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시작은 늘 작은 용기에서 온다
농사는 수확철이 되어야 결과를 안다. 싹이 트고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도, 모든 열매가 같은 결말을 맞는 건 아니다. 끝까지 가봐야 안다는 점에서 운전면허시험과도 닮았다. 필기시험을 한 번에 합격하고, 일사천리로 운전면허를 딸 수 있을 줄 알았다. 기능시험을 두 번 만에 통과한 뒤, 나는 다시 조급해졌다. 봄 농사가 시작되면 바빠지기 때문에 도로주행을 한 번에 합격해야했다.
내 손에 들려진 ‘연습운전면허'를 보고 있자니 비로소 ‘운전’이라는 단어가 현실적인 얼굴로 다가왔다. 장내에서 정해진 동작을 외우듯 움직이던 때와는 달리, 도로주행은 말 그대로 길 위로 나가는 일이었다. 신호도 있고, 다른 차도 있고, 무엇보다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려야 했다. 이제는 순서를 외우는 게 아니라 상황에 따라 판단을 해야 했다.
도로주행 두 번째 수업이 있던 날, 선생님은 주행코스가 아닌 곳으로 나를 이끌었다. 처음 도로주행을 시작하면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다며, 막힘없는 도로에서 쌩쌩 달려보면 생각이 달라진다고 말씀하셨다. 방향을 짚어주며 나를 계속 앞으로 보냈다. 교차로를 건너고, 어느새 멈추지 않고 달릴 수 있는 긴 도로에 들어섰다. 긴장 때문에 어깨가 굳어 있었는데, 차가 흐름을 타듯 달리기 시작하자 마음도 조금씩 풀렸다. 선생님은 속도를 조금 더 내보라고 했다.
속도를 올리자 앙 다물고 있던 입술이 풀어지고 입꼬리가 올라갔다. 신호도 없고, 주변에 차도 없으니 시야가 넓어지고, 달리는 재미가 있었다. 브레이크에만 신경 쓰던 발이 가속페달에서 놀고 있었다. 신나게 가속을 하며 달리고 있으니 선생님이 뜻밖의 말을 했다. 레이서 기질이 있는 것 같다고. 밴댕이 소갈딱지라는 말을 자주 듣는 내게 칭찬인 듯 농담 같은 선생님의 말은 운전을 할 때마다 떠올랐다.
도로주행은 A, B코스가 있었다. 수업 시간마다 두 코스를 번갈아 연습했다. 코스가 바뀔 때마다 풍경도 달라졌고, 긴장 포인트도 달랐다. 어느 날은 빨간 신호등에 자주 걸려 브레이크가 열일을 했고, 또 어떤 날은 차선 변경이 잦았다. 그날그날의 도로가 나를 시험하는 것 같았다. 익숙해질 만하면 새로운 상황이 튀어나왔고, 나는 매번 마음속으로 외쳤다.
‘나한테 왜 이래.’
좌회전을 하고 4차선 도로에 진입했을 때였다.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어느 쪽 차선으로 가야 하지? 오른쪽이었나, 왼쪽이었나. 결국 참지 못하고 옆에 앉은 선생님에게 물었다. “선생님, 여기서는 어느 쪽으로 가야 해요?” 그때 선생님이 나를 보던 눈빛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놀람과 어이없음이 섞인 표정이었다. 선생님의 눈이 ‘이걸 지금 물어본다고?’라고 말하는 듯 했다.
도로주행 시험이 있던 날 아침은 손이 시릴 정도로 쌀쌀했다. 추워서 떨리는 건지 긴장 때문에 떨리는 건지 헷갈렸다. 긴장감을 떨치기 위해 껌을 씹었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으니 내 번호가 호명되었고, 처음엔 참관자로 뒷좌석에 탔다. 너무 부드럽게 운전을 하셔서 수험생이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내 차례가 되었다.
익숙한 선생님이 아닌 심사위원이 옆에 앉아 있고, 뒷자리엔 모르는 사람까지 있으니 심장이 터질 듯했다. 껌도 소용이 없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할 순 없었다. 안전벨트를 매고,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나는 도로로 나갔다. 출발부터 불안했다. 학원에서 나가는 내리막에서 연신 브레이크를 밟았다. 선생님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A 코스인지 B 코스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연습할 때 법원 앞쪽으로 가는 코스가 어려웠었다. 다행히 쉬운 코스가 선택되었고 신호를 잘 살피고, 방향지시등도 놓치지 않았다. 그런데 교통신호등을 지킨 것과 달리 차 안에 타고 있던 심사위원의 몸이 춤을 추듯 앞뒤로 흔들렸다.
그 순간 머릿속이 빠르게 결론에 도달했다. ‘아, 떨어졌구나.’ 분명히 연습할 때 선생님께서 심사위원의 몸이 심하게 흔들리지만 않으면 웬만하면 합격할 수 있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감점이 쌓이고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시험은 끝까지 치러야 했다. 심사위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오히려 더 무서웠다.
간신히 교육장으로 돌아왔을 때, 운전대를 어찌나 꽉 쥐었던지 운전대에는 내 손모양이 땀으로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 잘 봤다는 느낌도, 완전히 망쳤다는 확신도 없었다. 그냥 ‘무사히 돌아오긴 했다’는 정도였다. 잠시 후 점수를 불러주었다. 72점. 합격 기준은 70점이었다.
순간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다. 턱걸이 합격이었다.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붙을 수도 있구나. 잘해서 붙었다기보다는, 간신히 미끄러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간신히’가 나에게는 꽤 큰 의미로 남았다. 한 번에 완벽하지 않아도, 턱걸이여도, 간절히 원하던 ‘운전면허증’을 받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남편이 운전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등받이에 기대 창밖을 보고 있으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기능시험에서 한 번 떨어졌으면서 도로주행에선 과연 백 점을 기대했던 것일까. 지금까지 나는 늘 이런 식으로 통과해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유 있게 합격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기준선을 간신히 넘기며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게 아닐까. 기진맥진한 내게 중요한 건 몇 점으로 통과했느냐가 아니라, 겁이 나도 끝까지 운전대를 놓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