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미안해지지 않기 위해 달린 길
초보인 내게 해남에서 사천까지는 분명 장거리였다. 그리고 그것은 체력전이었다. 허리를 세우고 어깨 힘을 빼려 애써도, 옆 라인에서 쌩쌩 스쳐 지나가는 차들을 보면 다시 몸이 굳었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IC를 들어가고 나가는 길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잠깐이라도 판단이 늦으면 뒤차의 속도에 밀릴 것 같았다.
해남 읍내의 도로는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를 무언가에 대비해야 하는 일이 많았다. 사천 시내는 또 다른 방식으로 나를 긴장시켰다. 도로는 좁았고, 신호는 촘촘했다. 차들은 물결처럼 엉켜 움직였다. 나는 그 사이에서 내가 가야 할 길을 놓치지 않아야 했다. 무언가가 튀어나오는 일은 드물었지만, 차가 많다는 사실만으로도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운전대를 쥔 손에 땀이 배었다. 그 피로와 긴장 때문에 운전대를 다시 잡고 싶지 않은 날도 있었다. 하지만 또다시 운전석에 앉았다. 병마를 견디고 있는 아버지 앞에서, 그리고 늘 기꺼이 운전해 주던 남편 앞에서 더 이상 작아지고 싶지 않았다.
시골에서 남편에게 이동권을 맡기고 산다는 것은 단절에 가까웠다. 나란 사람이 사회성이 특출 나서 사람을 자주 만나는 사람도 아니었고, 텃밭을 가꾸고 마당냥이들과 지내는 생활이 만족스러웠다. 그 만족이 나를 지켜주는 울타리이기도 했다. 그러나 중요한 순간마다 한 발 물러서야 할 때가 많아 나는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그런 마음들이 쌓여 ‘나는 결정적인 순간에 아무 쓸모도 없는 사람이 아닐까’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버지의 상태가 위태롭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조차, 나는 누군가의 시간을 먼저 계산하고 있었다. 내가 직접 갈 수 있을지보다, 부탁이 가능할지를 먼저 따졌다. 그 모든 것이 불편했다.
그래서 운전대를 잡았다.
두려움이 사라져서가 아니었다. 고속도로 진입로 근처에서 차선을 바꿀 때면 심장이 먼저 뛰었다. 사천 시내의 복잡한 교차로에서는 신호가 바뀌기 전까지 손끝이 서늘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잘하려 하지 말자. 도망치지만 말자.’
아버지에게로 향하는 고속도로에서의 긴장과 휴게소의 짧은 숨 고르기, 시내의 잦은 정지와 출발. 그 모든 구간을 통과해 병원 주차장에 차를 세울 때마다, 나는 작은 산 하나를 넘은 기분이 들었다. 주차 칸에 차가 정확히 들어갔을 때, 안도감과 함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오늘도 무사히 왔다.
그 짧은 문장은 생각보다 깊이 남았다.
그것은 거창한 자신감이 아니었다. 나도 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 부탁하지 않고도, 누군가의 일정에 기대지 않고도, 필요한 순간에 내 힘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차올랐다.
편도 운전이었고, 돌아오는 길에는 아직 남편의 도움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 사실이 더 이상 나를 작게 만들지는 않았다. 예전 같으면 돌아섰을 길을 곧장 갈 수 있을 만큼 내 마음은 단단해지고 있었다.
긴장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마음의 중심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겁이 나도 멈추지 않고, 완벽하지 않아도 방향을 잡는 것. 내 마음의 중심은 반복 속에서 조금씩 단단해졌다. 어쩌면 그 단단함은, 남편이 오랫동안 내 안에 심어 두었던 씨앗이 늦게 발아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중심은 누군가에게 보여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필요한 증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