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미안해지지 않기 위해 달린 길
2018년에 운전면허를 손에 쥐었다.
그때는 그것만으로도 무언가를 해낸 사람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면허증은 지갑 속에서 오래 잠들어 있었고, 그 사이로 8년이 흘렀다. 나는 아이들 학교까지, 고속도로에서는 보성휴게소까지만 몇 번이나 갔지만, 그 이상은 아직 내 몫이 아닌 것처럼 여겼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미안해지지 않기 위해, 처음으로 해남에서 사천까지 직접 가 보기로 했다. 병원에 계신 아버지를 뵈러 가는 길이었고, 동시에 나 자신을 시험하는 길이기도 했다. 운전 횟수는 적었고 속도는 느렸지만, 그동안 나는 멈추지 않고 조금씩 달려왔다. 부족하지만 이어 온 시간들이 헛되지는 않기를 바라며, 그날 아침 나는 운전석에 앉았다.
차 안을 데우려 시동을 먼저 걸었지만, 긴장으로 손끝은 쉽게 녹지 않았다. 남편은 조수석에 앉았다. 지난번까지 내가 앉아 있던 자리였다. 자리를 바꿨을 뿐인데 마음의 크기가 달라진 듯했다.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설정하자 해남에서 사천까지 거리와 시간이 나왔다. 화면 속 숫자는 단순했지만, 내 안의 거리는 훨씬 길었다.
출발은 생각보다 무난했다. 도로는 한산했고, 이른 아침의 햇살이 앞 유리를 비스듬히 통과했다. 하지만 보성휴게소쯤 도착했을 때, 나는 이미 체력의 절반을 써 버린 기분이었다. 운전대를 쥔 손에 힘이 과하게 들어가 있었고, 어깨는 올라가 있었다. 허리가 묵직하게 아팠다. 잠시 내려 허리를 폈지만, 긴장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다시 도로 위로 올라섰다. 차선을 바꾸는 것도 내가 결정하지 못했다. 길에 익숙한 남편이 “이쯤에서 바꾸면 돼”라고 말할 때마다 숨을 한 번 더 고르고 방향지시등을 켰다. 속도계 숫자를 자주 확인했고, 내비게이션보다 남편의 목소리를 더 의지했다. 사천에 가까워질수록 허리 통증은 허벅지까지 번져 갔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나는 만신창이였다. 허리는 끊어질 듯했고, 저릿한 허벅지 통증까지 더해져 고통스러웠다. 그런데 병실 문을 열고 아버지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 길이 헛되지 않았음을 알았다. 지난번보다 조금 나아진 얼굴이었다. 내가 직접 운전해서 왔다고 하니 살짝 미소 지으셨다.
돌아오는 길에는 운전대를 남편에게 넘겼다. 조수석에 앉자마자 허리가 욱신거렸다. 하지만 마음은 더 단단해진 걸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부탁하지 않고 사천까지 왔다는 사실이 마음속에 뿌리를 내려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두 번째 장거리 운전에서는 조금 달라지기로 했다. 의자를 조금 더 앞으로 당기고, 허리를 세웠다. 휴게소에서는 충분히 쉬었다. 다리를 풀고, 스트레칭을 하고, 다시 숨을 고른 뒤 출발했다. 신기하게도 이번에는 허리가 심하게 아프지 않았다. 긴장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자세를 바꾼 것만으로도 운전이 수월했다.
해남으로 돌아오는 길, 체력은 남아 있었다. 집까지 가 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집에 도착하면 또 다른 하루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운전대를 넘겼다. 이번에는 무력감이 아니었다. 내가 선택한 판단이었다.
처음과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는 분명 달랐다. 처음에는 내비게이션을 보는 것도 서툴렀다. 분기점이 가까워지면 남편이 옆에서 한 번 더 설명해 주었다. “오른쪽 차선이야.” “지금 빠지면 돼.” 그 말들이 없었다면 몇 번은 길을 놓쳤을지도 모른다. 남편이 계속 말을 해야 해서 목이 아프다며, 차라리 자기가 운전하는 게 낫겠다고 농담처럼 말하기도 했다.
네 번째쯤 되자 남편의 설명은 줄어들었다. 나는 내비게이션 화면을 흘깃 보는 법을 익혔고, 표지판을 먼저 읽기 시작했다. 분기점이 다가오기 전에 미리 차선을 바꾸었다. 네 번째가 되자 보성휴게소를 지날 즈음, 남편은 창밖을 보고 있었다. 한때는 누구보다 바빴던 ‘남편 내비’가 조용해진 순간이었다.
장거리는 여전히 긴장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달라졌다. 도로 위에서 나는 더 이상 ‘얹혀 가는 사람’이 아니었다. 서툴고 느리고, 아직도 실수할까 봐 마음이 조마조마했지만, 적어도 내 손으로 방향을 정하고 있었다.
이 길은 단순히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길이 아니었다. 어쩌면 나는, 도로 위에서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증명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