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 앞에서는 그저 하나의 몸짓에 불과할 뿐

by 배준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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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마을의 자연환경을 지키고 싶어 하는 주민들과 그곳에 새로운 글램핑 사업을 주최하려는 중소기업 직원들 간의 갈등을 중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시놉시스만 보면 이 작품은 단순히 환경보호에만 초점을 맞춘, 어찌 보면 인간과 환경은 서로 상호보완적 가치를 지니며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뻔한 주제로 귀결될 수 있었지만, 하마구치 류스케만의 날카롭고 다분화된 스토리텔링 능력이 작품의 후반부까지 긴장의 끝을 놓지 않게 해준다. 더불어 ‘아사코’,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도 선보인 ‘일상의 비 일상화’ 연출을 통해서 작품의 흐름을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거세게 끌고 나간다. 아마 대부분이 이 영화를 보고서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이 풀리기보단 오히려 새로운 의문점들을 얻게 됐을 것이다.


이 글에서 언급한 ‘일상의 비 일상화’란 필자가 하마구치 류스케의 세계관을 간략하게 설명하기 위해 만든 일회성 용어이다. 이것은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차마 현실에서 꺼내기엔 민감한 소재들을 영화 속에서 제시한 뒤, 관객들이 전혀 예측하지 못할 장면에서 소재가 지닌 불완전성을 한꺼번에 터뜨리는 연출을 말한다. 마치 그리스/로마 신화 속 ‘판도라의 상자’와 비슷한 성향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작품에서도 이러한 ‘일상의 비 일상화’가 적용되는 부분이 여럿 존재하는데, 이러한 극단적인 변조는 관객들이 영화를 다방면으로 해석할 여지를 가져다주고 어느 한쪽 인물에만 감정을 소모하는 일을 없애준다. 또한 영화를 다소 냉소적으로 이끌어가는 동시에 감정적인 변화를 통해 작품의 매력을 더해준다. 감독이 전작에서는 불륜이란 주제를 빌려 ‘일상의 비 일상화’를 연출했다면, 이번 영화는 자연환경 속에서 벌어지는 서로 다른 집단 간의 갈등을 통해 영화의 흐름을 180도 뒤바꿔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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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보호를 주제로 한 작품이라고 하면, 주로 환경을 파괴하려고 하는 인물이나 단체를 악역으로 묘사하는 경향이 강한데, 이 영화는 특이하게도 인물들의 선과 악이 애매모호하게 규정되어 있다. 또한 영화는 마을 사람들을 단순히 환경보호에만 몰두하려는 일차원적 인물들로 그려내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이 지키고자 했던 것은 단순히 마을의 자연환경이 아닌 오래전부터 그들이 만들어 온 하나의 규칙이다. 영화는 마을 사람들의 규칙적인 일상을 반복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체계화된 일상이 마을에서 얼마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보수적이면서 체계성이 명확한 마을에 새로운 외지인이 들어온다고 하니, 이후 마을 사람들이 보여준 행동들은 그들과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를 준비라고 봐도 무방하다. 비록 그들도 수십 년 전에는 영화 속 대사처럼 사슴의 영역을 침범한 또 하나의 외지인이었지만 말이다. 그들은 숲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외지인들의 산업을 반대했지만, 정작 그들도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야생 동물들의 영역을 침범하고 사냥을 허용하는 모순점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러한 점들을 통해 환경보호는 작품에서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주제 의식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가 호평받는 부분 중 하나가 바로 다방면으로 작품이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이다. 누군가에겐 작품의 흐름이 다소 불친절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이야기에 대한 불명확한 표현과 연출을 통해 관객들이 다양한 해석을 통해 영화 속 세계에 깊게 접근할 수 있게 만든다. 그럼에도 영화가 강조하는 핵심적인 주제는 작품 속에서 벌어지는 여러 투쟁과 모순점들마저 자연 앞에서는 그저 평범한 몸짓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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