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자식농사

클레이 장인, 우리집 둘째

by 농부아내


누가 뭐래도 우리집 2번은 나에게만큼은 클레이 장인이다. 지금도 어리지만 더 꼬꼬마일 때부터 손으로 뭔가를 만들고 그리는 걸 좋아하더니 요즘 클레이로 이것저것 만들어서 내 눈이 커지게 만들고 있다.


하루 일과 중 오전 공부가 끝나고, 학원 다녀온 뒤 게임을 할까, 놀까 고민하는 2번. 그러면 나는 2번에게 묻는다.


"숙제했니?"

"아니요."


숙제 먼저 끝내고 놀아라고 입이 닳도록 말하지만 언제나 소 귀에 경 읽기다. 어느 집엔 클래식이 잔잔하게 흐른다지만, 우리집엔 "숙제 다 하고 놀아라~"라는 말을 녹음해서 BGM으로 틀어놓고 싶을 정도다. 숙제를 마치고 저녁을 먹고 나면 아이에게 자유시간이 주어진다. 방학 중엔 공부가 끝나면 게임을 즐길 수 있는 2시간의 보상이 주어졌다. 게임할까 고민하던 2번은 이내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림을 그리고, 클레이를 주물럭거리면서 시간을 보낸다. 게임보다 손으로 꼼지락거리는 게 더 좋은가 보다.


요즘 나는 아이들 방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 농부님 컴퓨터로 글을 쓰곤 했는데 농부님의 서류 작업이 많아져 아이들 컴퓨터로 글을 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는 컴퓨터 앞에서 글을 쓰고, 아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공부를 한다. 보기만 해도 흐뭇한 풍경이지만, 그런 평화로운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한쪽에선 한숨이 터져 나오고(문제가 풀리지 않아서), 다른 한쪽에선 책상 위에 놓인 클레이 비닐을 만지작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겉으론 모른 척하고 글을 쓰지만, 마음속은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어느 날 저녁, 열심히 글을 쓰고 있는데 클레이를 만지던 둘째가 갑자기 묻는다.

"엄마, 엄마는 무슨 과자를 제일 좋아해요?"

"엄마? 엄마는 곰표 나쵸!"

왜 묻는지 몰랐는데, 며칠 후 아이가 미니미한 곰표 나쵸를 내 손에 쥐여 주었다.





세상에! 과자 봉투 뒷면까지 정성스럽게 그려 넣고, 나쵸 색을 맞추기 위해 애를 썼단다. 옥수수 씨눈까지 콕콕 박힌 디테일이 살아 있는 작은 작품. 진짜 과자라면 여러 봉지는 먹었을 것 같다. 며칠 후엔 아빠가 좋아하는 포카칩까지 완성! 역시나 실제 과자와 색을 맞추느라 낑낑대더니, 비슷한 느낌이 난다. 작고 아담한 손에서 이런 미니미한 작품이 탄생하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이번 주에도 공부하고 놀고 하더니 어느 날 저녁, 또 묻는다.

"도시락에 노란색으로 뭘 넣으면 좋을까요?"

"음... 토달볶?"

모니터 화면만 보고 아이 얼굴은 보지도 않고 떠오르는 대로, 먹고 싶은 걸 말했더니 정말로 토달볶을 만들었다. 미니언즈 계란초밥, 오므라이스, 토달볶이 들어간 도시락이 완성됐다. 엄마가 예쁘게 도시락을 못 싸줘서 직접 만들어 본 걸까? 괜히 미안해지면서도 아이의 솜씨에 감탄했다.





"누구 도시락이야?"

"내 도시락~!"

달걀을 좋아하는 2번답게, 노란색이 가득한 도시락이었다. 폭풍 칭찬을 해줬더니, 가족들 도시락도 하나씩 만들기 시작했다. 금요일 저녁엔 엄마 도시락이라며 보여준다. 내가 좋아하는 고양이 모양 주먹밥과 김밥, 치즈와 햄으로 만든 롤 샌드, 빠질 수 없는 샐러드까지. 엄마 취향을 누구보다 잘 아는 2번이다. 지금은 아빠 도시락을 만들고 있다. 달걀프라이, 토마토볶음밥, 만두가 들어간 도시락이란다. 그다음엔 언니 도시락 차례.


작은 손으로 꼼지락거리며 무언가를 만들고 성취감을 느끼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기특하다. 비록 책은 멀리하고 있지만 나름 자신의 취미를 찾아가는 것 같아 흐뭇하다. 커 갈수록 이런 순간들은 줄어들겠지만, 지금만큼은 이 시간을 마음껏 즐겼으면 좋겠다.


자꾸 도시락을 만들다 보니 왠지 무언의 압박 같지만, 그래도 너의 꼼지락을 응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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