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3학년 때는 아무도 내 말을 끝까지 안 들어줬다. 나는 재미있는 과에 가고 싶어 했고, 어른들은 취업이 잘 되는 과에 보내고 싶어 해서 내 말을 끊었다. 말을 하다 보면 억울해져 시도 때도 없이 울음이 치밀었다. 말도 안 들어주는 사람들이 눈물을 견뎌줄 리가 있나. 나도 자존심이 있지, 나는 그들 앞에서 울지 않으려고 목구멍에 눈물을 눌러 담고 다녔다.
지망학과를 써가야 하는 날이었나, 부모님이 꽤 보수적인 경상도 사람처럼 말했다. “취업 잘 되는 데 가서 가계에 보탬이 돼라”는 말이 속상했는지, “무슨 대단한 일을 하려고 유난이냐”라는 말이 더 서러웠는지 불확실하다. 일단 드라마처럼 문을 박차고 뛰쳐나왔다. 근데 주변이 논밭이라 갈 곳이 없었다.
나는 마당에 있는 개집에 앉아 그동안 참은 눈물을 줄줄 흘렸다. 막 세 살이 된 우리 집 진돗개 몽이한테 모든 걸 일러바치는 동안 그 개는 내 곁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먼 산을 봤다.
그 뒤로 슬프면 개집에서 울었다. 그러면 집주인은 크고 하얀 엉덩이를 내게 맞대고 딴 곳을 보다 가끔 얼굴을 핥아줬다. 대학에 가서 어쩌다 기사를 보고 알았다. 개는 동족이 취약한 상태일 때, 엉덩이를 맞대고 상대가 못 보는 반대쪽을 보며 경계를 선다고.
그 뒤로 서러워서 울고 싶을 때면 그 진돗개의 엉덩이를 생각한다. 내가 안전하게 울 수 있도록 보초를 서던 단단한 엉덩이. 내가 처음 받은 진득한 사랑.
언젠가 몽이를 다시 만나면 말해줘야지. 내가 너보다 오래 살아봤는데, 사랑은 역시 엉덩이로 하는 게 맞다고.
갑자기 몽이가 세상에 없다는 사실이 뼈저리게 느껴져서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사랑받았던 기억으로 살아가자고 큰소리치며 말했지만 내 일이 되고 보니 안된다.
그 기억이 나를 슬프게 한다. 이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증거가 되어서.
봄이 이렇게 서러운 계절인지 몰랐다.
이제 받아들여야 하는데 쉽지 않다.
그냥 몽이한테 안겨서 한번 울고 나면 모든 게 해결될 텐데, 몽이가 없어서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