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하우스 재배용 밤호박 파종시기
자연의 시간에 맞춰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시골살이의 묘미라고 생각했다. 밤호박 농사를 짓고 텃밭을 가꾸다 보면, 자연스럽게 기다림에 익숙해지고 흐름에 몸을 맡기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귀농 9년 차가 된 지금도 나는 여전히 조급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매년 밤호박 파종을 하면서도 하우스 문턱이 닳도록 들여다보고, 씨앗이 싹을 틔울 때까지 안달이 난다.
비닐하우스 재배용 밤호박 파종 시기
조기 출하를 선호하는 농가에서는 1월에 파종을 시작하기도 한다. 하지만 온도와 환경 조건을 맞추기가 까다로워 우리는 대부분의 밤호박 농가와 마찬가지로 2월 초중순에 파종을 한다. 육묘 기간은 보통 25~30일 정도이므로, 아주심기(본밭에 옮겨 심는 일) 날짜에서 역산해 적절한 파종 시기를 정한다.
2월 15일, 밤호박 파종
귀농 첫해에만 모종을 사서 심었고, 그 이후로는 매년 직접 육묘를 해왔다. 처음에는 농알못이었던 농부님이 이제는 선수급이 되었다. 믿음직스러운 모습이 새삼 든든하다.
비 예보가 있던 2월 15일 오후, 침종과 최아를 마친 밤호박 씨앗을 들고 육묘하우스로 향했다. 농부님이 상토를 바닥에 쏟아주면, 나는 트레이에 상토를 가득 채워 차곡차곡 쌓았다. 오랜 시간 함께 농사를 지으며 각자의 역할이 자연스럽게 나뉘었다. 맡은 역할만 묵묵히 해내면 서로 잔소리할 일도 없고 일이 척척 진행된다. 올해는 농부님이 상토 작업을 함께 도와줘서 86판의 트레이에 상토를 채우는 데 4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혼자 하면 훨씬 더디고 힘든 일인데, 사람 손이 무섭다는 말을 새삼 느꼈다.
상토를 채운 트레이에 물을 듬뿍 뿌리고, 밤호박 씨앗을 한 알 한 알 정성스럽게 심었다. 2시간 침종, 26시간의 최아를 거친 씨앗들은 종자근이 전혀 나오지 않은 상태였다. 심기에는 좋은 조건이었다. 해남농업기술센터에서는 25℃ 기준으로 40시간의 최아를 권장하지만, 예전에 그대로 따라 했다가 종자근이 너무 길게 나와 파종할 때 애를 먹은 적이 있다. 부러질까 봐 조심조심 다루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올해는 최아 시간을 짧게 잡았더니 싹이 조금 늦게 올라오더라도 파종 과정은 훨씬 수월했다. 내가 씨앗을 심고, 농부님이 상토를 한 번 더 덮어준 뒤 열선 위에 촤라락 배치하면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은 끝난다.
파종하던 날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바람이 불어 손이 시린 날씨였다. 추위에 웅크린 자세로 4시간에 걸쳐 파종 작업을 마쳤다. 아직 쌀쌀한 날씨 탓에 밤호박은 열선 위에서 육묘해야 한다. 열선 위에 놓인 트레이들을 부직포와 비닐로 이불을 덮어주는 마지막 작업은 농부님의 몫이었다. 드디어 2025년 밤호박 농사의 시작인 것이다.
기다림을 배우는 시간
파종할 때도 예상했지만, 아직까지 녀석들이 고개를 내밀지 않고 있다. 작년에는 5일 만에 싹이 올라왔는데, 올해는 유독 느리다. 날씨 탓인지, 아니면 씨앗들이 조금 더 쉬고 싶은 건지 알 수 없지만, 나는 또다시 하우스로 발걸음을 옮기고 만다. 매년 똑같이 반복되는 과정인데도, 기다림에는 여전히 서툴다. 자연은 인간의 시간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해마다 농사를 짓고 있지만, 이 기다림의 순간이 가장 어렵다. 나의 조급함에 하우스 문턱이 닳도록 들여다본다고 해서 녀석들이 더 빨리 싹을 틔우는 것도 아니다. 알면서도 작물은 농부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핑계를 대며 나는 또다시 하우스로 발걸음을 옮기고 만다.
올해도 나의 조급증을 고치기는 글렀다.
자세한 밤호박 파종과정은 아래 링크를 참고해 주세요.
https://blog.naver.com/sadpp/223766841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