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별로 차이는 있겠지만 나는 진열된 상품 중에 귀엽다, 예쁘다, 보기 좋다, 아름답다 등 듣기좋은 형용사를 떠올릴 수 있는 것들에 시선이 끌린다. 상품의 내실을 따져야 할 때를 제외하곤 대체로 외모가 훌륭한 상품을 고르게 된다. 그렇다. 나는 내 외모는 보잘 것 없더라도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이쁜 게 좋은 외모지상주의자다. 이런 생각은 농사일을 할 때도 드러나서 깔끔하게 일을 하려고 하는 편이다.
가을 재배 밤호박 줄기 철거가 끝나고 나면 멀칭 비닐을 걷어내야 한다. 흙으로 고정시켜 바닥에 밀착시킨 멀칭 비닐을 먼지를 휘날리며 들어 올린다. 흙먼지를 들이키고 콧구멍이 새카맣게 변하는 걸 보고 싶지 않다면 하우스 창은 활짝 열어 놓고 해야 한다. 창과 문을 활짝 열어도 어쩔 수 없이 얼굴에는 흙먼지 자국이 남는다. 처음 멀칭 비닐 철거 작업을 할 때는 일이 끝난 뒤 거울 속 내 모습에 웃음이 빵 터졌다. 마스크를 하고 일을 해도 어떻게 알고 들어오는지 코 양 옆과 깊게 패인 팔자 주름 사이에 거뭇하게 내려 앉은 흙먼지들. 열농한 흔적이지만 시커먼스를 보는 듯 해 웃음이 절로 나왔다.
작년(2023년)까지만 해도 먼지 따위 신경쓰지 않고 삐져 나오는 비닐은 보이지 않도록 예쁘게 돌돌돌 말아서 정리를 했다. 흡사 고급스런 보자기 포장을 한 것처럼 보이게 예쁘게 말았다. 보자기 포장의 손잡이같은 걸 만들어 주면 멀칭 비닐 이동시에도 편하다는 편리성까지 더해져 마음에 들었다. 네모나게 각을 맞추고 탱탱하게 잡아당겨 들고 가다가 풀리지 않게 꽉 매어 놓은 모습이 외모지상주의의 노동자다운 작업이다. 혼자만 아는 뿌듯함과 만족감이었다.
그런데 올해(2024년)는 나이가 한 살 더 늘어서일까. 어차피 폐비닐 버리는 곳(마을마다 버리는 곳이 정해져 있다)에 버려질 건데 굳이 예쁘게 말아야할 필요가 있을까. 구차늠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체력적으로도 힘들었다. 뭣이 중헌디~ 목표는 멀칭 비닐의 철거이지 예쁘게 멀칭 비닐 감기가 아닌 것이다.
생각이 구차늠에 닿자마자 대충 돌돌돌 감았다. 역시나 일하는 속도가 올라가서 금방 작업은 끝났다. 그런데 작년이랑 너무 차이가 날 정도로 대충 감았다. 외모지상주의의 붕괴다. 보기에도 좋지 않다. 들고 옮기려니 자꾸만 비닐이 풀린다. 꼼꼼하게 감아서 예쁘게 정리해야 했을까. 후회가 되지만 이미 작업은 반이상 끝났다. 남은 작업은 적당히 타협을 해야했다.
적당히 타협을 하니 그나마 손잡이는 살릴 수 있겠다. 들고 옮기는 데 풀리지도 않고 모양도 그나마 네모지게 나왔다. 매년 하는 작업인데도 체력에 따라, 마음에 따라 일하는 모양새도 결과물도 달라진다. 체력적으로 힘들어 대충 일을 하니 체력 소모도 적고, 일은 빨리 끝낼 수 있었다. 몇 십년간 지켜 온 나의 외모지상주의가 붕괴되는 순간을 보자니 씁쓸하다. 몸은 편하지만 마음은 불편한 멀칭 비닐 철거 작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