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집공고가 뜬 건 2025년 12월 8일이었다. 내가 찾던 일자리인 것 같아 서류를 작성해 메일을 보낸 건 12월 9일이었다. 모집기간은 12월 8일부터 21일까지. 서류전형 결과 발표 날짜는 공지에 없었다. 다만 면접일이 12월 23일로 적혀 있었다. 12월 21일이 일요일이었으니, 아마 서류전형 발표는 22일, 월요일이리라 짐작했다. 그렇게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2주를 보냈다.
일요일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아이스크림 주문이 있어 남편과 함께 공장에 나가 작업을 했다. 기계를 돌리고, 포장을 하면서 마음은 자꾸 다른 데로 흘렀다. “되면 좋겠다.” “아니, 연락 올 거야.” 기대와 불안이 섞인 말들을 혼잣말처럼 내뱉으며 하루를 보냈다.
12월 22일 아침, 아이들이 “다녀오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학교에 갔다. 바쁜 걸음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 홈페이지 게시판을 열었다. 며칠 전에 본 공지글 외엔 추가된 글이 없었다. 시계를 보니 아침 8시였다. 마음이 앞섰다. 출근 전에 공지가 올라올 일은 없었다.
컴퓨터 화면 한쪽에 게시판을 띄워 놓고, 다른 일을 하다가도 슬쩍슬쩍 시선을 옮겼다. 마치 눈을 떼는 순간 중요한 장면을 놓치기라도 할 것처럼 새로고침 버튼을 눌렀다. 아무 변화가 없었다. 다시 눌렀다. 여전히 그대로였다.
기대라기엔 너무 조심스러웠고, 체념이라기엔 아직 미련이 남아 있었다. 그냥 ‘확인’이라고 하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몇 분에 한 번씩 확인하는 일. 이런 집착 같은 새로고침의 마음가짐을 학생 때 공부에 쏟았더라면 어땠을까, 잠깐 한심한 생각도 들었다.
해를 가리던 구름이 걷히고 오전 10시가 넘었다.
연락은 없었고, 게시판도 그대로였다. 커피를 몇 잔 더 마셨다. 마실수록 속은 더 허전해졌다. ‘이쯤이면 안 된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제 막 하루가 시작되었지만 마음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야 이 기다림을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컴퓨터를 끄고 밖으로 나갔다. 가을 농사를 갈무리하고 봄 농사를 준비해야 했다. 하우스에는 아직 정리하지 못한 밤호박 줄기와 멀칭 비닐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몸을 움직이면 생각의 무게가 줄어든다. 농사를 지으며 알게 된 사실이다. 마른 줄기를 걷어내고 먼지를 뒤집어쓰는 동안 머릿속은 조금씩 비워졌다.
그래도 완전히 비워지지는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자꾸만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하우스에서는 핸드폰을 자주 보지 않는다. 흙 묻은 손으로 꺼내 들기도 애매하고, 무엇보다 괜히 보고 싶지 않았다. 포기했다고 믿고 싶었으나 내 이름 세 글자가 없는 걸 확인하는 순간 느낄 실망감도 부담스러웠다.
점심 무렵, 배가 고파 집으로 돌아왔다.
습관처럼 손을 씻고, 점심 준비를 하면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별다른 기대는 없었다. 여러 앱 알림들 사이로 문자 하나가 보였다. 그 순간, 심장이 아주 잠깐 빨리 뛰었다.
면접 일정을 안내드립니다.
서류전형 합격이라는 말은 없었다. 합격이라는 단어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 문자를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일정, 장소, 시간. 아주 건조한 정보들뿐이었는데, 누군가에게 사랑 고백을 받은 문자보다 더 반갑고 설렜고,
나는 기쁨을 참지 못하고 남편을 큰 소리로 불러 문자를 보여 주었다. 함께 기뻐해 주길 바랐다. 어색한 미소를 짓는 남편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기대한 만큼은 아니었지만 표현이 서툴러서 그러리라 믿기로 했다.
“아직 면접 남았잖아?”
이 남자는 내가 합격하길 바라는 걸까, 떨어지길 바라는 걸까. 면접이 남았다는 사실을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기뻐하고 싶었다. 서울에서 일하던 시절에도 수없이 많은 합격과 불합격 문자를 받아봤지만, 이번에는 느낌이 달랐다. 이력서를 쓰는 일부터,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까지. 마치 오래전 열정적으로 일하던 시절로 잠시 돌아간 것 같았다.
면접 날짜를 다시 확인했다.
12월 23일. 하루 남았다. 입을 옷, 할 말, 표정 같은 것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남편 말대로 아직 면접이 남았는데 이렇게 기뻐해도 되는 걸까.’ 아니, 여기까지 왔으니 기쁨은 맘껏 누리고 다음을 준비하는 게 맞는 것 같다.
내일이 면접이다.
오늘 밤, 과연 잠이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