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시험, 운전대를 돌리면 방향지시등은 꺼진다

1부. 시작은 늘 작은 용기에서 온다

by 농부아내


필기시험을 치르기 전 운전은 ‘못 할 것 같아서 안 하는 일’이었다면, 통과 후에는 ‘해보긴 해야 하는 일’이 되어 있었다. ‘합격’이라는 단어가 운전대 앞의 나를 실제보다 조금 커 보이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아직 아무것도 제대로 해내지 않았으면서, 나는 벌써 한 단계를 건너온 사람처럼 느끼고 있었다.


운전학원 접수하던 날, 신청서의 종별 선택란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1종에 체크했다. 시골에서는 1종이 더 쓸모 있다는 말을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트럭, 트랙터, 언젠가 닥칠지도 모를 상황들. 아직 운전대를 잡아본 적도 없는 사람이 ‘언젠가’를 먼저 떠올린 셈이다. 게다가 내가 아는 몇몇 지인들은 이미 1종 면허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해냈다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도 슬며시 끼어들었다.

하지만 운전대를 잡기 전, 학원에서 설명을 듣다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클러치, 기어, 탈락 사유, 출발 요령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설명이 끝날 즈음에는 내가 나 자신을 과대평가했다는 생각이 분명해졌다. 조심스럽게 신청서를 다시 고칠 수 있냐고 물었고, 그 자리에서 2종으로 변경했다. 한 번에 끝내야 한다는 말로 스스로를 설득했지만, 사실은 지금의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택을 한 것이었다.


처음 운전석에 앉았던 날을 지금도 기억한다. 시트에 몸을 맞추는 것부터가 어색했고, 발은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허둥거렸다. 나이가 지긋하신 선생님은 차분한 목소리로 지시를 했다. “브레이크 밟고요. 시동 걸고요. 이제 천천히 출발하세요.” 잠깐 멈칫했다. 브레이크는 멈추는 건데, 나는 지금 출발해야 하는데 왜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지? 질문은 떠올랐지만 입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지금은 이해보다 통과가 먼저라고 생각했다. 원리를 아는 건 나중 문제였다. 나는 선생님의 말을 정답처럼 받아들이며 순서를 외우듯 따라 했다.

기능시험 연습에서 가장 긴장되었던 건 직각주차였다. 선생님도 이 구간에서 많이 탈락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공식을 외우는 데 집중했다. 오른쪽에 보이는 나무와 내 어깨의 위치, 운전대를 몇 바퀴 돌리고 언제 풀어야 하는지, 차를 반듯하게 만든 뒤 후진하는 타이밍까지. 밭일을 하다가도, 저녁을 준비하면서도 머릿속에서는 주차 연습이 반복 재생됐다.


기능시험 코스는 늘 같은 순서로 반복되었고, 나는 그 순서를 몸에 익히려고 애썼다. 방향지시등은 언제 켜고, 정지는 어디서 하고, 가속은 어느 정도로 해야 하는지. 이해라기보다는 암기에 가까운 연습이었다. 며칠 연습을 반복하자 선생님은 뜻밖의 말을 건넸다. 운전 감이 있다고, 생각보다 잘한다고 했다. 그 말 한마디에 어깨가 괜히 으쓱해졌다. 여전히 무섭고 긴장되는 운전이었지만, 나도 모르게 ‘어쩌면 이것도 한 번에 끝날지 모르겠다’는 기대가 고개를 들었다. 필기시험을 한 번에 붙은 기억이 그 기대를 더 키웠다.


기능시험 당일, 아이들과 남편의 응원을 받고 시험장에 들어섰다. 대기하는 동안 머릿속에서는 계속 순서가 재생되었다. 연습 때처럼만 하면 된다고, 순서만 틀리지 않으면 된다고 다독였다. 시험은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었다. 출발은 무난했고, 걱정하던 직각주차 구간에서도 시간 안에 무난하게 마무리를 한 듯했다. ‘이 정도면 괜찮은데’라는 생각이 들 무렵, 마지막 골인 지점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마음이 급해졌다. 끝이 보이자 속도가 붙었다. 나는 좌회전을 앞두고 방향지시등을 조금 일찍 켰다. 그리고 운전대를 돌리는 순간, 딸깍거리던 소리가 멈췄다. 방향지시등이 꺼졌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머릿속이 하얘졌다. 왜 소리가 안 나지, 하는 생각만 스쳤다. 다시 켜야겠다는 생각은 못했다. 이미 다음 동작으로 넘어가야 한다는 압박이 나를 재촉하고 있었다. 그렇게 몇 초가 흘렀고, 그 몇 초로 시험은 끝났다.

차를 세우고 내렸을 때, 탈락이라는 말은 생각보다 담담하게 들렸다. 그 자리에서는 이유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연습대로 했는데, 왜일까. 마지막 방향지시등만 통과했더라면 간신히 합격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너무 이르게 켠 지시등이 코너를 도는 순간 꺼졌고, 나는 그걸 다시 켜지 않은 채로 골인해 버렸다. 연습 중에도 비슷한 상황은 몇 번 있었던 것 같다. 다만 그때는 선생님이 옆에서 다시 켜라고 알려 주셨다.


조바심, 융통성 없음, 빨리 끝내고 싶어 하는 성격. 그 모든 게 방향지시등 하나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물론 다른 구간에서 실수도 있었겠지만 마지막의 들리지 않던 소리가 탈락이라고 확실하게 내게 얘기한 듯했다. 다시 켜면 될 일을, 나는 놓쳤다. 몰랐다고 말할 수도 있었지만, 사실은 너무 서둘렀다는 쪽이 더 정확하다.

기능시험 탈락은 나를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필기시험 합격으로 생겼던 작은 자신감은 잠시 숨을 고르듯 가라앉았다. 다음에는 무엇을 조심해야 할지도 분명해졌다. 운전은 기술뿐만 아니라 태도도 중요하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그대로 드러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운전대를 돌리면 방향지시등은 꺼진다.

아주 단순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너무 서두르면 가장 기본적인 것도 놓친다는 사실이었다. 기능시험은 그렇게 내 성격을 먼저 시험하고 있었고, 어쩌면 진짜 연습은 그때부터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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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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