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현실적이고 다정한 연습장, 등하교 라이딩

3부. 생활운전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by 농부아내


농부가 되면 농사만 지으면 될 줄 알았다.

땅을 고르고, 씨를 뿌리고, 때를 기다리면 하루가 흘러갈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막상 농부가 되고 보니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새로운 농법을 배우기 위한 교육을 받으러 다녀야 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사업’이라는 이름의 일도 함께 감당해야 했다. 남편의 일은 늘어났고, 출장도 잦아졌다. 우리 생활의 변화는 자연스럽게, 예고 없이 내 몫의 운전을 늘려 놓았다.


아이들 등하교 라이딩을 내가 해야 한다는 말이 처음 나왔을 때, 나는 바로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동안 며칠을 머릿속에서 몇 번이나 같은 길을 되짚었다. 결국 우리는 라이딩 시작 2주 전부터 연습을 하기로 했다.


도로연수 중 남편이 자주 하던 말을 다시 꺼냈다.

길부터 익히고, 주차할 자리를 미리 생각해 두자고. 차를 세울 곳이 마땅치 않을 때는 어디쯤 세우는 게 좋은지, 그다음에는 어떻게 빠져나오면 되는지까지 하나하나 알려 주었다. 남편에게는 자연스러운 설명이었지만, 나에게는 문장마다 밑줄을 그어가며 외워야 할 낯선 언어 같았다.


등교 시간의 학교 정문은 늘 분주했다. 남편은 잠깐 정차해 아이들을 내려주곤 했지만, 내 실력으로는 그 틈에 끼어드는 게 불가능했다. 그래서 나는 다른 방법을 택했다. 학교 주차장으로 들어가 안전하게 아이들을 내려주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방식이었다. 문제는 시간이었는데, 아침 8시가 지나면 주차장이 통제되었기 때문에 등교 시간을 앞당기기로 했다.


첫 라이딩하는 날 아침, 온 가족이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남편은 트럭을 몰고 먼저 나섰고, 나는 아이들을 뒷좌석에 태운 채 학교로 향했다. 출근과는 무관한 삶을 살다 보니 이른 아침 도로는 한가할 줄 알았다. 예상과 달리 출근하는 차들이 많았다. 그 사이를, 긴장을 가득 싣고 내가 달리고 있었다.


아침 햇살과 함께 학교 주차장에 도착했다. 눈을 가늘게 뜬 채 남편이 알려준 대로 좌우를 몇 번이나 확인했다. 속도는 느렸지만 마음은 그보다 더 조심스러웠다. 주차장에 들어섰을 때 나는 이미 성공한 기분이었다. 무사히 도착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다.


“다녀오겠습니다”


차에서 내리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한동안 시동을 끄지 못했다. 두근거리는 심장과 떨리는 손이 천천히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나는 다시 그 길을 외우듯 달렸다.


집에 도착한 뒤에도 마음은 계속 학교 근처에 머물렀다. 시계를 자주 들여다봤고, 하교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머릿속에 다시 동선을 그렸다. 하교 시간 무렵 학교 주차장에는 노란 학원 차량들로 붐비기 때문에 나는 한 시간 일찍 시동을 걸었다. 시간이 남는 쪽이 언제나 마음이 조금 더 편했다.


학교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아침에 눈여겨 둔 자리가 비어 있었다. 그 사실 하나로 그날의 절반은 이미 잘 풀린 것 같았다. 차에서 내려 이어폰을 꽂고 학교 주변을 천천히 걸었다. 운동장에서는 수업이 한창이라 아이들 목소리가 들렸다. 남는 시간은 마트까지 이어졌고, 하교 후 배고프다며 찾을 간식도 함께 골랐다.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차에 올라탔다.

“엄마! 다녀왔습니다!”

그 한마디에 굳어 있던 어깨가 조금 풀렸다. 아이들에게 과자를 주고, 나는 숨을 크게 한 번 들이쉬었다. 심장은 여전히 빠르게 뛰고 있었지만, 이제는 출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차를 몰았다. 뒤차가 있어도 애써 신경 쓰지 않으려 했다. 아이들이 뒤에 타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더 조심스럽게 만들었다. 잘해야겠다는 마음보다, 무사히 가야겠다는 마음이 컸다.



남편의 일정이 바빠질수록 내가 운전대를 잡는 날도 늘어났다. 아직까지는 큰 사고 없이, 비교적 무사히 라이딩을 해내고 있다. 아이들 학교를 오가는 이 길은 어느새 내가 해남에서 유일하게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길이 되었다. 신기하게도 이 길에서는 차선 변경도 덜 무섭고, 속도 조절도 조금은 자연스러워졌다. 반복해서 다니다 보니, 길이 나를 받아주는 느낌이 들었다.


등하교 라이딩은 내게 가장 현실적인 운전 연습장이 되었다. 아직도 나는 차들이 나를 둘러싸는 상황이 무섭고 끼어드는 건 더 두렵다. 하지만 같은 길을 반복하며 나는 아주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아이들을 태우고 학교와 집을 오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오늘도 연습한다. 가장 현실적인 방식으로, 그리고 생각보다 다정한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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