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 모종을 고르다, 지난 시간이 떠올랐다

고추 모종 심는 시기

by 농부아내


고추 모종 심는 시기는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남부지역은 4월 중순부터 5월 초, 중부지역은 5월 초에서 중순 사이가 적당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날짜보다 ‘기온’이다. 일기예보를 확인해 밤 기온이 12℃ 이상으로 안정되는 시기를 기준으로 삼으면 실패 확률이 줄어든다.


고추 모종은 생각보다 종류가 다양하다. 작은 텃밭에서 자가소비용으로 키운다면 수확량보다 중요한 것은 ‘입맛’이다. 가족들이 어느 정도의 매운맛을 좋아하는지, 생으로 먹을지, 고춧가루로 쓸지에 따라 선택이 달라진다. 종묘사나 원예사, 모종을 판매하는 곳에 가서 사용 용도와 선호도를 이야기하면 상황에 맞는 품종을 추천받을 수 있다. 고춧가루를 만들 계획이라면 과육이 두껍고 건조 후 색이 잘 나오는 품종을 고르는 것이 좋고, 생으로 먹을 용도라면 맵기와 식감을 기준으로 고르면 된다.


2026년 고추 재배일지
-4월 8일 아주심기
(당조고추 1개, 헬로풋 2개, 가지고추 2개, 청양고추 1개)




2020년, 농부님이 관리기로 마을 어르신 밭의 고랑작업을 도와드리고, 고추 모종 100주를 얻어 왔다. 그때는 육묘하우스가 없던 시기라 비어 있던 땅에 밭을 만들고 모종을 모두 심었다. 밤호박 하우스 일이 바빠 모종을 심어놓고 들여다볼 틈이 없었다. 물은 농부님이 챙겼고, 웃거름은 주지도 못하고 방임에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도 고추는 자랐다. 잡초와 뒤엉켜 서로의 자리를 침범하면서도, 어느 순간 줄기마다 붉은 고추를 주렁주렁 매달고 서 있었다. 그 장면을 처음 마주했을 때의 감정은 아직도 선명하다. 놀라움과 그저 버티고 자라준 것에 대한 고마움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수확한 고추를 제대로 말릴 방법을 몰라 내맘대로 말리기 시작했고, 며칠이 지나자 여기저기서 곰팡이가 올라왔다. 고춧가루는 만들어보지도 못하고 고추를 버려야 했다. 그 해의 기억은 생각보다 오래 남았다. 이후로는 텃밭이 생겨도 고추를 심겠다는 생각을 쉽게 하지 못했다.


아이들이 매운 음식을 즐기지 않는 것도 이유였다. 하지만 나는 청양고추를 좋아했다. 슴슴한 밑반찬에 생으로 먹는 청양고추 한 입은 그날의 피로를 풀어주는 느낌이었다. 매번 사다 먹으려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고, 결국 “몇 포기만 심어보자”는 생각으로 텃밭에 들인 것이 2022년이었다. 그때부터 해마다 텃밭 한쪽에 소량의 고추를 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나만 먹으려고 자연스럽게 청양고추 2주만 심었다. 매년 그렇게 심다가 작년에는 나의 위가 청양이를 거부해 맵지 않은 종류의 고추를 심었다. 오이고추, 당조고추, 가지고추, 그리고 서비스로 받은 헬로풋까지. 헬로풋은 기대 없이 심었는데, 생각보다 맛있었다. 크기는 작지만 단맛이 은근히 올라오고 맵지 않아 아이들도 부담 없이 먹었다. 여러 종류의 고추에서 매번 소쿠리 한 가득 수확했다. 시댁에도 드리고, 마을 어르신들 밭에는 없는 고추라 어머님들께 나눔하기도 했다.


4월 8일 아주심기


올해는 오이고추 대신 헬로풋을 선택하고, 당조고추, 가지고추, 청양고추까지 네 가지로 정했다. 오이고추나 헬로풋이 풋고추 계열로 품종이 겹쳐서 헬로풋을 선택했다. 지난 4월 8일, 총 6개의 고추 모종을 비닐하우스 안에 심었다.


작년에도 하우스에 고추를 심었었다. 노지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생육이 좋았다. 줄기는 굵어지고, 키는 눈에 띄게 커졌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크기로 자라나는 모습이 꽤 든든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변수가 찾아왔다. 장마가 평소보다 빨리 시작되면서 하우스 안으로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흙이 질펀해지자 지주대가 버티지 못하고 고추와 함께 쓰러졌다.


그제야 알았다. 마을 어르신들이 왜 굵은 지주대를 쓰고, 왜 그렇게 깊게 박는지. 그냥 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 시간과 수고에는 이유가 있었다.


올해는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준비를 조금 더 했다. 농부님이 하우스 주변으로 물길을 깊게 파두셨다. 지난주 많은 비가 내렸을 때, 제초매트 위로 물이 차오르지 않는 것을 보고 마음이 놓였다.


고추 모종을 약 50cm 간격으로 심고. 지주대는 모종심고 사이사이에 바로 박았다. 아직 줄로 묶지는 않았다. 조금 더 자라면 그때 묶어줄 생각이다.


모종을 심고 사진을 찍다보니 하나같이 ‘ㄱ’자 모양으로 살짝 구부러져 있었다. 심어놓고 나서도 이대로 자라는 건 아닌지, 괜한 걱정을 몇 번이나 했다.


4월 15일


심은 지 8일째 되는, 4월 15일.

어제까지도 조금은 어정쩡하던 줄기들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구부러진 줄기가 완전히 곧게 서서 방향이 바뀌어 있었다. 빛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작년만큼 고추나무로 키우고, 장마가 와도 쓰러지지 않게 하는 것이 올해의 목표다. 고추를 전문적으로 재배하는 농가에서는 추석 때까지 키우기도 하니까 가능하다면 나도 그때까지 버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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