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브레이크를 밟고 시동을 건다
“당신이 운전할래?”
내가 운전해도 괜찮은 것 같은 목적지라고 생각했는지 남편은 자주 내게 물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어제 잠을 설쳤다거나, 오전 내내 일을 했다는 식의 그럴듯한 이유를 덧붙이며 나는 늘 조수석을 선택했다. 남편도 같은 하루를 보냈지만, 말없이 운전석에 앉았다.
그런 내가 씨앗처럼 묻어 두었던 말이, 가끔씩 아무 예고 없이 입 밖으로 고개를 들 때가 있다. 이유는 딱히 없다. 아침에 아이들에게 사자후를 쓰지 않고 등교를 시켰다거나 롤러코스터 같은 농사일이 무난하게 흘러가는 것 같아 마음이 흡족한 그런 날. 차를 타고 읍으로 나가야 하는데 마침 그런 날이라면, 나는 남편에게 말한다.
“여보, 오늘은 내가 운전해 볼게.”
조심스럽게 내뱉은 말에 남편은 잠깐 나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 반응에는 여러 감정이 섞여 있다. 작은 눈이 아주 약간 커지며 얼굴에 '웬일이야' 라는 네 글자가 새겨진다. 걱정 그리고 ‘괜찮겠지’라는 믿음 같은 표정으로 나를 보는 것 같다.
운전석에 앉기 전, 내가 루틴처럼 하는 것이 있다. 조수석을 열고 도어 포켓을 뒤적인다. 그 안에는 몇 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노란색 자석스티커가 있다. 면허를 따자마자 남편이 사준, ‘초보운전’이라고 적힌 스티커다. 노란 바탕에 검은 글씨. 디자인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단순한 네 글자. 하지만 그 네 글자가 내게 주는 안정감은 컸다.
차 뒤쪽에 스티커를 붙이면, 마치 안전벨트를 한 번 더 매는 기분이 든다. 눈에 보이는 변화는 없는데, 마음의 자세는 분명히 달라진다. 남편이 조수석에서 내가 실수하지 않도록 이끌어 준다. 그런 남편도 든든하지만, 사실 내게 더 든든한 건 “초보운전” 스티커였다.
같은 차를 타고, 같은 도로로 나가지만, ‘초보운전’이라는 말이 내 뒤에 붙는 순간부터 세상은 조금 다르게 반응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신호 대기선 앞에서 깜빡이를 켜고 서 있으면, 뒤차와 나 사이에 생기는 그 애매한 거리마저도 오늘은 덜 위협적으로 느껴진다. 나를 추격해 오던 차는 알아서 앞질러 가고, 간격이 넓어지면 자연스럽게 끼어든다. 누군가는 내가 초보라는 걸 알고 조심해 주는 것 같고, 누군가는 그냥 바쁘게 자기 갈 길을 간다. 어쨌든 중요한 건, 그 모든 움직임 속에서 내가 덜 위축된다는 사실이다.
‘초보운전’ 스티커는 일종의 면죄부 같다. 조금 느려도 괜찮고, 한 박자 늦어도 괜찮다는 허락. 실수해도 이해받을 수 있을 것 같은 착각. 물론 실제로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해 주는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운전대 너머의 세상을 다 알 수 없는 초보에게는, 그 착각조차 큰 힘이 된다.
면허를 딴 지는 벌써 8년이 지났다. 숫자만 놓고 보면 초보라는 말을 붙이기엔 많은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낯선 길 앞에서는 속도가 줄어들고, 차가 많아지면 손에 힘이 들어간다. 신호등 앞에서는 한 번 더 생각하고, 좌회전 차로에서는 머릿속으로 여러 경우의 수를 그린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스티커를 붙인다. 나에게 ‘초보운전’은 경력보다는 상태에 더 가까운 말이기 때문이다.
그날도 스티커를 붙이고 도로로 나섰다. 차는 많지 않았고, 하늘은 흐렸다. 특별할 것 없는 풍경이었다. 하지만 나는 평소보다 조금 편안했다. 신호가 바뀌어도 급하게 출발하지 않았고, 앞차와의 거리를 넉넉히 두었다. 누군가는 답답하다고 느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 정도의 여유가 필요했다.
집으로 돌아와 담벼락 옆에 차를 세우고, 나는 주차가 제대로 되었는지 살폈다. 운전에 집중한 탓에 기진맥진해서 그대로 집에 들어가 버렸다. 스티커를 도어포켓으로 돌려놓는 일은 늘 남편 몫이었다. 조수석에 남편이 앉은 날은 마당에 다시 주차를 하면서 스티커를 뗐다.
“초보운전”
운전면허증이 지갑 속에 자리를 차지한 지 꽤 긴 시간이 흘렀지만, 나는 초보운전 스티커가 부끄럽지 않다. 언제까지 초보를 자처할 건지, 나 자신에게 묻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건 초보를 인정하는 표시가 아니라, 나를 지키는 방식이라는 걸.
초보운전,
저도 제가 무서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