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심고 42일, 순을 뽑아야 하는 순간이 왔다

by 농부아내


감자를 심은 뒤 35~40일쯤 되면 순이 10cm 안팎으로 자란다. 이때가 순치기의 적기다. 순치기는 북주기와 함께 진행하는 것이 좋고, 여러 개 올라온 순 중에서 자람새가 좋은 2~3개만 남기고 나머지는 제거한다. 가위로 자를 경우 다시 순이 올라올 수 있기 때문에 자르는 것보다 뽑는 것이 확실하다. 한 손으로는 순 주변의 흙을 눌러 고정하고, 다른 한 손으로 순을 잡아 천천히 당기면 뿌리째 뽑힌다. 이렇게 해야 양분이 분산되지 않고 감자가 더 굵고 단단하게 자란다.


2026년 감자 재배일지
-2월 20일 감자심기
-3월 10일 싹 발견(19일째)
-4월 2일 순치기(42일째)




농사를 10년째 하고, 텃밭을 여러해 가꾸면서도 도통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있다. 기다림이다. 하우스에 감자를 심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싹이 고개를 내밀 때까지 기다리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 비가 세차게 내리던 날에는 마음이 더 바빠졌다. 창가 쪽은 원래도 물이 고이던 자리라, 괜히 그곳에 심은 게 마음에 걸렸다.


감자를 심고 일주일쯤 지났지만 아무 변화도 없었다. 무언가 잘못된 게 아닐까 싶어 마음이 조급해졌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일주일 만에 싹이 올라오기를 바라는 건 지나친 기대였다. 하우스라는 이유 하나로 시간을 앞당기고 싶었던 건, 결국 내 마음이었다.


2주가 지나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쯤 되면 불안이 고개를 든다. 마음 속 불안을 밤호박 심을 준비를 하며 달래고 있었다. 몸을 움직이다 보면 생각이 조금은 잦아들기 때문이다.


올해 첫 밤호박을 심고, 남아있는 밤호박 모종을 둘러 보러 하우스로 갔다. 갈라진 흙 틈 사이로 아주 작은 초록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감자를 심은 지 19일째였다. 그 작은 싹 하나가 밤호박 정식으로 인한 피로도, 하우스 감자에 대한 불안도 단번에 밀어냈다.


그리고 며칠 사이에 여기저기서 싹이 올라왔다. 멀칭비닐의 구멍을 정확히 찾아 올라오는 경우는 드물었고, 대부분은 비닐 아래에서 길을 찾지 못한 채 비닐을 밀어 올리고 있었다. 비닐이 울퉁불퉁하게 부풀어 오른 자리마다 작은 생명이 갇혀 있었다. 그럴 때마다 손으로 비닐을 살짝 찢었다. 늦지 않게 숨통을 틔워 주어야 제 빛깔을 찾을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하나씩 숨통을 만들어주다 보니, 어느새 비닐 위로 초록이 물들기 시작했다.


그 뒤로는 하우스에 자주 들어가지 못했다. 밤호박 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손이 모자랐다. 대신 텃밭을 오가며 창 너머로 감자를 훑어보는 것으로 마음을 대신했다. 그 짧은 시선 속에서도 감자들이 매일 조금씩 자라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날도 노지 텃밭을 둘러보는 길이었다. 별생각 없이 창가를 지나는데, 뒤쪽에 심은 수미감자들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홍감자는 덜한데 수미감자는 전보다 훨씬 빽빽해진 줄기들이 서로 기대듯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더 미루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자를 심은 지 42일째 되는 날이었다.


하우스 안으로 들어가 사진을 몇 장 찍고 한번 스윽 둘러 보았다. 노지에서 보던 감자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었다. 약간 웃자란 듯 보이기도 했지만, 처음 재배해보는 하우스 감자라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었다.



여러 개로 갈라진 줄기 중에서 상태가 좋은 것 두 개를 남겼다. 굵고 곧게 뻗은 줄기를 기준으로 삼았다. 그리고 나머지는 하나씩 뽑아냈다. 한 손으로는 줄기 밑의 흙을 지그시 누르고, 다른 한 손으로 순을 잡아 당겼다. 뽑히기 싫은 듯 처음에는 손끝에 살짝 저항이 느껴지지만, 뽑겠다는 나의 의지 또한 확고하기 때문에 좀더 힘을 줘서 뽑으면 승리의 묘한 쾌감이 있다.


홍감자 줄기를 뽑다가 작은 분홍빛 감자가 딸려 나왔다. 새끼 손톱보다도 작은 크기였다. 아직은 감자라고 부르기엔 이른 모습이었지만, 분명 감자였다. 수미감자에서는 조금 더 큰 크기의 것이 따라 나왔다. 그 작은 알갱이의 귀여움에 밤호박 하우스에서의 고된 작업으로 인한 피로가 달아났다. 이 녀석들의 귀여움을 식구들과 나누고 싶었지만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삶을 살아내느라 바빴다.




텃밭에서 감자를 키운 지도 어느덧 4년째다. 그동안 노지에서는 한 번도 감자꽃을 본 적이 없었다. 다른 이들의 감자밭에는 꽃도 피던데 이상하게 매년 내 감자들은 꽃을 피우지 않고 그 해를 마무리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다. 하우스 안에서 빠르게 자라는 감자를 보고 있자니, 올해는 꽃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긴다.


나도 감자꽃을 꺾을까 말까 고민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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