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운전대를 그렇게 꽉 쥐었을까

2부. 브레이크를 밟고 시동을 건다

by 농부아내


차에 타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안전벨트를 매는 것이다. 운전석에 앉든, 뒷좌석에 앉든, 안전벨트는 생명줄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실제로 운전석에 앉아보니 안전벨트가 아니라 운전대가 오히려 생명줄처럼 느껴졌다.




방 2칸짜리 작은 전셋집에 살 때 남편은 게임회사에 다녔다. 남편이 자기 방을 갖게 되자 책상에 휠을 설치하고, 실제 엑셀과 브레이크가 되는 장치도 바닥에 놓았다. 세 대의 모니터로 운전게임을 즐기는 남편을 보니 재미있어 보였다. 그래서 나도 운전대를 잡고 자리에 앉았다. 레이싱 게임은 신났다. 하지만 가끔 운전대가 내 뜻대로 되지 않고 멋대로 돌아가버려서 엄청 힘을 줘서 쥐고 운전을 해야 했다.


아마 그 기억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운전면허학원을 다닐 때도, 남편에게 도로연수를 받을 때도 나는 운전대를 꽉 잡고 있었다. 정말로 ‘꽉’이었다. 원을 가로지르는 바의 위쪽으로 양손을 올리고 엄지가 안쪽으로 향하게 한 뒤 힘을 잔뜩 주고 운전을 했다. 직선도로에 들어서면 남편은 "여기서는 그렇게 꽉 잡을 필요 없어. 그냥 운전대에 손만 얹고 있어도 돼."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은 좀처럼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운전대를 놓는 순간, 게임에서처럼 차가 멋대로 다른 방향으로 튀어가 부딪힐 것 같았다.


운전면허를 따기로 마음먹은 뒤 한 번도 운전대가 제멋대로 돌아갔던 적이 없었는데 왜 그랬을까. 아마도 그건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아직 익숙하지 않은 속도, 끊임없이 바뀌는 도로 상황,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운전하고 있다’는 사실이 주는 압박감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 모든 것을 견디기 위해 운전대를 붙잡고 있는 힘만큼 우리의 안전이 지켜지리라 믿었던 것이 아닐까.

직선코스에서조차 손에 힘을 풀지 못하는 나를 보며 남편은 다시 말했다. “차가 알아서 가는 구간이야. 어깨 힘 풀고~ 그렇게 꽉 잡고 있으면 더 피곤해.” 그 말이 맞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힘을 빼면, 그동안 억지로 눌러 두었던 두려움이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남편과 함께 도로에서 보내는 시간은 그렇게 몸과 마음이 동시에 긴장하는 시간이었다. 눈은 앞을 보고 있었지만, 온 신경은 손에 쏠려 있었다. 운전대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아니 정확히 말하면 ‘놓치고 싶지 않아서’ 나는 계속 힘을 주었다. 남편의 말투가 빨라질수록, 차선이 복잡해질수록, 내 손은 더 굳게 운전대를 감쌌다. 손에서 땀이 흘러 미끄러워지고, 손목이 뻐근해도 그만두지 않았다.




아이들 첫 픽업을 무사히 마치고 며칠 뒤 손이 이상했다. 엄지손가락 아래쪽이 가려웠다. 피부가 가려운 상황이어서 가정의학과에 갔다. 습진 같다며 약과 연고를 처방받았다. 가려움은 가라앉았는데 계속 욱신거렸고, 붓는 느낌이 들었다. 통증이 점점 심해져 이번에는 정형외과를 방문했다. 의사는 내 손을 살펴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최근에 손을 많이 쓰셨나요?”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운전 연습을 좀 했어요.”


결과는 과도한 사용으로 인한 염증이었다. 반깁스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당황스러웠다. 운전대를 너무 꽉 잡아서 깁스를 하다니.. 이 얼마나 황당하고 우스운 일인가. 부끄러워서 어디 말도 못 할 지경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조수석에 앉아 반깁스 한 손을 내려다보았다. 이제 며칠간은 운전대를 잡을 수도 없었다. 운전하는 남편을 바라보며 슬며시 미소 지었다. 역시 남이 해 주는 운전이 제일이었다.




게임과 현실은 다른데 나는 왜 그렇게까지 생명줄인 듯 운전대를 놓지 않으려 했을까. 안전벨트는 분명히 매고 있었는데, 왜 생명줄을 다른 곳에서 찾고 있었을까.

운전대는 ‘내가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물건이었다. 방향도, 속도도, 멈추는 시점도 모두 내 손에 달려 있다는 확신이자 불안이었다. 어쩌면 그 불안감을 다스리기 위해 나는 안전벨트 대신 운전대를 생명줄처럼 붙잡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귀농을 하고 밤호박 씨앗을 뿌리고, 농사를 처음 시작했을 때도 그랬다. 모든 걸 내가 쥐고 흔들 수 있을 것처럼 애썼고, 날씨가 조금만 변해도 불안해했다. 더군다나 하우스에서 키우는 작물이니 더 통제가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그런 오만한 생각을 내려놓기까지 10년의 세월이 걸렸다. 자연이 흘러가는 대로, 바람이 부는 대로 따라가면 되는 게 농사였다. 운전도 마찬가지였다. 도로에는 규칙이 있고, 신호가 있고, 서로 양보하며 움직이는 흐름이 있다. 그 흐름 속에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나를 지켜주는 것은 내가 쥔 운전대의 힘이 아니라 이미 매어 둔 안전벨트였다.


깁스를 풀고 한동안 운전대를 잡지 않았다. 농사일이 바빠지기도 했지만 내가 운전을 해야 할 일이 많이 없었다. 그러다 다시 운전석에 앉았을 때, 나는 어찌했을까. 습관이란 무서운 것이었다. 운전대를 잡은 두 손엔 힘이 잔뜩 들어갔다.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다. 내가 운전대를 꽉 쥐고 있다는 걸 인지한 순간, 슬며시 힘을 빼고 어깨를 내렸다. 불안이 올라올 때마다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잊지 말자.

생명줄은 안전벨트다.

운전대는 방향을 잡는 도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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