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물 위의 아이들, 소파의 어른들

by 농부아내


세 번째 토요일 출근이었다.

마스크 없이는 외출이 어려워 보일 만큼 미세먼지가 짙었다. 거실에서 바라보는 앞산은 물을 많이 탄 붓으로 지운 것처럼 흐릿했다. 이런 날에는 아이들이 집 안에 있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내 생각대로라면 오늘은 사람이 조금 적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집 안에만 머무를 리는 없었다.


오만한 내 생각을 비웃듯 오전부터 가족들이 밀려들었다. 오전에만 부모님을 포함해 열일곱 명이 다녀갔다. 놀이터는 그물 구조라 사고 예방을 위해 양말 착용이 필수였다. 아이들이 뛰어다니면 금세 발에 땀이 찼고, 그러면 아무 생각 없이 양말을 벗어던졌다.

“안돼요. 양말 신어 주세요”


매의 눈으로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쫓다가 양말을 벗은 아이를 발견하면 나는 외쳤다. 소파에 앉아 잠시 쉬고 있던 부모님을 호출하는 신호이기도 했다. 부모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벗어 둔 양말을 집어 다시 신게 했다. 아이들은 순순히 따르다가도, 몇 분 뒤 다시 벗어 놓는다. 나는 또 부르고, 또 신게 한다. 이 짧은 장면은 하루 종일 반복됐다.


오후가 되자 인원은 더 늘었다.

부모님을 포함해 스물일곱 명. 아이들의 웃음, 고함, 그 사이사이에 섞인 어른들의 낮은 대화로 놀이터는 가득 찼다. 각자의 리듬으로 소리가 겹치며 공간이 차오를수록 눈이 피로해졌고 귀도 점점 둔해졌다.


그 와중에도 육아 방식은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외동아이의 경우, 부모 중 한 사람이 아이 곁에 앉아 함께 놀아 주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자매나 남매, 형제가 함께 온 경우에는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어울려 놀았다. 외동이든 형제가 있든, 친구를 발견하는 순간 아이들은 또다시 뭉쳤다.


그렇지만 아직 아이들은 언니나 오빠, 친구보다도 부모의 시선을 더 원했다. 블록으로 무언가를 만든 뒤, 멀리 앉아 있는 엄마나 아빠를 불렀다. “이것 봐요”라는 말은 하지 않아도 표정이 먼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수다에 빠져 있던 엄마는 고개를 들어 한 번 바라보고 엄지를 세워 보인다. 그리고 다시 앞에 앉은 친구 엄마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아이는 잠시 서 있다가, 자기가 만든 것을 들고 직접 달려온다. 더 가까운 거리에서, 조금 더 분명한 칭찬을 받고 싶은 마음이라 짐작해 본다.




나는 어땠을까.

기억을 더듬어 본다. 키즈카페라는 곳을 두 딸과 함께 찾기 시작한 건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다니고 어느 정도 자란 뒤였다.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는 사람이 많은 공간이 부담스러웠고,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두려웠다.


네 살, 다섯 살 무렵부터 키즈카페에 가기 시작했다. 혼자 가기보다는 아이들 친구 가족과 함께 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아이 친구의 엄마와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육아 이야기, 집 이야기, 그동안 차곡차곡 모아 둔 보따리를 풀었다.


그 시간 동안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놀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안심했고, 동시에 아이들에게 시선을 오래 주지 못했다. 가끔은 그런 시간이 있어야 다시 아이에게 돌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밀려오는 죄책감은 그렇게 덮어 두었다.


하루 종일 아이들과 지내다 보면 잠시 아이와 거리를 두고 싶거나, ‘어른과의 대화’가 그리워질 때가 있다. 아이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엄마도 힐링이 필요한 것이다. 지금 놀이터 소파에 앉아 있는 부모님들도 아마 비슷한 마음일 것이다.




매주 토요일, 나는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과 부모를 동시에 바라보고 있다. 작은 발과 짧은 다리로 그물 사이를 오르내리는 아이들, 저마다의 자세로 그 모습을 지켜보는 부모들. 아직은 엄마 아빠의 시선을 갈구하는 아이의 마음도 이해하고, 잠시 쉬고 싶은 부모의 마음도 이해한다. 누구도 틀리지 않았고, 누구도 완벽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각자의 방식과 생각이 있는 이 공간을 잠시 맡고 있는 사람일 뿐이다.

세 번째 토요일 출근은 그렇게 지나갔다. 올해부터 시작한 이 일은 아이들의 안전을 살피는 일을 넘어, 내가 지나온 육아의 시간을 천천히 되돌아보게 했다. 하루아침에 태도가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한 번쯤 멈춰 서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시끄럽고 붐벼서 힘들다고 여겼던 이 시간이, 돌아보니 나에게는 뜻밖의 여백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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