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시작은 늘 작은 용기에서 온다
기능시험에 떨어지고 나서, 한 번에 잘 풀릴 거라 기대했던 마음만 괜히 민망해졌고, ‘내가 그럼 그렇지’라는 생각에 살짝 가라앉았다. 그래도 무엇을 하든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 하는 성격이라 포기해야겠다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봄 농사 준비 시즌도 다가오고 있어 울적할 여유도 없었다.
물론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다. 재시험을 보려면 학원비를 추가로 내야 했다. 의기양양하던 내가 한풀 꺾인 게 안타까웠는지 추가비용도 남편이 시원하게 결제해 주었다. 남편에게 미안했지만, 그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택시비를 계산하며 마음속 시동이 걸렸던 그날 이후로, 나는 ‘돈’보다 ‘미루는 선택’이 더 비싸다는 걸 알았으니까. 그래서 별다른 망설임 없이 포기가 아닌 재도전을 선택했다. 이번에는 끝내고 싶었다.
시험 일정은 빠듯했다. 수능이 끝나고 학원생이 많아져 여유롭게 시간을 잡을 수도 없었다. 3번 정도 연습할 시간만 있었다. 부족한 연습시간표를 받고 불안했다. 하지만 두 번째 도전하는 마음은 첫 번째와는 당연히 달랐다. 여전히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긴장은 됐지만, 공포는 확실히 줄어 있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이미 알고 있었고, 어디에서 흔들릴 수 있는지도 대충은 짐작할 수 있었다. 선생님의 지시를 기다리며 눈치를 보던 처음과 달리, 이번에는 아주 조금 여유가 생겼다.
첫째가 훌라후프를 선물 받고 처음으로 돌려보던 날, 뜻대로 되지 않아 울음을 터뜨렸던 적이 있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하지만, 기능시험 한 번에 통과하신 분들은 존경스럽다), 태어나자마자 걷는 사람은 없다며 아이를 다독였다. 재시험이 있던 날, 시험장에 들어서며 나는 아이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고, 두 번째니까 떨지 말고 연습대로만 하자고 속삭였다.
역시나 시험은 시험이었다. 두 번째니까 떨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고, 다행히 심장이 터질 듯 나를 압도하는 떨림은 아니었다. 차에 오르며 나는 마음속으로 같은 말을 반복했다. 이번엔 서두르지 말자. 방향지시등은, 제때 켜면 된다. 시동을 걸며 심호흡을 한 번 했다. 귀에 익은 엔진 소리가 경쾌했다.
오르막에서 잠시 정지했을 때도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여기서 실수하면 끝인데’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을 텐데, 그날은 ‘여긴 연습 때도 잘했던 곳’이라는 기억이 앞섰다.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고 ‘이 정도는 껌이지’라는 생각으로 천천히 출발했다. 운전대만 잡으면 벌벌 떨던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 씁쓸하면서도 조금은 든든했다.
직각주차 구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가장 무서웠던 코스였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선생님이 반복해서 강조하던 지점을 떠올리며 차분하게 움직였다. 나무와 어깨를 맞추고, 운전대를 돌리고, 멈추고, 다시 풀고. 예전처럼 머릿속이 하얘지지는 않았다. 그동안의 연습이 헛되지 않았는지 몸이 기억하고 있는 듯 첫 번째 기능시험 때보다는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다.
마지막 코스로 들어서며 방향지시등을 켰다. 이번에는 서두르지 않았다. 코너를 도는 타이밍을 눈으로 확인하고, 소리를 듣고, 꺼지지 않았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했다. 운전대를 돌리며 괜히 한 박자 더 여유를 두었다. 한 번 미끄러진 경험이, 적지만 큰 여유로움이 되어 돌아왔다. 그렇게 마지막 주차를 마치고 나니 안도감이 들었다. 결과를 듣기도 전에, 이번엔 다르게 지나왔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번 탈락한 뒤 받은 합격이 주는 기쁨은 컸다. 시험 도중 중간에 멈춰 있던 트럭을 보고 ‘또 탈락하면 어쩌지’라며 잠깐 두려움이 몰려왔었다. 조급증이 튀어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 나를 다스렸던 순간도 떠올랐다. 그런 순간들을 지나와서 그런지 나 자신이 더 뿌듯했다. 입꼬리가 올라가 내려오지 않을 정도로 남편의 축하를 받았지만 시험이 끝났다는 생각에 몸에 들어가 있던 힘이 풀리며 어깨가 내려갔다.
인생도 이렇게 다시 해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 번의 실수로 끝나지 않고, 이유를 알고, 연습하고, 다시 시도할 수 있다면 말이다. 물론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안다. 하지만 적어도 마음만큼은 실패했다고 해서 나를 단정 짓지 않고, 실수했다고 해서 가능성을 접지 말자며 다짐했다.
그렇게 그날의 합격은 완벽함을 추구하던 내 태도에서 나사를 푸는 계기가 되었다. 서두르지 않는 법, 실수를 인정하는 법, 그리고 멈췄다가도 다시 출발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하루였다. 아직 도로 위로 나갈 준비가 완전히 끝난 건 아니지만, 적어도 시동이 꺼졌을 때 다시 거는 법만큼은 몸에 남았다.
그렇게 나는,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출발하는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