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미안해지지 않기 위해 달린 길
그동안 보성휴게소까지는 내게 연습장이었다. 휴게소를 지나 사천까지는 조수석에 앉은 남편에게 운전대를 넘기면 되는 거리였다. 도전이라 부르기에는 애매한 길이기도 했다. 그러나 사천까지는 달랐다. 지도 위에서는 선 하나로 이어진 거리였지만, 내게는 한 번도 건너본 적 없는 마음의 경계선 같았다.
아버지가 입원해 계신 사천의 병원까지, 내가 운전해 간 날은 네 번쯤 된다. 처음엔 남편이 조수석에서 내비게이션이 되어주었다.
“지금 바꾸는 게 좋아.”
“조금만 더 가서 빠져.”
예전 같으면 그 말들이 지적처럼 들렸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는 달랐다. 아버지에게 가는 길 위에서는 틀릴까 봐 계산할 겨를이 없었다. 필요한 말을 듣고, 필요한 만큼 고치고, 다시 앞으로 가면 그뿐이었다.
남편 내비의 소리가 줄어들 무렵 아주 작은 변화가 찾아왔다. 표지판이 조금 더 빨리 읽혔고, 차의 흐름이 눈에 들어왔다. 브레이크를 밟는 발도 덜 급해졌다. 능숙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도로의 흐름에 방해가 되는 것 같진 않았다. 남편은 운전을 해야 할 필요가 생기니까 결국은 몸이 따라왔다고 말했다.
아버지에게 가는 네 번의 길은 짧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는 여전히 남편이 운전대를 잡았다. 체력은 아직 모자랐고, 긴장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이미 한 방향을 스스로 책임져 본 사람이었다. 그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2026년 1월 말, 저녁에 아버지를 뵙고 남편이 운전해 해남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날 밤, 아버지는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 다음날 해남에서 출발하는 이른 새벽에 나는 운전대를 잡지 못했다. 반복해 온 길이었지만, 그날의 길은 전혀 다른 무게를 가지고 있었다. 머릿속에 안개가 가득했고,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억지로 잡는다고 해결될 종류의 감정이 아니었다.
남편이 아무 말 없이 운전석에 앉았다.
조수석에 앉아 창밖을 보며, 나는 그동안의 네 번을 떠올렸다. 연습이라 생각했던 길들 혹은 나를 증명하기 위한 시험처럼 여겼던 시간들. 그러나 그것은 시험도, 증명도 아니었다. 아버지가 내게 건네준 기회였다.
나를 작게 보지 않아도 되는 기회.
필요 앞에서 물러서지 않는 사람이 되는 기회.
아버지는 내가 직접 운전해 왔다고 하면 고개를 끄덕이셨다. “멀지 않냐”는 말 속에는 걱정과 기특함이 함께 있었다. 나는 “괜찮아요”라고 답했지만, 그 한마디는 오래 남았다.
그 길 위에서 나는 딸이면서 동시에 단단한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버지가 떠난 뒤에도 운전은 계속되었다.
아이들 일로 움직이고, 토요일 출근길에도 운전대를 잡는다. 여전히 완벽하지는 않다. 복잡한 교차로에서는 숨을 고르고, 낯선 길에서는 내비게이션 음성에 더 귀를 기울인다. 그렇지만 이제는 안다. 운전은 능숙함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감정이 흔들려도, 상황이 복잡해도, 도망치지 않고 운전대를 잡아야 한다. 그리고 때로는, 잡지 않아야 할 날에는 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
아버지가 눈을 감으셨던 날, 나는 운전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동안의 연습이 모두 헛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날의 나는 한 사람을 떠나보내는 슬픔을 통과해야 했기에 운전대를 놓아야 했다.
네 번의 운전과 한 번의 포기.
그 모두가 내게는 선물이었다.
아버지가 남긴 것은 면허증도, 기술도 아니었다. 필요할 때 움직일 수 있는 마음, 그 마음이 내 안에 남아 있다. 그것이 내가 받은 가장 큰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