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지 없는 크리스마스 선물

by 농부아내


면접을 보고 나온 날부터 마음은 이미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내가 센터라면 경력이 있는 사람을 뽑을 것이다. 아이들을 다루는 일이고, 안전이 걸린 일이니 당연한 선택일 것이다. 그 판단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음속에서 나는 이미 탈락자였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란 게 참 묘하다.

떨어졌다고 스스로에게 여러 번 말해 놓고도, 완전히 손을 놓지는 못한다. 기대는 접어 두었는데 미련이란 놈은 어찌나 두툼한지 끝내 접히지 않는다.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는 그 미세한 가능성은, 아무리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 아이들 낙서 흔적처럼 남아 있었다.


면접을 마치고 나오면서 결과 발표일을 물었다. 바로 다음날, 오전 11시쯤 홈페이지 게시판을 통해 공지된다고 했다. 발표일은 12월 24일이었다. 나는 이미 ‘안 될 거야’라는 결론을 내렸으면서도, 아침부터 계속 새로고침 버튼을 눌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화면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너는 탈락이야.


그 문장은 공지로 올라오지 않았지만, 화면의 정적이 대신 말해 주는 듯했다. 11시가 지나도 아무 변화가 없었다. 그래, 여기까지인 거다. 이쯤에서 접는 게 맞다. 컴퓨터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속 보고 있으면 괜히 마음만 더 복잡해질 것 같았다. 점심이나 준비하자. 결과가 어떻든, 밥은 먹어야 하니까.


부엌으로 가 냉장고 문을 열었다. 무엇을 먹을지 생각하며 반찬통을 이리저리 옮기면서도 미련이란 녀석이 자꾸만 나를 흔들었다.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다 말고, 그 미련에 이끌려 핸드폰을 확인했다. 화면에는 11시 10분, 부재중 전화 한 통이 남아 있었다.


061로 시작하는 번호였다.

순간 여러 생각이 스쳤다. 떨어졌는데도 연락을 주는 걸까. 혹시 예비 합격? 아니면 다른 이유? 그 번호 하나로 마음이 요동쳤다. 괜히 기대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손은 이미 통화 버튼 위에 가 있었다.


전화를 걸기 전, 목소리를 한 번 가다듬었다. 차분하게, 담담하게. 어떤 결과든 받아들일 준비가 된 사람처럼. 신호음이 몇 번 울린 뒤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해남군 ○○센터입니다.”

나는 준비해 둔 톤으로 말했다.

“아까 부재중 전화가 와서요.”

“아, ○○○ 선생님이십니까?”

“네”

“지원하신 시간제에 합격하셨어요.”


분명히 방금까지 차분했는데, 그 단어 하나로 목소리가 먼저 반응했다. 톤은 훌쩍 높아졌고, 말은 조금 빨라졌다. 이미 떨어졌다고 확신하고 있었던 마음 위로 기쁨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전화를 끊고 나서 그동안 쌓였던 불안을 사자후처럼 풀어냈다. 핸드폰을 한 번 더 들여다봤다. 날짜를 확인하고, 시간을 확인했다.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였다.

합격은 크리스마스 선물 같았다.

포장지도 리본도 없었지만, 올해 받은 것 중 가장 뜻밖의 선물이었다.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 내가 이 일에 어울릴 수도 있다고 판단해 주었다는 사실이 생각보다 큰 선물이 되었다.

기쁨에 내질렀던 포효가 잦아들자 다른 감정이 함께 밀려왔다. 선물 상자 안에는 기쁨과 부담이 동시에 들어 있었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아이들의 안전을 맡는 일. 막상 합격이라는 결과가 손에 쥐어지자 묵직한 무게로 다가온 그 말이 부담스러웠다. 토요일 하루의 일이지만,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이 기쁨에는 책임이 뒤따랐다. 내게 선택권은 없었지만, 원하던 일이었기에 기쁨과 책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크리스마스이브의 합격은 그렇게 왔다.

포장지도 리본도 없이,

기쁨과 부담을 한꺼번에 안고서.

매거진의 이전글오늘은 그냥 일찍 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