 물리고 고개를 숙여 들여다보았다. 뚜껑이 닫힌 경대였다. 수한은 눈썹을 한번 찌푸리더니 한숨을 한번 쉬고는 경대를 의자에서 일어나 경대를 집기 위해 책상 아래 쪼그려 앉았다. 수한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잡동사니를 샀는지 문득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리고는 이 물건의 실용성 다시 가늠해 보려는 듯이 재보듯 경대를 훑어보더니 손가락 마디로 뚜껑을 세 번 두드렸다. 그는 가늘게 뜬 눈에 힘을 풀고 콧웃음을 한번 쳤다.
"수리수리 마수리 미래야 보여라"
그리고는 경대의 뚜껑을 확 열어젖혔다. 거울이 드러났다. 그리고 몇 초 후 눈앞에 밝은 섬광이 지나가며 수한의 가슴팍에서 강한 통증이 일었다. 그는 가슴을 부여잡고 뒤로 쓰러졌다. 쓰러진 그의 눈 앞에 회색빛 발이 보였다. 경련을 일으키는 수한의 몸을 누군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 열지 말랬잖아."
공포 영화나 소설 속 인물들은 왜 하지 말라는 일을 꼭 할까? 글쎄, 현실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쓸데없는 짓을 하지 않기 때문에 미스터리를 믿지 않는 이들이 많은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이번 일을 실험해보고 싶은 것이다. 사실 미래를 알게 된다는 것은 예정된 결말이 존재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과연 내가 뻔한 일을 하게 되면 정말 소설과 공포영화처럼 뻔한 행동에 예정된 결말을 맞이 하게 될까? 내가 소설 속의 주인공이라면 그럴지도 모른다. 내일 드디어 물건이 도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