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얼굴로 일하러 간다

20년 만에 다시 찍은 증명사진

by 농부아내


합격 이후 센터에 다시 방문했다.

면접 때와는 다른 마음으로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긴장보다는 현실감이 먼저 찾아왔다. 토요일만 출근하지만, 이제 나도 워킹맘이 된다는 현실이 기쁘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다.


사무국장님을 만나 필요한 서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채용 신체검사서, 증명사진 1장, 통장 사본, 주민등록등본. 핑크색 포스트잇에 예쁘장한 글씨로 적어 주셨다. 종이에 적힌 목록은 간단했지만, 첫 출근하는 날 제출하려면 서둘러야 할 것들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채용 신체검사를 하는지 묻자, 수화기 너머에서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조건이 덧붙여졌다. “금식하시고, 증명사진 가져오셔야 해요.” 알겠다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은 뒤에도 그 말이 계속 귀에 남았다.


'증명사진을 가져오라고??'


내게 있는 건 증명사진이라기보다는, 20대 중반에 찍었던 여권사진이었다. 나는 그 사진을 필요할 때마다 붙여 제출하거나, 한 번 스캔해 메일용으로 사용했다. 30대가 넘어서자 서류에 붙은 사진과 내 얼굴을 번갈아 보며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살짝 미소 지으며 “스무 살 좀 넘어 찍은 거예요.”라고 말했다. 다행히 내가 서류를 제출했던 곳들은 대부분 까다롭지 않았다. 서로 멋쩍은 웃음을 나누며 상황은 그렇게 넘어갔다.


'여권사진이 어디 있더라...'


그 민망한 웃음을 만들어 주던 사진이 있을 법한 곳들을 떠올리며 집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계절을 몇 번이나 넘겨야 한 번 열릴까 말까 한 부엌 찬장 어딘가. 아니면 아이들이 더는 찾지 않는 장난감들을 모아 둔 수납장 깊숙한 곳. 집안을 뒤져도, 내 기억을 뒤져도 사진은 나오지 않았다. 있는 것 같지만 꺼내 쓸 수 없는 것들처럼, 그 사진은 이미 과거로 밀려나 있었다.


이참에 다시 찍자고 마음먹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때 책상 위 연필꽂이 안에서 ‘OO사진관’이라는 글자가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봉투 안을 확인했다.


딱 한 장이 남아 있었다.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얼굴이 앳되다. 웃지도, 그렇다고 굳지도 않은 표정. 지금의 나와는 사뭇 다른 얼굴이다. 얼굴선이 매끄럽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던 시절의 얼굴이었다. 그 시절을 떠나보내기 싫은 사람처럼 발을 살짝 걸치고 그 얼굴을 빌려 여러 번의 행정 서류를 통과해 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 없었다. 필요한 사진은 두 장이고, 내게 있는 건 한 장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20년 만에 증명사진을 새로 찍기로 했다.




보정을 잘해 준다는 사진관을 찾았다. 터미널 근처에 있는 오래된 사진관. 가기 전날부터 마음이 쓰였다. 머리를 감고, 옷장을 열어 한참을 들여다봤다. 어깨가 넓어 보이지 않게 깃이 있는 셔츠를 골라 입고, 거울 앞에서 쓸데없이 오래 머물렀다. 사진 한 장이 뭐라고.


사진관 문을 열고 들어섰다.

벽에는 각종 사진 샘플들이 붙어 있었다. 이곳에서 수많은 시작들이 얼굴 한 장으로 정리되었을 것이다. 내 차례가 올 때까지 한참을 기다렸다.


“다음 분, 들어오세요”

카메라 앞에 앉자, 생각보다 더 어색해졌다. 카메라 렌즈를 바라보고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 경계에서 얼굴이 어정쩡해졌다. ‘찰칵’ 소리가 몇 번 울렸다.

“살짝 미소 지어 볼까요?”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고개를 조금씩 움직이며 몇 장을 더 찍었다. 촬영은 금세 끝났다. 곧바로 보정이 시작되었다. 스무 해 전에는 사진이 어떻게 나왔을지 몰라 인화되기 전까지 마음이 콩닥거렸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모니터 속에 바로 얼굴이 떴다. 눈가와 입 옆의 주름, 짙은 다크서클, 기미, 모든 게 선명하게 보였다. 가르마 사이로 휑해진 앞머리까지. 매일 거울로 보던 얼굴인데도 낯설었다.


이게 나구나.

지금, 일을 시작하려는 나.

사진사는 아무렇지 않게 주름을 옅게 만들고, 피부를 고르게 정리했다. 눈 밑의 그늘은 사라지고, 앞머리 사이의 빈틈도 자연스럽게 채워졌다. 작은 증명사진 한 장에 생각보다 많은 손길이 들어갔다.

서류에 제출하는 사진이었기 때문에 나는 너무 과하지 않게 해 달라고 말했다. 그렇게 완성된 사진 속에는 단정하고 무난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믿음직해 보이는 얼굴. 내가 알던 나와는 조금 다른 얼굴.

속으로 중얼거렸다.

너 누구냐.


햇빛에 그을린 피부가 아니라 하얀 배경과 비슷한 피부톤을 가진 사진을 보니 웃음이 났다. 증명사진이란 늘 그렇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담는 것 같으면서도, 내가 아닌 것 같은 얼굴. 이제 그 얼굴이 내 이름 옆에 붙어 다니게 될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사진을 다시 꺼내 보았다. 스무 살의 얼굴이 아니라, 지금의 나로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주름이 늘고, 눈빛이 조금 달라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무언가를 해 보려는 얼굴. 나는 사진을 다시 봉투에 넣으며 생각했다.


낯설지만,

이 얼굴로 일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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