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가 나에게 붙여준 별명이 ‘파괴왕’이다.
버튼만 누르면 되는 무선청소기를 여러 대 부쉈다. 정말 전원 버튼만 눌렀을 뿐인데 작동이 되지 않았고, 새로 산 청소기는 일주일 만에 여기저기 상처가 났다.
핸드폰을 바꾼 날, 남편이 액정보호필름을 붙여 주었다. 전문가처럼 조심스레 붙이던 얼굴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날 저녁, 나는 핸드폰을 떨어뜨렸다. 떨리는 손으로 집어 든 화면에는 금이 가 있었다.
의도한 적은 없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내 손만 닿으면 뭐든 부서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전자기기 앞에만 서면 몸이 먼저 굳는다. 또 망가뜨릴 것 같다는 예감에 손을 대기가 무섭다. 주부가 되기 전에는 컴퓨터와 친근한 직업을 가졌었다. 그런데 지금은 타임머신을 타고 온 조선시대 사람처럼 전자기기 앞에 서면 머뭇거리고 손이 조심스러워진다.
토요일에 출근해 환기를 하기 전, 자리에 앉아 컴퓨터부터 켠다. 집에서 쓰는 것과 달리 부팅 소리가 조용하다. 모니터를 켜고 청소하며 듣기 좋은 음악을 틀었다. 첫 출근으로 긴장된 마음을 진정시켜주는 음악들.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지는 음악을 들으며 창을 열고 신선한 공기와 함께 하루를 시작했다.
시간이 열 시에 가까워지면 음악을 바꾼다. 아이들이 들어올 시간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캐릭터 동요나 놀면서 흥얼흥얼 따라부를 만한 노래들을 찾아보기도 했다. 아무래도 가사가 있는 음악은 아이들의 소리와 섞여 소음이 될 것 같았다. 결국 가사가 없고,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음악을 골랐다. 이 곳의 주인공은 음악이 아니라 아이들이니까.
한 명, 두 명.
사람이 늘어날수록 음악 소리는 자연스럽게 뒤로 물러났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공간을 채웠다. 음악이 들리지 않아도 괜찮았다. 오후가 되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사람 수가 눈에 띄게 늘었고, 내 시선도 바빠졌다. 아이들의 움직임을 따라 고개를 돌리다 보니 심장이 괜히 더 빨리 뛰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음악이 멈췄다.
소리가 사라진 자리만 또렷하게 느껴졌다. 손에 땀이 맺히고, 머릿속이 잠시 멍해졌다. ‘설마’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익숙한 예감이었다.
아이들은 신경 쓰지 않는 얼굴로 뛰어다녔다. 음악이 없어도 놀이터는 충분히 흥겨웠다. 오히려 그 사실이 더 크게 느껴졌다.
전자기기가 말을 듣지 않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방법이 있다. 일단 껐다가 다시 켜기. 스피커와 컴퓨터를 연결한 케이블을 뽑았다가 다시 꽂았다. 반응이 없었다. 이번에는 스피커의 파워 플러그를 뽑았다가 다시 꽂았다. 여전히 조용했다.
결국 팀장님께 메시지를 보냈다. 상황을 길게 설명할 여유는 없었다. 잠시 후 답장이 왔다.
“내려갈게요.”
그 문장만으로도 마음이 놓였다. 아이들 목소리 사이로 팀장님이 들어왔다. 스피커 근처를 한 번 훑어보더니, 아무렇지 않게 손을 뻗어 전원 버튼을 눌렀다. 음악이 다시 흘러나왔다.
그제야 알았다. 마지막으로 플러그를 꽂고, 전원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너무 기본적인 것을 빠뜨린 채 혼자 발만 동동 거렸다.
민망했다. 바쁘신데 괜히 내려오시게 한 것 같았다. 팀장님은 별일 아니라는 듯 사무실로 가셨다. 음악은 잠시 흘렀다가, 몇 분 뒤 또다시 멈췄다. 아무래도 케이블 연결 문제인 것 같았지만, 그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다행히 마감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마감 1시간 전부터는 음악 없이 흘려보냈다. 아이들에게는 아무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놀이터는 음악 없이도 충분히 잘 돌아가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마지막 한 시간은 아이들의 웃음과 장난기 섞인 소리를 배경 삼아 첫 출근을 마무리했다.
집으로 오는 길, 오늘도 파괴왕이 한 건 했단 사실이 씁쓸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벌써 출근한지 4주가 흘렀지만 스피커는 장식품처럼 자리만 지키고있다.
내 손이 닿아서 고장난게 아니라, 케이블을 바꿀 때가 되어서 스피커가 항의 중이라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