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용기들이 인생의 방향을 만든다
도로연수가 끝나고 마당에 있는 차를 몰고 집 밖을 나설 수 있게 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의외로 단순했다.
“운전할래?”
자주 해야 익숙해진다는 걸 아는 남편은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종종 그렇게 물었다. 장을 보러 갈 때도, 아이들을 데리러 갈 때도, 읍내에 잠깐 나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단지 네 글자였지만, 내 대답은 늘 비슷했다.
“아니, 오늘은 상태가 좀 안 좋아.”
그 말은 습관처럼 나왔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상태’라는 건 사실 큰 의미가 없었다. 몸이 특별히 아픈 것도 아니었고, 피곤해서 도저히 운전을 못 할 정도도 아니었다. 그 말은 사실 ‘두렵다’의 다른 표현이었다.
그런 날들이 이어지면서 운전하지 않으면 사라질 것 같았던 감정이 오히려 더 단단해졌다. 운전대를 잡지 않은 채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서랍 속 제일 아래쪽에 넣어둔 운전이라는 일은 점점 더 큰 일처럼 느껴졌다. 아주 작은 행동 하나가 아니라, 큰 결심이 필요한 일처럼.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다시 물었다.
“운전할래?”
그날도 나는 익숙한 대답을 꺼내려다가 잠깐 멈췄다. 딱히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피곤하지도 않았고, 길이 특별히 낯선 것도 아니었고, 시간도 충분했다. 지금 이 순간을 또 넘기면, 다음에도 똑같이 넘기게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운전대를 잡기로 했다.
스스로도 낯선 선택이었다.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았다. 시트에 몸을 기대고, 백미러를 맞추고, 시동을 걸었다.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고, 액셀을 천천히 밟았다. 차가 아주 조금씩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운전은 생각보다 거창한 일이 아니었다. 대단한 결심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고, 특별한 용기가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그저 시동을 걸고,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고, 액셀을 밟는 일. 그 작은 동작들이 이어지면서 차는 앞으로 나아갔다.
그날 이후로 나는 ‘용기’에 대해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용기라고 하면 뭔가 큰 장면을 떠올렸다.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순간, 두려움을 이겨내고 한 발짝 내딛는 장면. 하지만 실제로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용기는 대부분 그렇게 크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작고, 사소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오늘은 내가 해볼게.”
그 한마디를 꺼내고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거는 일. 그리고 아주 조금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 모든 것이 작은 용기였다.
농사를 지으면서도 비슷한 순간들이 많았다. 날씨가 좋지 않아도 밭에 나가야 할 때가 있었고, 예상과 다르게 작물이 자라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할 수 있는 만큼의 선택을 했다. 조금 늦게라도 나가보고, 한 줄이라도 더 살펴보고, 내일로 미루지 않고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해보는 것.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좋은 부모가 되겠다는 거창한 다짐보다, 오늘 하루 아이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주는 것, 바쁜 와중에도 눈을 마주치고 웃어주는 것. 그런 작은 행동들이 쌓이면서 하루가 만들어졌다.
운전도 그랬다. 처음에는 짧은 거리부터 시작했고, 익숙한 길만 반복해서 다녔다. 그러다가 조금 더 멀리 가보고, 낯선 길에도 한 번쯤 도전해 보고, 그렇게 범위를 넓혀갔다. 그 과정에서 특별히 대단한 결심을 한 적은 없었다. 그저 ‘오늘은 여기까지 가볼까’ 하는 마음이었을 뿐이다.
돌이켜보면 삶의 방향을 바꾼 것은 큰 결심이 아니라 그런 순간들이었다. 한 번의 큰 용기보다, 여러 번의 작은 용기가 더 오래 남았다. 그리고 그 작은 용기들은 생각보다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한 번 해본 일은 다음에 조금 덜 어렵게 느껴졌고, 두 번 해본 일은 세 번째에는 자연스러워졌다.
요즘은 남편이 묻기 전에 내가 먼저 말하기도 한다.
“오늘은 내가 할게”
그 말 한마디가 만들어내는 변화는 생각보다 크다. 운전대를 잡고, 길 위에 올라서고, 하루의 흐름이 달라지고, 내 마음의 방향도 함께 바뀐다.
운전면허를 취득한 지 8년째이지만 나는 여전히 '초보운전'스티커를 붙이고 달린다. 낯선 길에서는 긴장이 되고, 복잡한 교차로에서는 숨을 한 번 고른다. 그래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 자리에 앉아 있다는 사실이다. 운전석에 앉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삶도 비슷하다. 우리는 늘 완벽한 상태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준비가 다 된 순간은 생각보다 쉽게 오지 않는다. 대신 어느 정도의 불안과, 조금의 망설임을 안은 채로 시작하게 된다. 생각보다 삶은 큰 용기를 요구하지 않는다.
숨을 한 번 고르고,
조금 두렵더라도 운전대를 잡고,
다시 한 번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 정도면 충분하다.
아주 작은 용기 하나가 하루를 움직이고, 그 하루들이 모여 방향을 만든다.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작고 사소한 선택들이 쌓이면서, 우리는 어느새 전보다 조금 더 다른 곳에 서 있게 된다.
오늘도 나는 완벽하지 않은 상태로 운전석에 앉는다.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순간들이 있고, 가끔은 실수도 한다. 그래도 시동을 건다. 그리고 아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작은 용기 하나를 보태며
내 방향을 만들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