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 도로연수받는 건 아니라면서요?

2부. 브레이크를 밟고 시동을 건다

by 농부아내


내가 운전면허를 따다니..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기에 턱걸이 합격이라도 그 기쁨은 뭐라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기쁨의 순간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았다. 도로 위에서 프리패스권일 것 같았던 운전면허증은 내게 또 다른 시련을 안겨 주었다. 여전히 혼자 도로에 나갈 자신이 없었고, 결국 다음 단계인 ‘도로연수’가 필요했다.

전문적으로 도로연수를 해 주는 곳이 있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굳이 돈을 들여야 하나?’라는 생각이 먼저였다. 남편은 도로연수를 해 주겠다며 나에게 강요해서 운전대를 잡게 하지 않았다. 그 모든 과정들은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운전면허증을 지갑에 넣은 뒤부터 한 명의 어른으로 성장을 마친 듯 고무된 내가 만든 결과였다.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아이가 뛰고 싶어서 빠른 걸음을 걷듯 마당에 주차된 ‘레이’를 보고 있으니 운전이 하고 싶어졌다. 도로연수를 어찌해야 할지 몰라 미루다가 남편에게 도와달라고 했다. 그날 남편은 조수석에 앉았고, 나는 운전석에 앉았다. 시동을 거는 순간부터 공기가 달라졌다. 시험 때와는 또 다른 긴장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남편의 도로연수는 감정 연수에 가깝다는 사실을 해보고 나서야 알았다.




처음엔 괜찮았다. 아주 짧은 거리, 마을을 한 바퀴 돌아 다시 집 앞으로 오는 길이었다. 남편은 차분하게 말했다. “천천히 가도 돼.” “저기 앞까지 살펴야 돼” 사거리를 지나 좌회전을 해 2차선으로 진입했다. 코너를 돌고 속도를 올려 빠르게 도로에 진입해야 하는데 멈췄다가 출발하는 내 운전을 보고 남편의 목소리가 커졌다. 또 다른 마을길에 들어서는 코너는 급격하게 꺾이는 곳이었다. 운전대를 제법 많이 돌려야 했으나 역시나 미숙했다. 마을을 계속 돌며 코너링을 연습하면 어딜 가든 수월할 거라며 계속 연습하라고 남편이 말했다. 마음이 내킬 때마다 혹은 지루해하는 아이를 뒤에 태우고 마을을 계속 돌았다. 오가는 차가 많지 않아 다행이었다.

마을길은 손쉽게 다닐 수 있게 되었을 무렵, 남편이 바빠 아이들 픽업이 힘든 때가 있었다. 그때 남편은 학교까지 가보자며, 내가 픽업하는 단 하루를 위해 2주 전부터 연습이 시작되었다. 마을에서 나가는 길은 몇 번이나 연습해서 순조로웠다. 읍으로 들어가는 진입로에 들어서자 남편의 입이 바빠졌다.

신호 앞에서 브레이크를 세게 밟아 흔들리는 남편의 몸에 내가 먼저 몸이 굳었다. “사이드 미러만 보고 판단하지 말고, 고개를 확실히 돌려서 뒤차를 확인해야지” “지금 가야지”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손과 발이 따라주지 않았다. 그럴수록 남편의 말은 조금씩 빨라졌고, 내 속도는 더 느려졌다. “거기서 왜 멈춰.” “아니, 그렇게 가면 안 되지.” 지극히 운전에 관한 말이었는데, 나는 자꾸 나라는 사람 전체가 평가받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 하려고 했어.”

“너도 초보시절이 있었잖아. 좀 이해해 줘~!”


도로연수 중 쏟아붓는 남편의 말에 내가 하고 싶었던 말들이다. 남편의 말들은 내가 운전을 자연스럽게 하기 위해선 필요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말들은 감정적으로 와닿아 마음 속에 콕콕 박혔고, 차 안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빠져나갈 곳이 없으니 더 쉽게 부딪혔다. 도로 위에서는 차와 차 사이의 간격을 재야 했고, 차 안에서는 마음과 마음 사이의 거리를 가늠해야 했다.


내가 픽업해야 할 날로부터 며칠 전, 실전처럼 아이들까지 뒤에 태운 채 연습을 나갔다. 남편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질 때마다 백미러로 아이들 얼굴을 살폈다. 괜히 내가 더 움츠러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 안에는 침묵이 흘렀다. 결국 그날은 제대로 연습이 되지 않았다. 이후로 연습할 때는 아이들을 태우지 않았다. 남편과 둘만 나갔다 오면, 아이들은 물었다.


“엄마, 또 혼났어요?”




해마다 같은 밭을 일궈도, 처음 농사를 지을 때와 아홉 해째 농사를 짓는 지금의 감각은 다르다. 돌이켜보면 남편이 일부러 화를 낸 건 아니었다. 남편은 그저 ‘운전을 알려주려고’ 했고, 나는 ‘운전을 배우려고’ 했을 뿐이다. 남편은 이미 몸에 밴 감각으로 말했고, 나는 아직 감각이 생기지 않은 상태였다. 그 간극이 생각보다 컸다.


도로연수는 그렇게 조금씩 서로를 시험하는 시간이 되었다. 남편은 한 번도 ‘왜 이렇게 못해?’ 혹은 ‘그것도 못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어쩌면 초보인 나를 배려해 운전에 필요한 말들만 했을 뿐인데 빨라지는 말과 높아진 톤이 화살이 되어 박혔다.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지만 운전 중이라 그럴 수도 없었다.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고 집 앞까지 왔다.


어느 날은 연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남편이 말했다. “오늘은 어제보다 훨씬 나았어.” 그 한마디에 괜히 마음이 풀렸다. 도로주행 시험의 72점처럼, 완벽하진 않아도 ‘전보다 나아졌다는 말’은 충분했다. 그제야 알았다. 우리의 도로연수 목적은 단순히 운전을 잘하는 게 아니라 겁이 나도 운전대를 놓지 않고 도로를 벗어나지 않는 연습, 그리고 서로의 심사위원이 되지 않으려 애쓰는 연습이라는 걸.


지금도 나는 운전이 능숙하다고 말하긴 어렵다. 여전히 주차는 긴장되고, 낯선 길은 숨이 가빠진다. 하지만 남편에게 도로연수를 받으며 나는 운전만 배운 게 아니었다. 서로의 발작버튼이 무엇인지, 그리고 가까운 사람과 같은 방향을 보며 가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함께 배웠다.


이제 막 운전면허를 딴 누군가가

“남편에게 도로연수받아도 괜찮아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연수는 받을 수 있어요.

다만, 그날 집에 돌아와서

마음까지 무사하리란 보장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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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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