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생활운전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운전을 하게 되면서 내가 바란 것은 단 하나였다. 남편에게 더이상 나의 이동을 부탁하지 않는 것. 지금도 능숙하게 운전을 하지는 못해, 운전석에 내가 앉더라도 조수석에는 남편이 함께 한다.
주차와 후진은 여전히 어렵고, 차선 변경 앞에서는 숨을 한 번 더 고른다. 앞에 경운기가 있으면 괜히 고집을 부려 천천히 뒤를 따른다. 다만 아이들 학교까지,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만큼은 혼자서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딱 그 정도의 운전이다.
하지만 그 ‘그 정도’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아이들 등하교 라이딩은 남편의 몫인 날이 더 많다. 남편은 바깥일로 읍내를 자주 오가고, 교육이 있는 날이면 하교 시간과 겹치기 일쑤다. 자연스럽게 우리 집 ‘레이’는 남편의 차가 되었고, 나는 여전히 조수석에 앉아 있는 날이 많았다. 그러다 남편이 출장을 가거나, 일정이 유난히 많은 날이면 그날만큼은 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특별한 날도, 용기가 충만한 날도 아니었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도, 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그냥 내가 해야 하는 날이었다.
하교 시간보다 한참 이른 시각에 학교 주차장에 도착해 시동을 끄고 앉아 있는다. 어딘가에 차를 끌고 갈 용기는 없었고, 다시 왔을 때 내가 비집고 들어갈 공간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이었다. 집에서 가져온 책을 읽기도 했고, 그동안 소원했던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서로의 안부를 묻기도 했다. 냉장고가 비어갈 즈음에는 근처 하나로 마트에서 장을 보기도 했다.
면허를 딴 뒤 몇 년 동안, 그런 날들은 일 년에 열 번도 채 되지 않았다. 숫자로만 보면 아주 적은 횟수다. 그런데도 분명히 달라진 것이 있었다. 나는 더이상 ‘필요할 때 도망치는 사람’은 아니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면허증을 받았지만 도로연수가 필요했고, 이후 남편에게 여러번 운전을 권유받을 때마다 나는 핑계를 먼저 찾았다. 오늘은 피곤해서, 오늘은 날이 별로라서. 핑계는 늘 그럴듯했고, 덕분에 나는 꽤 오랫동안 운전대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 라이딩은 그런 핑계로 피해 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버스가 자주 다니지 않는 시골에서, 등하교는 생활이었다.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었고, 그 ‘누군가’가 내가 되는 날이 점점 늘어났다. 나는 그때마다 핑계는 넣어 두고 도망치지 않았다. 겁이 없어서가 아니라, 겁이 있는 상태로도 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느 날은 고속도로를 타게 되었다.
친정인 사천까지 가는 길이었지만, 왕복 다섯 시간 가까운 운전을 남편에게만 맡기기엔 마음이 걸렸다. 용기를 내어 보성휴게소까지 내가 하기로 했다. 속도계 숫자를 자주 확인하며, 앞차와의 간격을 넉넉하게 유지했다. 잘 달리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멈추지는 않고 있었다.
아이들 등하교 라이딩을 통해 이어진 생활 속 운전은 그렇게 나를 조금씩 바꾸어 놓았다. 필요한 순간에 용기를 내는 사람이 되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능숙하지 않아도, 해야 할 때 사라지지 않는 사람으로. 더이상 핑계를 찾지 않았다. 생활 운전은 나에게 잘하려 애쓰기보다, 피하지 않는 태도를 가르쳐 주었다. 빨리 가기보다, 끝까지 가는 것. 그렇게 쌓인 몇 번의 경험이 나를 이전보다 조금 더 믿을 수 있게 만들었다.
일 년에 열 번이면 어때.
그래도 나는 간다.
그리고 아마, 그걸로 충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