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미안해지지 않기 위해 달린 길
내가 운전대를 잡아야 할 이유는 남편 일정이 많아 아이들의 등하교 라이딩이 힘들 때뿐이라고 생각했다. 그 소식을 듣기 전까지는...
그날 그 시간에 나는 집 청소를 하고 있었다. 물걸레포로 바닥을 닦고 있는데 늘 조용하던 핸드폰이 울렸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넷째 언니의 목소리는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아버지가 구급차를 타고 병원을 갔으나 상태가 좋지 않아 중환자실에 입원했다는 소식이었다. 일단은 병원으로 오라는 말과 함께.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비워졌고,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걱정도, 두려움도 아닌 ‘어떻게 가지?’였다.
남편은 그날도 일정이 빽빽했다. 미룰 수 없는 바깥일이 겹쳐 있었고, 아이들은 하교 전이라 급하게 차를 몰고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친정인 사천까지 함께 가 달라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때 자연스럽게 떠오른 얼굴이 전주에 사는 셋째 언니였다. 망설이다 전화를 걸었고, 상황을 설명하는 내 목소리는 생각보다 차분했다. 언니도 소식을 들었던 터라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OO이 시댁에 부탁하고 갈게”라고 말했다.
언니는 전주에서 해남으로 내려왔고, 나는 그 차에 올라탔다. 사천까지 가는 길 내내 조수석에 앉아 언니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중간에 휴게소에 들러 커피를 사고, 차가 막히는 구간에서는 속도를 조절하며 조용히 흐름을 탔다. 전주에서 해남을 거쳐 사천까지, 다섯 시간이 넘는 이동이었지만, 언니는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게 더 마음에 남았다.
사천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두웠다. 병원으로 향하는 길은 모두 언니의 몫이었다. 지금까지 남편에게 얹혀서 이동하듯 나는 그저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아버지를 뵙고 나온 뒤에도 상황은 같았다. 잠을 자기 위해 넷째 언니의 집으로 가는 길도 셋째 언니의 손에 맡겨져 있었다.
넷째 언니의 집에서 잠을 자는 동안 몸은 이불속에 있었지만 마음은 계속 깨어 있었다. 아버지의 상태도 마음에 걸렸고, 저녁 내내 운전한 언니에게 미안했다. 고속도로에서 차선을 바꿀 때의 망설임 없는 동작, 잘못된 길로 들어서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다시 길을 찾던 셋째 언니. 그 모든 것이 나와는 다른 세계의 일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세계에 발을 들이지 않은 채, 늘 누군가의 옆자리에 앉아 있었음을 그제야 또렷하게 실감했다.
이튿날도 마찬가지였다. 서울에서 내려온 조카와 둘째 언니를 만나러 가는 길, 만나서 점심을 먹을 식당까지의 이동조차 언니가 모두 맡았다. 나는 조수석에 앉아 목적지만 말했다. 그마저도 조심스럽게. 괜히 부담을 더 얹는 것 같아 말을 아꼈다. 저녁이 되어 해남으로 출발했을 때는 이미 몸이 축축 늘어져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이상할 만큼 피곤했다.
밤 아홉 시가 조금 넘어 해남에 도착했다. 언니는 다시 전주로 올라가야 했다.
“피곤하지 않아?
그냥 우리 집에서 자고 내일 갈래?”
“괜찮아~ 차라리 밤에 운전이 더 편해~”
괜찮지 않을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전주에 도착하면 자정이 훌쩍 넘을 시간이었다. 언니의 하루는 내 하루보다 훨씬 길었고, 그 하루의 상당 부분이 나를 위한 이동이었다.
그날 이후로 ‘미안하다’는 말이 마음속에서 자주 고개를 들었다. 고마움과는 다른 결의 감정이었다. 고마움이 따뜻하다면, 미안함은 묵직했다. 다시 이런 일이 생긴다면, 또 누군가에게 이렇게 얹혀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아버지를 자주 뵈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수록, 그 불편함은 점점 더 선명해졌다.
그리고 그날, 하나의 생각이 분명해졌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었다. 누군가에게 미안해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내가 달려야 할 길이 있다는 것을, 그날 밤 처음으로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