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미안해지지 않기 위해 달린 길
아버지의 얼굴을 직접 보고 돌아온 뒤부터, 마음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중환자실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자꾸만 되감기처럼 반복되었다. 괜찮을 수도 있다는 말과, 아닐 수도 있다는 말 사이에서 나는 계속 같은 질문을 되풀이했다. 다음에는 언제 가야 하지. 그리고 그 질문 끝에는 늘 또 다른 질문이 붙어 있었다. 그때도 나는 누군가에게 부탁해야 할까.
연말로 접어들며 남편의 일정은 더 빽빽해졌다. 사무장을 맡은 곳의 연말총회 준비와 회원 농가들의 종자 접수 등, 미룰 수 없는 일정이 줄줄이 이어졌다. 아이들 등하교만으로도 빠듯한 날이 많았고, 그 와중에 사천까지 함께 가 달라고 말하기에는 마음이 자꾸만 무거워졌다. 내가 같이 가달라고 하면, 남편은 분명 아무렇지 않게 “같이 가자”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같이’라는 말속에는, 남편의 시간과 체력을 덜어내야 하는 전제가 따라붙었다.
아버지를 자주 찾아뵈어야 할 것 같다는 예감은 점점 확신에 가까워졌다.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목소리를 듣고, 손을 잡아야만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모든 전제 위에 ‘누군가의 운전’이 계속 얹혀 있다는 사실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고마움과 미안함이 뒤섞인 감정은, 어느 순간부터 나 자신을 작게 만들었다.
나는 왜 아직도 여기서 멈춰 있을까.
해남에서 사천까지. 지도 위에서는 선 하나로 그려지는 거리였지만, 내게는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두려움이었다. 가끔 보성휴게소까지 고속도로를 타 본 적은 있었지만, 사천까지의 거리는 짧은 내 경험으로 덮기에는 길어 보였다. 장거리라는 말보다 먼저 떠오른 건, 길을 잘못 들면 어쩌지, 사고가 나면 어쩌지라는 상상이었다.
하지만 그 두려움보다 앞서 있었던 감정은 또다시 누군가에게 미안해질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었다. 미안함이 쌓일수록, 나는 점점 더 조수석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 익숙함이 나를 편하게 해 주는 대신, 나를 한 자리에 묶어 두고 있다는 것도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아이들 라이딩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건 그 무렵이었다.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운전 말고, 내가 선택해서 하는 운전이 필요했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 읍내 서점까지 가 보았다. 목적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어서였다. 서점 주차장 앞에서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조금 떨어진 곳에 차를 세우고 걸어갔다. 그렇게라도 도착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토요일마다 직접 운전해서 출근하기도 했다. 평소보다 이른 시간, 차가 비교적 적은 도로를 골라 천천히 달렸다. 잘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도망치지는 않고 있었다. 운전석에 앉아 있으면 여전히 긴장이 먼저 찾아왔지만, 그 긴장 속에서 이상하게도 마음 한쪽이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는 누군가에게 부탁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모든 길을 혼자 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필요한 순간에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남편에게 계속 부탁하기엔 마음이 무거웠고,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그 자리가 점점 불편해지고 있었다.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길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었다. 그 길은 내가 어떤 사람으로 남고 싶은지와도 닿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서서히, 아주 조심스럽게 운전의 반경을 넓히기 시작했다. 아직은 연습에 가까웠고, 여전히 불안했지만, 분명한 건 하나였다. 이대로 머물 수는 없다는 생각이었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시간이 길었던 만큼, 운전석으로 옮겨 가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 시간마저도 이제는 피하지 않기로 했다. 언젠가 사천까지 혼자 달려가야 할 날이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날이 갑자기 닥쳐와도, 더 이상 누군가에게 미안해지지 않도록 나는 연습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