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브레이크를 밟고 시동을 건다
깁스를 풀고 나서 운전이 하기 싫어졌다. 다행히 나를 배려한 남편 덕분에 운전대를 잡을 일은 없었다. 하지만 농사나 남편의 일은 날씨 같았다. 매일 따사로운 햇살만 비추던 하늘에 먹구름이 갑자기 드리웠다. 또다시 내가 아이들 픽업을 해야 했다. 하루만 운전대를 잡으면 되는 일이지만, 엄청난 두려움에 며칠 전부터 연습을 시작했다.
시작은 역시나 다시 마을을 도는 일이었다. 읍으로 나갈 용기는 없었고, 일단 다시 운전대에 익숙해지는 게 먼저였기 때문이었다. 익숙한 길, 매일 보던 풍경 안에서 시작한 연습은 순탄했다. 신호도 없고 차량통행도 많지 않아 초보인 내게는 ‘운전’이라는 감을 살리기에 적당했다. 집을 나서 마을을 한 바퀴 돌고, 코너를 천천히 꺾고, 다시 집 앞까지 오는 짧은 연습.
코너 회전은 여전히 어렵게 느껴졌다. 운전대를 어느 정도까지 돌려야 하고 언제 풀어야 하는지, 언제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고 액셀을 밟아야 하는지. 불안해도 운전대를 놓지 않고, 어떻게든 집 앞까지는 왔다. 몸이 기억해 주기를 바라면서 도로를 익히고 마을을 자주 돌았다.
연습의 마지막은 늘 주차였다. 남편은 마당에 주차했다. 차의 엉덩이를 대문 사이로 밀어 넣어 마당 한가운데 정확하게 주차했다. 내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라, 나는 대문 옆 벽 근처에 주차했다. 공간도 널찍해서 천천히 차 머리를 밀어 넣어 주차를 했다.
운전연습을 하다 보면, 지나가는 차가 있어도 겁내지 않고 내 갈 길만 운전해서 가고, 코너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돌게 되는 그런 날이 있다. 그날이 그랬다. 집에서 심심해하던 둘째를 태우고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브레이크 밟는 힘 조절도 가볍게 되어 아이의 몸도 안정감이 있었고, 코너도 가볍게 돌았다. 모든 상황이 부드럽게 흘러가니 남편처럼 마당에 주차를 해보고 싶었다.
학원에서 배운 공식은 잊어버리고 내 마음대로 후진 기어를 넣고, 거울을 번갈아 보며 천천히 들어갔다. 운전대를 요리조리 돌리니 차가 그대로 마당으로 들어갔다. 신기하게도 그날은 한 번에 들어갔다.
‘우와~~’ 마음속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차에서 내려 주변을 한 번 더 둘러봤다. 살짝 빨랫줄과 거리가 가깝긴 했지만 차에는 아무 문제없었다. '웬일이야~ 웬일이야~'를 외치며 기쁨의 오두방정 발걸음으로 집에 갔다. 그날 나는 오랜만에 스스로에게 합격점을 주었다. 후진주차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각보다 크게 부풀어 올랐다.
며칠 뒤, 이번에도 행운의 여신 같은 둘째를 태워 운전연습을 나갔다. 마을을 돌면서 마당주차를 할까, 담벼락 주차를 할까 고민했다. 한번의 성공으로 자신감이 차올라 마음이 마당주차로 기울었다. 마을을 깔끔하게 한 바퀴 돌고 후진으로 대문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사이드미러로 보이는 기둥의 위치를 몇 번이나 확인하며, 나는 숨을 고르고 천천히 차를 움직였다. 그런데 갑자기 뿌지직하는 소리가 났다. 아이는 꺅~ 소리를 질렀고 나는 얼어붙은 채로 차를 멈췄다. 급하게 밟은 브레이크에 아이의 몸이 앞뒤로 흔들렸다.
‘뭐지?’
순간 떠오른 건 상하수도 뚜껑이었다. 대문 기둥 앞에 있던 그 둥근 철제 뚜껑. 아, 그걸 밟았나 보다. 괜히 놀랐네, 하고 스스로를 다독이려는 찰나, 눈앞의 대문 기둥이 유난히 가까워 보였다. 이대로 더 들어가면 긁을 것 같았다. 나는 그대로 다시 조심스럽게 차를 빼서 집 앞에 주차했다. 차에서 내려 살펴봤지만, 다행히 겉으로는 긁힌 곳이 없어 보였다.
저녁에 남편에게 뿌지직 소리를 들었단 말을 하니 바로 차 상태를 살피러 나갔다. 담벼락에 세워 둔 차를 남편이 마당으로 옮겼다. 집으로 들어온 남편은 “차 봤어?”하고 차갑게 물었다. 괜찮던데..라는 말만 하며 마당에 덩그러니 있는 차를 살폈다. 나를 따라 나온 남편은 차 앞쪽을 가리켰다. 눈썰미가 부족한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나 보다. 앞쪽 펜더가 벌어져 덜렁거리고 있었다. 뿌지직 소리는 상하수도 뚜껑이 아니라, 내가 대문 기둥을 지나가며 긁은 소리였다.
대문 기둥은 도로 위의 쌩쌩 달리는 자동차도 아니었고, 갑자기 튀어나오는 사람도 아니었다. 묵묵히 제 역할을 하며 가만히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사랑하는 연인을 발견하고 반가움에 달려가듯, 내가 대문 기둥 쪽으로 달려들었다. 큰 사고가 아니어서 다친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라는 안도감과 수리비에 대한 자책이 동시에 밀려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역시 나는 아직 안 된다는 마음이 제일 컸다.
그날 이후 주차는 다시 두려움이 되었다. 대문 앞에만 서면 몸이 먼저 굳었다. 한 번 생긴 두려움은 생각보다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성공했던 기억보다, 실패의 순간이 훨씬 선명하게 남았다. ‘할 수 있다’는 마음은 한 번의 성공으로 만들어지지 않지만, ‘하면 안 된다’는 확신은 한 번의 실패로도 충분히 만들어졌다.
대문 기둥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오늘도, 내일도, 아마 이사 가기 전까지는 그럴 것이다. 또다시 운전대를 잡으면 기둥에 긁을까 봐 주차는 담벼락 옆에 하고 있다. 하지만 마당 주차에 대한 도전을 완전히 멈추지는 않았다. 넓은 주차장에서 후진 주차 연습을 하고, 차의 움직임을 익히고 있는 중이다. 후진 주차를 성공적으로 하게 되는 날, 나는 다시 마당 주차에 도전할 생각이다.
나도 언젠가는,
그 기둥 옆을 아무 일 없다는 듯 지나쳐 마당에 주차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