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도로에서 멈추지는 마

3부. 생활운전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by 농부아내


운전면허증을 손에 쥔 뒤에도, 내가 운전대를 잡아야 할 이유는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남편의 어깨 위에 놓인 짐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끔 아이들 등원길을 알려 주겠다며 운전대를 잡는 날이 있었다. 그때마다 남편이 옆에서 인간 내비게이션으로 열일을 하곤 했다. 그래서 ‘과연 내가 운전면허증을 따야만 했었나’라는 의문이 들곤 했다. 나의 운전면허증도 장롱으로 들어가야 할 것만 같았다. 의문이 짙어질 무렵, 내가 운전대를 잡아야 하는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첫째가 설사와 감기로 힘들어했고, 병원에 가야 했다. 그 당시 아이들은 어린이집에 다니던 시절이라, 남편은 트럭으로 둘째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일을 보러 갔다. 평소라면 “조금 더 지켜볼까?”라며 시간을 벌었을지도 모르지만, 아이의 얼굴은 그 질문을 허락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운전석에 앉았다. 병원 가는 길도 남편이 조수석에 앉아 가르쳐 줘서 몇 번 가본 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날은 남편 없이, 아이를 태우고, 혼자서 병원까지 가야 하는 첫날이었다.

차에 오르기 전부터 마음은 분주했다. 아이가 아픈 것도 걱정이었지만 제일 두려웠던 것은 주차였다. 하얀색 네모 속에 차를 정확하게 집어넣지 못하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브레이크를 밟고 시동을 걸었다.


내비게이션을 켰다. 아는 길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혼자 운전석에 앉아 목적지를 입력하자 그 길은 조금 달라 보였다. 내가 운전석에 앉아도 남편과 함께 가던 같은 길이었지만, 이제는 내가 이 풍경을 책임지고 마주하고 있었다.


출발은 순조로웠다. 아이는 뒷좌석에서 축 늘어져 있었고, 나는 아이를 흔들리지 않게 데려가야 했다. 빠르게 가는 것보다 무사히 도착하고 싶었다. 남편이 아닌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길을 따라 천천히 달렸다.

“핑크선을 따라 진입하세요”


핑크선을 따라 진입은 했는데 들어가는 길이 두 군데다. 당황스러웠다. 지도를 보려고 운전대를 놓을 수는 없었다. 일단 첫 번째 길에서 차를 오른쪽으로 틀었다. 늘 그렇듯, 길을 잘못 들었다는 사실은 한참 뒤에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남편과 함께 병원에 갈 때 보였던 건물들이 보이지 않았고, 도로는 점점 낯설어졌다.

‘여기가 어디야? 어떡하지’


순간적으로 멈춰 설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차를 세우고, 숨을 고르고, 다시 생각해 볼까.


“절대 도로에서 멈추지는 마.”


남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여러 번 들었지만, 흘려들었던 말. 그런데 그날은 그 말이 정확한 무게로 가슴에 내려앉았다. 멈추지 말 것. 길을 잃어도, 방향이 틀려도, 일단 흐름 속에 있을 것. 그렇게 나는 알지도 못하는 길을 계속 천천히 달렸다.


내비게이션이 이내 다른 길을 제시했다. 화면 속 화살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음 선택지를 내놓았다. 그때 조금 안도했다. 아니, 아주 많이 안도했다. 바쁘게 움직이던 심장이 조금은 진정되었다.



저 멀리 익숙해 보이는 병원 주차장을 안내하는 화살표가 보였다. 근처에 다다를수록 안도감은 사라지고, 긴장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병원 주차장에 차가 많았다. 주차할 곳을 찾지 못해 한 바퀴를 돈 뒤에야 입구 근처의 빈자리가 보였다.


나름 주차를 한다고 했지만, 내려서 보니 선 하나를 바퀴 사이에 넣고 두 공간을 빌린 상태다. 하얀색 네모 테두리 두 개 가운데에 놓은 것도 아니고 어정쩡하게 놓인 차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니 웃음이 나왔다. 그렇다고 다시 시동을 걸어 주차할 수 있는 실력도 아니었다.


‘아, 모르겠다. 빨리 진료받고 가는 수밖에..’

잠든 아이를 깨우는데 손이 계속 떨렸다. 아이의 손을 잡고 병원 정문으로 향했다. 뒤돌아 보니 두 칸에 걸쳐 주차된 내 차가 눈에 바로 들어왔다. 부끄럽다는 생각보다 먼저 든 감정은 ‘도착했다’는 안도감이었다. 아이를 병원 앞에 데려왔다는 사실 하나로, 그날의 미션은 이미 절반 이상 끝난 셈이었다.


진료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은 병원에 올 때보다 수월했다. 나는 여전히 느린 속도로 운전했다. 병원 주차장을 나와서 또 한 번 길을 잃었다. 괜찮았다. 이제는 내비게이션만 있으면 또다시 길을 찾아주리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금 돌면 어때.


그날 나는 길을 헤맸고, 주차는 엉망이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남편 없이, 아이를 데리고 혼자 해냈다. 서투르고 돌아가더라도 어찌 되었든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것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이 정도면 고속도로를 달려도 괜찮겠다는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차올랐다. 주차도 제대로 못하는 초보 주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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