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브레이크를 밟고 시동을 건다
나는 사소한 일에도 마음이 한 박자 먼저 움직이는 사람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이미 대비부터 하고, 필요 없는 걱정을 예습하는 쪽에 가깝다. 세상 모든 걱정을 나 혼자 하는 듯 미간의 삼지창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운전을 시작하고 나서, 초보인 내가 무서워하게 된 것이 단속카메라였다는 사실이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남편에게 얹혀서 이동한 시간이 꽤 길다 보니 몇 번을 운전해도 머릿속에 지도가 좀처럼 그려지지 않는다. 남편이 조수석에 앉으면 인간 내비게이션이 된다. 남편없이 혼자 운전을 했다가 헤맨 적이 있어서 인간 내비게이션이 있든 없든 핸드폰의 지도 어플을 켠 채 운전을 한다.
“300m 앞 과속단속카메라가 있습니다”
300m가 어느 정도였는지 운전석에 앉으니 도통 모르겠다. 운전연습을 할 때는 거리 상관없이 "카메라"라는 말이 들리면 그때부터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힐끗힐끗 계기판을 봤다. 제한속도보다 1km, 혹은 2km 높은 숫자가 눈에 들어오면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괜찮을까, 이 정도도 찍힐까, 방금 전에 가속을 많이 했나. 제한속도를 유지하기 위해 브레이크를 일찍 밟았지만 너무 속도가 떨어져 다시 엑셀을 밟기도 했다. 핸드폰 화면에 빨간 불이 깜빡이면 내 심장도 함께 요동쳤다.
아직 카메라의 형체가 보이지 않아도 나는 속도를 줄이고 천천히 달린다. 카메라 근처에 가서는 속도를 줄이지 못할까 봐 미리 브레이크를 밟아 속도를 줄이는 내 운전에 남편이 브레이크를 건다.
“지금 아니야, 아직은 더 속도를 내도 돼~”
운전을 잘하는 남편이야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나를 생각했을 때 거의 급브레이크 수준으로 밟아야 속도가 줄어들 것 같아 입이 뾰로통해졌다. 그런 나를 보고 남편이 조금 더 가서 브레이크 밟지 말고 엑셀에서 발을 떼고 속도를 조절해 보라고 했다. 속도조절은 브레이크보단 엑셀로 하는 게 차에도 좋고, 운전할 때도 덜 피곤하다는 말이었다.
또다시 내비게이션에서 과속단속카메라가 있음을 알리는 말이 들렸다. 이제는 적당한 거리에서 엑셀에서 발을 떼고 속도를 줄였다. 그런데 남편이 예전과는 다른 말로 브레이크를 걸었다.
“옆 차를 봐. 다들 빨리 달리지?”
그랬다. 옆 차선의 차들은 생각보다 빠르게 지나갔다. 앞차도, 그 앞차도, 나처럼 잔뜩 긴장한 기색은 없었다. 그들은 단속카메라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남편은 속도만 보지 말고, 다른 차들을 보라고 했다. 도로에는 흐름이 있다고. 다른 차들의 속도에 맞춰 나도 속도를 올려 카메라를 지나쳤다. 또다시 심장이 두근두근. 카메라를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남편이 웃으며 말했다. ‘뻥카'였다고. 나는 괜히 멋쩍게 웃으며 숨을 내쉬었다.
나도 그런 운전을 하고 싶다.
앞차가 어떻게 움직일지, 옆 차선이 언제 비어질지, 신호가 바뀌기 직전의 공기를 느끼듯 몇 수 앞을 내다보며 운전하고 싶다. 센스 있게, 자연스럽게. 하지만 아직은 잘 모르겠다. 차가 많아지는 순간, 몸이 굳어지며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앞에 차, 뒤에 차, 옆에 차. 그 셋이 동시에 존재하면 내가 살아있음을 알려주려는 듯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좌회전 신호를 기다릴 때는 초록불이 켜질까 봐 긴장하고, 우회전 차로에서는 내가 지금 가도 되는지 안 되는지를 여러 번 다시 생각한다. 신호등은 늘 같은 자리에 있는데, 나는 매번 처음 보는 사람처럼 그것을 바라본다. 남편은 뒤차 신경 쓰지 말고 내 속도로 가라고 말하지만, 뒤에서 기다리는 차가 있으면 괜히 그 사람의 하루를 붙잡고 있는 기분이 든다. 미안한 마음에 서두르다가, 그러다 더 실수할 것 같았다.
결국 나는 천천히 간다. 빠르게 가는 것보다 느리게 가는 쪽이 덜 무섭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단속카메라가 무서운 게 아니라, 잘하고 싶은 마음이 두려운 건 아닐까. 실수하기 싫고, 괜히 폐 끼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이 나를 더 경직되게 만드는 건 아닐까.
아직 나는 도로의 언어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차들의 속도와 간격으로 주고받는 암묵적인 대화에 나는 한국말이 서툰 외국인 같다. 그래서 단속카메라 앞에서, 신호등 아래에서, 나는 자꾸만 멈칫한다.
아마 한동안은 단속카메라가 계속 무서울 것이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도로의 흐름을 읽고 뻥카를 알아채며 자연스럽게 운전하는 날이 오겠지. 그날이 올 때까지 나는 오늘도 법정속도로 달린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그래도 멈추지는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