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경로로 안내합니다

5부. 느리지만 여전히 가는 중입니다

by 농부아내


여전히 나는 차 뒤에 “초보운전” 스티커를 붙이고 다닌다. 자석 스티커라 내가 운전석에 앉을 때만 붙이고, 운전석 주인이 바뀔 때면 간단하게 떼어내면 된다. 나도 남편처럼 “초보운전” 스티커 없이 운전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한번도 없다. 그 스티커는 내 옆을 지나가는 다른 차들을 위한 표시이자, 내 자신을 지키는 보호 부적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운전석에 앉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의자를 당겨 앉고, 백미러 각도를 맞추고, 내비게이션을 켜고, 목적지를 입력한다. 몇 번이나 가 본 길인데도 굳이 내비를 켠다. 길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이제는 길을 외워서 갈 수도 있지만, 나는 내비의 안내를 듣는 쪽을 택한다.


“300m 앞에서 우회전입니다.”


차 안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는 늘 일정한 톤이다. 급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다. 그 목소리를 따라가야 하는데 가끔 안내를 놓칠 때가 있다. 옆 차를 피하느라 타이밍을 놓치거나, 긴장해서 엉뚱한 차선으로 들어설 때도 있다. 분명 오른쪽으로 돌아야 했는데 그대로 직진해버리는 순간, 심장이 쪼그라들곤 했다.

예전 같았으면 그 자리에서부터 마음이 급해졌을 것이다. 그 순간부터 길보다 내 마음이 더 바빠졌을 것이다. 어디서 유턴을 해야 하는지, 다시 돌아갈 수는 있는지, 괜히 더 멀어지는 건 아닌지 머릿속이 복잡해졌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다르다. 몇 초쯤 지나면 내비게이션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다시 들린다.


“새로운 경로로 안내합니다.”


그 짧은 한 문장이 주는 안도감이 생각보다 크다. 길을 잘못 들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방향이 조금 달라졌을 뿐이다. 여전히 목적지로 가는 중이라는 사실이 그 한 문장에 담겨 있다.

그 말을 들으면 핸들을 쥔 손이 조금 느슨해진다. 다시 안내해주는 길을 따라가면 된다. 조금 돌아갈 수도 있고, 예상보다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차는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고, 길은 다시 이어지고 있었다.


운전을 하면서 나는 길을 잘못 드는 일이 생각보다 자주 일어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무리 익숙한 길이라도 순간의 판단이 엇갈리면 다른 방향으로 들어설 수 있다. 하지만 그때마다 돌아가는 길이 있고, 다시 이어지는 길이 있다.


삶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동안 ‘제대로 가고 있는가’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농사를 시작했을 때도 그랬고,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그랬고, 무언가를 선택할 때마다 이 길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내가 서 있는 자리가 맞는지 자꾸만 돌아보게 되었다.


특히 농사를 지으며 그런 생각이 더 자주 들었다. 날씨에 따라 일정이 바뀌고, 수확 시기가 달라지고, 예상했던 계획이 어긋나는 일이 반복된다. 열심히 준비한 일이 한순간에 틀어질 때도 있고, 생각보다 더디게 진행되는 날들도 있다. 그럴 때면 내가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의심하게 된다.


하지만 운전을 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길을 잘못 들었다고 해서 목적지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고 돌아가는 길이 생길 뿐이라는 것이다. 그 길도 결국은 목적지로 이어진다. 돌아가는 길이라고 해서 나쁜 길은 아니었다. 돌아가는 동안 보이는 풍경이 있고, 그 시간에만 할 수 있는 생각이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여전히 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응, 고생했어.”

내비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지만,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나는 여전히 운전을 잘하지 못한다. 낯선 길에서는 저속으로 운전하고, 내비게이션이 없으면 많이 불안하다. 가끔은 같은 길을 두 번 돌기도 하고, 엉뚱한 방향으로 들어설 때도 있다. 그래도 이제는 안다. 그런 순간들이 길의 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삶에서 운전과 비슷한 순간들이 있다. 무언가를 끝냈을 때, 혹은 한 단계를 지나왔을 때, 그동안의 시간들이 한 번에 떠오르는 순간이 있다. 그 안에는 빠르게 지나온 길도 있고, 한참을 헤매다 돌아온 길도 있다. 하지만 결국은 그 모든 시간이 이어져 지금의 자리에 도착하게 만든다.

조금 늦어도 괜찮다. 예상보다 시간이 더 걸려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고 계속 가는 것이다. 길을 잘못 들었다고 해서 비상등을 켜고 차를 세우지 않는다. 다시 방향을 잡고 계속 가면 된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나는 결국 도착할 것이다.

이전 24화면허는 있었지만 운전자는 늘 남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